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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성취감은 없었다
2019년 12월 19일 (목) 13:12:10 김은주 .
   
▲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에서 점심을 기다리며 부족한 햇볕도 받고 아름다운 풍경도 감상했다.

점심 무렵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에 도착했습니다. 롯지가 양지바른 곳에 있어 점심을 기다리며 약간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풍경도 아름다웠습니다. 하얀 솜이불을 뒤집어쓴 것처럼 말쑥한 마차푸차레 봉우리는 손에 잡힐 듯 가까웠습니다.

우리가 주문한 감자와 라면이 나왔는데 맛이 없었습니다. 대체로 점심은 맛있게 먹었는데 이곳에서는 라면도 맛이 없었습니다. 오늘 아침 데우랄리에서도 아침을 간신히 먹었는데 이때부터 먹는 일이 내내 괴로웠습니다. 고산증의 증상에 입맛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데우랄리부터 고산증이 시작됐던 모양입니다. 옆에서 서양 여자들이 커피와 쿠키를 먹고 있었습니다. 이 여자들처럼 과자나 먹을 걸 하고 후회했습니다. 늙은 서양 남자가 우리들 앞에서 담뱃잎을 말아서 담뱃대에 넣어 피웠습니다. 그는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그 일을 참으로 진지하게 했습니다.

식사 후 늘 그랬던 것처럼 믹스 커피를 마시면서 별 생각 없이 주변을 바라봤습니다. 아름다운 풍경도 감상하고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도 지켜보고 햇볕도 쬐고, 이렇게 나른하고 무심한 시간이 참 평화롭고 좋았습니다.

데우랄리에서 MBC를 수월하게 올라왔기 때문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오르는 길도 쉽게 생각했습니다. 길의 상태로만 보면 차라리 ABC 오르는 길이 더 평탄했습니다. 얼음과 눈이 살짝 깔려있긴 했지만 걷는 데 방해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쉬워 보이는 길을 걷는 것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고산증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심장이 뛰면서 압박감이 느껴지고 감기 걸렸을 때처럼 머리가 무겁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올랐습니다. 조금 걷다가 멈춰서 긴 호흡을 하고, 쉬다가다를 반복했습니다. 도저히 안 돼서 올라올 때 연극배우에게서 얻은 아스피린 반 알을 먹었습니다. 또 올라가다 아스피린 반 알 먹고, 무려 2시간 정도의 거리에서 아스피린을 두 알이나 먹었습니다.

우리 일행 중 이렇게 고산증을 호소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습니다. 데우랄리 올라올 때 까마귀라도 날아오를 것처럼 음산한 분위기에 압도당해 입을 닫고 있던 남편은 눈 덮인 길을 걸으면서 다시 생기를 되찾고 동영상 촬영에 열중했으며, 포터야 직업이니까 그렇겠지만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있고, 필리핀에서 온 여학생들은 무거운 배낭을 메고도 우리를 앞질러 걸었습니다. 나만 유일하게 약을 먹고도 계속 멈춰 섰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너무 춥다는 것입니다. 갖고 올라온 옷을 거의 다 껴입었지만 그래도 추웠습니다. 양말도 무려 3켤레나 신었고, 방수가 완벽하게 되는 등산화를 신었지만 발이 엄청 시렸습니다. 추위도 나만 유난히 타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내 몸이 비정상적인 상태 같았습니다.

MBC에서 ABC 오르는 구간은 길이 평탄하고 풍경도 아름다웠습니다. 몸 상태만 좋다면 정말 즐길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거기다 우리가 걷고 있던 때는 ‘매직아워’ 시간이었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간인 것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깥 환경이 이렇게 다 갖추어져도 내 몸이 이를 견디지 못하니까 그 길은 고난의 순례길처럼 그저 힘들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포토존.

마침내 ABC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안나푸르나를 다녀왔음을 증명하는 사진을 찍는 장소입니다. 좀 허무했습니다. 이곳에 오르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올라왔는데 그곳의 모습은 내 상상과는 달랐습니다. ‘환영합니다’라는 플랜카드가 나무기둥을 의지해 펄럭이고 여러 나라의 국기나 룽다가 펄럭이는 모습이, ‘설마 여기가 거기야?’ 할 정도였습니다. 포터가 우리를 그리로 데려가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그곳이 우리의 목적지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항상 그렇지만 우리의 상상력은 좀 과장하는 일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 다른 사람들의 사진 속 풍경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모습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가보지 않은 그곳에 대한 동경심은 그 사진에 양념을 쳐서 실제보다 더 거창하게 상상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을 정복한 것처럼 환하게 웃던 사람들의 표정도 내 상상력을 부추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난 이곳에 왔지만 그런 기분 같은 건 없었습니다. 춥고 숨 쉬기 어려울 뿐이었습니다. 몸 상태가 엉망이었고, 이 난감한 현실에 그저 쩔쩔 매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우리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먼저 필리핀 여학생들이 감동받은 얼굴로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여학생들은 담백하게 둘이 함께 한 장 찍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롯지를 향해 먼저 떠났습니다. 이제 남편과 내가 찍을 차례였습니다. 나도 그 여학생들처럼 남편과 나, 포터가 함께 한 장 찍고 올라가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 여기 왔는가, 할 정도로 사진에 집착했습니다.

난 사진을 정말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지만 그는 사진을 정말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곳에서 그 시간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충분히 이해는 했습니다. 아마도 그에게는 이번 히말라야 여행 중 그 시간이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난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도 맞춰줄 수도 없었습니다.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우리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사진을 찍기를 바랐지만 난 몇 장 찍고는 얼른 포터를 따라서 롯지로 올라왔습니다. 황량한 들판에는 사진 찍기에 혈안이 된 남편만 홀로 남았습니다.

김은주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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