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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원 재산 팔아 정화 비용 충당”
인천 만석동 토지와 서대문 행촌포교당 매각해
1973년 매각 재산 상당 4400만여원 반환 요청
2019년 12월 26일 (목) 16:59:30 이창윤 기자 budjn2009@gmail.com
   
▲ 재단법인 선학원이 종단 정화운동 당시 제반 비용에 충당하기 위하여 매각한 재단 재산에 상당한 금액을 반납해 줄 것을 요청한 공문. 1973년 9월 1일 조계종 총무원장(경산 스님) 앞으로 보냈다.

재단법인 선학원이 1950년대 불교정화운동(이하 정화운동) 당시 쓰인 제반 비용을 제공했음을 입증하는 공문서가 공개됐다.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법진)은 12월 24일 ‘선학원 기본재산 환원에 대한 건’이란 제목의 공문을 공개했다. 이 공문은 재단법인 선학원이 1973년 9월 1일 조계종 총무원장(경산 스님, 편집자 주) 앞으로 보낸 것이다.

공문에 따르면 선학원은 “과거 종단 정화운동 당시 제반 비용에 충당하기 위하여 본 법인 소유 재산을 1957년 10월 경에 처분한 바 있다”며, “금반(今般, 이번) 본 법인 중앙선원 중건 불사로 인하여 공사금이 상금(尙今, 지금까지) 미불(未拂, 지급하지 못함)되어 막심한 곤경에 처해 있으므로 부득이 처분된 재산에 상당한 금액을 반납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공문에는 당시 이사장인 벽암 스님을 비롯해 이사 대의, 서운, 월산, 대휘, 범행, 향곡 스님과 감사 월주, 진경 스님이 연명하고 인감을 날인했다.

당시 선학원의 임원스님들은 불교정화운동의 주역이자, 정화불사의 산증인들이다.

공문에 따르면 당시 선학원이 정화운동 제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처분한 재산은 인천시 만석동 2-5번지 일대 3500평과 서울시 서대문구 행촌동 8번지 소재 행촌포교당 대지 66평 4홉(合)과 건물 3동이다. 반환금은 당시 금액으로 인천시 만석동 토지는 3500만 원, 행촌포교당은 863만 2000원 등 총 4363만 2000원이다.

‘선학원은 조계종 모태’ 부정에 경종 울릴 자료

선학원이 공개한 이 공문은 재단법인 선학원이 ‘조계종의 모태’임을 부정하고, <법인법>을 무기로 종단 예속화를 획책해온 조계종과 이에 동조해 사실을 호도해온 일부 언론의 무분별한 왜곡 보도에 경종을 울릴 자료로 평가된다.

정화운동은 일본 식민지불교의 잔재를 몰아내고 한국불교 정통의 청정승가를 회복하려는 수좌 중심의 개혁운동이었으며, 비구승 종단인 조계종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된 운동이다.

선학원이 재단 재산을 처분하면서까지 정화불사에 필요한 제반 비용을 댄 것은 당시 선학원이 ‘불교정화의 총본산’이었기 때문이다.

1952년 봄 선학원 수좌였던 대의 스님은 당시 조선불교 교정(종정)인 만암 스님에게 건의서를 보내 비구수행승에게 수행도량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총무원은 1953년 4월 동화사, 직지사, 보문사, 신륵사, 월정사 등 18개 사찰을 비구승 수행도량으로 할애하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달 선학원 조실 금오 스님 등 선학원 대표들이 주지회의가 열린 조계사를 방문해 비구승 수행도량을 넘겨줄 것을 요청했지만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비구승들은 선학원에 모여 교단 정비와 사찰 정화, 대처승 축출 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1954년 5월 이승만 대통령의 ‘정화 유시’를 계기로 정화운동은 탄력을 받았다. 1954년 6월 21일 동산, 금오, 금봉, 청담 스님 등 80여 명의 비구승이 동참한 가운데 선학원 조실 금오 스님을 위원장으로 하는 불교정화운동발기위원회를 결성하고, 사흘 뒤 정화운동을 진행할 조직인 불교교단정화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조계종, 인적·물적 지원받고도 ‘종단 예속’ 강요

정화운동은 1954년 시작부터 1962년 끝날 때까지 선학원 소속 수좌 스님들이 주도했다. 그것은 효봉, 동산, 금오, 적음, 청담, 향곡, 서운, 월하, 월산, 경산 스님 등 정화운동에 참여한 스님들의 면면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선학원 소속 수좌 스님들이 정화운동 계획을 입안·실행하였고, 선학원을 통해 정화운동에 소요되는 일체 자금이 조달됐다. 비구승이 직접 경영하는 사찰이 거의 없던 당시 상황에서 전국 비구승들의 근거지였던 선학원이 그 역할을 맡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화운동이 수년 간 이어지면서 대처승들의 반발도 거세졌다. 유혈사태가 오가는가 하면 곳곳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움직임은 곧 막대한 정재 낭비로 이어졌는데, <동아일보> 1959년 7월 13일자 ‘소송비만 수천만 환’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비구와 대처승 간 싸움으로 말미암아 수천만 환에 달하는 불교재산이 양파 간의 소송비로 탕진”될 정도였다. 신문은 당시 문교부 통계를 인용해 대처승이 비구승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건수가 ‘전국승려대회 소집 결의 무효 확인 청구소송’ 등 69건이고, 비구승이 패소해 항고한 건수가 10여 건이나 된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정화불사가 진행되면서 발생한 제반 비용은 공문에서 밝힌 바대로 선학원 재단 재산을 팔아 충당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범행 스님 이사장 재임 시인 1986년 발간된 《재단법인 선학원 약사》에 따르면 선학원은 조계종 총무원이 불교정화기념관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빚으로 인해 심한 곤경에 처하자 재단 부동산을 담보로 빚을 내 총무원 대신 갚아주기도 했다.

이 두 사례는 선학원이 현 조계종의 탄생과 유지·발전에 크게 기여했음을 보여준다.

“법인법 수용강요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

이처럼 선학원은 조계종 창종의 인적, 물적, 이념적 토대였다. 선학원이 있었기 때문에 비구승 종단인 지금의 조계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선학원이 ‘조계종의 모태’인 것은 이 때문이다.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법진 스님은 “선학원과 조계종은 한 뿌리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이는 조계종단이 선학원의 인적, 물적, 이념적 지원을 토대로 탄생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스님은 또 “조계종은 선학원의 인적, 물적, 이념적 토대와 지원이 있었기에 비구승 종단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며, “조계종이 <법인법>을 무기로 선학원을 종단에 예속시키려 획책하는 것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행위다. 이제라도 조계종단의 역사를 왜곡하고 선학원을 예속시키려는 헛된 꿈을 버려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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