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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
수행으로 예술로 ‘한국의 사경’
2019년 12월 19일 (목) 12:41:12 김경호 .
   
▲ 호림박물관 소장 백지묵서묘법연화경 권제1-7, 국보 제211호, 우왕3년(1377), 호림박물관 소장.

사경은 불교 전래와 함께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의 불교의 첫 공인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이다. 그런데 많은 학자들은 국가의 공인에 앞서 50년 전에는 전래되어 이미 민간에서 신앙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사경은 170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지닌 불교의 수행법이자, 사경수행의 결과로 얻어지는 필사한 경전은 법사리, 서예작품이라 할 수 있다.

불교의 공인은 사경사업의 부흥을 촉발시켰을 것이다. 많은 사찰의 건립은 많은 승려의 양성을 요구하게 되고 이들 승려들의 교육을 위해서는 많은 양의 경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교가 흥성함에 따라 다량의 경전이 요구되고 이러한 요구는 인쇄술 개발을 촉진시키는 연원이 된다. 필사를 통한 경전의 제작은 많은 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보다 손쉽게 경전을 생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목판 인쇄술이 개발된 것이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은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인쇄술 개발의 종주국임을 천명할 수 있게 해 주는 자랑스러운 유물이다. 더하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 또한 우리 선조들이 남긴 유물이니, 가히 우리나라가 󰡐문명의 어머니󰡑라 일컬어지는 인쇄문화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인쇄술이 개발됨에 따라 사경은 불교 교리의 광선유포〔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일- 편집자주〕라는 기능을 차츰 인쇄술에 넘겨주고 수행의 일환으로 전환되어 지속된다. 뿐만 아니라 사경신앙이 더욱 활발히 전개되면서 법사리로 존숭되어 불탑에 봉안되고 불상의 복장에 봉안되는 공양경이 된다. 그리하여 금자경, 은자경 같이 최상의 고귀한 재료를 사용하는 장엄경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사경신앙은 신라 말부터는 국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백성들의 마음을 한데 모아 슬기롭게 극복하고자 금자대장경을 사성(寫成:사경작업의 완성)하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도 왕조 초기부터 국왕이 은자대장경 사성을 발원한다. 한편으로는 외세의 침입, 즉 국가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백성들의 뜻을 한 데 모아 슬기롭게 극복하고자 목판대장경이 조조(肇造:처음으로 만듦)되기도 한다. 거란의 침입 시 조조된 초조대장경과 몽고의 침입 시 조조된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이 이를 뒷받침한다. 원나라의 지배에 들어갔을 때에는 충렬왕 발원으로 은자대장경이 사성되기도 한다. 이러한 은자대장경, 금자대장경, 목판대장경의 조조와 사성은 국가가 위기에 처하고 백성들이 고난을 당함에 사경 사업을 통한 부처님의 가피로 슬기롭게 극복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인류사적 의의와 가치의 보편성을 지닌다.

고려왕조의 ‘사경 사랑’으로 수행에서 문화예술로 발전

사경은 처음에는 묵서로 시작되었다. 이후 사경신앙이 고조되면서 금판경, 동판경, 금자경, 은자경 등으로 발전한다. 또한 석경과 와경으로도 제작된다. 금판경으로는 익산 왕궁탑에서 발견된 백제의 유물 〈금강경〉이 현존하는데 이는 한자문화권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사성된 유일한 금판경이라는 점에서 세계사적 가치를 지닌다. 석경으로는 구례 화엄사의 〈화엄경〉 석경이 비록 파편일지라도 대량으로 전하고 있고, 경주 창림사지에서 발견된 〈법화경〉 석경편들과 경주 남산 칠불암에서 발견된 〈금강경〉 석경편들이 전해지고 있다. 기와로 구워낸 와경편은 국립경주박물관에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금자경과 은자경은 755년에 사성된 신라 백지묵서 〈화엄경〉의 표지화와 변상도를 통해 이 무렵 이미 높은 수준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신라말에 이르러서는 국왕이 몸소 사경소에 나아가 정기적으로 사경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국가와 왕실, 귀족들의 발원으로 무수히 많은 금자경과 은자경이 사성된다. 필자의 연구 결과로는 고려왕조 약 500년 동안 금자대장경과 은자대장경이 많게는 16회, 적게 잡아도 10회 이상 사성된다. 가히 고려왕조를 󰡐사경왕조󰡑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에는 당시 세계 대제국이었던 원나라의 요청으로 사경승(사경전문가)들을 중국에 파견하기에 이른다. 많게는 100명씩 여러 차례 원나라에 파견하여 중국의 금은자대장경을 사성해 주고 돌아왔으니 사경은 가히 불교 전래국 중 최고의 성취를 이루었던 자랑스런 문화예술 분야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사경은 문화예술의 한 장르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는 불교미술의 한 장르이고 더 근본을 논한다면 불교서예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종합예술의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사경의 본래 의미인 경전의 필사, 즉 서예를 기반으로 하고 여기에 사경신앙의 고조로 인하여 법사리를 최상으로 장엄하는 과정에서 경전의 내용을 선묘로 표현하는 회화의 영역인 변상도가 곁들여지며, 표지 또한 최고의 상징성을 지닌 양식으로 장엄하게 된다. 금자경과 은자경은 금·은과 같은 귀금속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공예의 영역을 일부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권자장(두루마리)의 경우 축수 부분을 귀금속으로 장엄하게 되는데 이 또한 공예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석경의 경우에는 서예와 석조각의 합작이라 할 수 있고, 목판경은 서예와 서각, 혹은 목조각의 합작이라 할 수 있으며 금판경과 은판경, 동판경의 경우에는 서예를 바탕으로 하되 여기에 공예와 조각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500년 단절 딛고 현대적 수행법으로 부각

사경의 내용상의 범주는 시대에 따라 변천을 거듭해 왔다. 불전(佛典)의 1차 결집과 2차 결집시에는 경과 율이 암송으로 구전되다가 아쇼카왕대인 3차 결집에 이르러 문자로 기록된다. 이때 논사들이 경과 율을 해석한 논이 결집됨으로써 경·율·논 삼장(三藏)이 형성된다. 이들 삼장을 한데 모으고 목록을 만들어 사원의 서고에 정리, 비치하게 되는데 이를 󰡐일체경󰡑, 󰡐대장경󰡑 등으로 불렀다. 여기에는 인도의 고승이 지은 저술과 불교 이외의 다른 학파의 저서도 포함되어 있으며 중국에서 제작된 유명 저작이나 주석서, 사서(史書), 목록까지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일체경에 포함된 모든 전적을 󰡐경󰡑이라 칭하게 된다. 중국에 전해진 삼장은 147년 안세고의 역출(譯出: 번역해 출간)로부터 시작되어 고역(古譯)시대, 구역(舊譯)시대, 신역(新譯)시대를 거쳐 1000여 년 동안 한역이 이루어지면서 사경 사업은 보다 전문적으로 활발히 진행된다. 그리고 당의 개원(開元)시대에 왕명에 의해 5,048권의 대장경으로 정돈된다.

기본적으로 사경은 이 삼장을 대상으로 한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대장경에 포함되지 않은 고승대덕들의 저작을 서사함도 넓은 의미에서 사경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불교를 억압했던 조선시대에도 세조조까지는 고려시대에 화려하게 꽃을 피웠던 사경의 전통이 비교적 명맥을 유지하면서 사성되지만, 이후 500년 이상 사경의 전통이 단절되기에 이른다. 세조조 이후로는 고려시대의 찬란했던 사경의 전통이 사라진 채 간헐적으로 개인에 의해 발원, 제작되었기에 예술적 완성도 면에서 결코 고려사경에 비할 바 아니다.

이러한 500년 이상 단절의 아픔을 딛고 사경문화가 다시금 부활하고 있다. 더군다나 여러 다양한 종교들이 존재하는 오늘날에는 신앙인들이 각각의 종교에 따른 성전을 필사하는 형태로도 진행되고 있다.

특히 불경의 사경은 붐이 일고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과거 한문사경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글사경과 범자다라니사경 등으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고, 다양한 장정과 양식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문화예술의 한 장르로도 자리매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조급증 등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수행법으로도 나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상의 복장사경과 불탑의 납탑용 사경 위주로 행해지고 있음은 깊은 성찰을 요한다. 1,70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분야라면 그동안 선조들이 쌓아올린 전통에 대한 학습과 이해를 병행하려는 노력이 함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 법사리에 대한 예경이자 사경의 첫걸음이다.

김경호 | 전통사경 기능 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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