스님에게 보낸 엽서이다. 만주에서 육혈포 세 방을 맞아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일화와 함께 삶의 무상함에 대한 소회, 진응 스님에 대한 그리움을 적었다. 종이에 먹, 엽서, 14.2×8.9cm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법진)이 만해 용운(萬海 龍雲, 1879~1944) 스님, 남전 한규(南泉 翰圭, 1868~1936), 경운 원기(擎雲 元奇, 1852~1936), 금명 보정(錦溟 寶鼎, 1861~1930), 금봉 병연(錦峰 秉演, 1869~1915), 영호 정호(映湖 鼎鎬, 1870~1948), 구하 천보(九河 天輔, 1872~1965),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 등 근현대 고승과 문인의 편지 20점을 최근 입수했다.

입수한 편지는 한국미술품을 전문으로 다루는 경매사 칸옥션이 12월 12일 실시한 ‘제13회 미술품 경매’에 출품된 것들이다. 선학원은 만해 한용운 스님이 1912년 12월 화엄사에 주석하던 혜찬 진응(慧燦 震應, 1873~1941) 스님에게 보낸 엽서 1점과 스님·문인 편지 19점을 함께 낙찰 받았다.

이중 만해 스님이 진응 스님에게 보낸 편지는 만주에 포교 차 갔다가 강도를 만나 육혈포 3발을 맞고 거의 죽을 뻔했다는 일화를 만해 스님이 직접 남긴 기록이라는 점에서 사료 가치가 크다. 그동안 만해 스님은 러시아를 거쳐 만주를 여행하던 중 일진회원으로 오인한 독립군에게 총상을 입었다고 알려져 왔다.

만해 스님은 엽서에서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으니 그 아쉬움 어찌 한량이 있겠습니까? … 그립고 그립습니다.”라고 적는 등 진응 스님에 대한 그리움과 삶의 무상함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스님과 문인 편지’ 19점은 구한말 호남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한 스님과 문인이 주고받은 것들이다. 편지글에는 당대 활동한 인물이 언급된 경우가 다수 있어 근대 지식인의 교유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이중에는 1917년 친일종단인 원종에 대항에 설립된 조선불교선교양종교무원의 초대 교정 경운 원기 스님의 편지와 재단법인 선학원의 설립조사 남전 한규 스님이 쓴 편지, 근대 대강백인 영호 정호 스님이 쓴 편지가 포함돼 있다.

재단법인 선학원은 입수한 편지를 차례로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전시실에서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