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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대전’에 드러난 만해의 사상 ②
당대 문제 극복 노력이 빚어낸 시대정신의 산물
2019년 07월 10일 (수) 23:00:49 한국불교선리연구원 budjn2009@gmail.com
   
▲ 인제 백담사 경내에 있는 만해기념관. <사진=위키백과>

그 동안 만해와 관련된 연구는 국문학이나 사학에 치우친 경향이 많았다. 대부분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만해는 시인이자 사회운동가, 민족독립가, 개혁가, 혁명가의 이미지로 굳어져, 불교 수행자, 선사로서 만해의 문제의식이나 불교사상에 대한 연구가 미천하였다. 즉 역사 현장에서 드러난 외적 활동으로서 항일, 독립운동에 주로 관심이 집중되어, 승려로서 만해 본연의 모습이나 사상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평가마저 혼란스러운 실정이다. 근대 불교사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의 결여와 식민지불교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한용운의 불교에 대한 이해와 평가가 정확하게 이루어 질 수 없었다1)는 주장은 설득력 있는 문제 제기라 할 수 있다.

만해는 어릴 적부터 한문 서적들을 통해 유가와 도가의 경서들을 광범위하게 섭렵한 전통적인 선비로서 탄탄한 학문적 기본기를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백담사로 출가 이후 오세암에 있는 장경각의 수많은 불서들을 접함으로써 유·불·선을 통섭하는 동양적 교양을 갖추게 되었다. 9세 때 이미 《서상기(西廂記)》2)를 독파하고, 《통감(痛鑑)》3)의 문의(文義)를 해득하였으며, 《서경(書經)》의 기삼백주(朞三百註)을 통달하였다고 한다. 이후 입산하기 전 18세에는 숙사(塾師)로서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이러한 일련의 유학적 소양은 입산하여 불교를 공부하는 데 든든한 기초가 되었다. 이처럼 유교적 세계관은 만해 사상 형성에 있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만해 사상의 원형적 틀을 이루는 한 자락이 되었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신을 바치는 의인이 되고자 했던’ 어린 시절 품었던 만해의 꿈은 유가적 전통에서 배태된 신념이라 할 수 있다. 무부무군(無父無君)이라며 불교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유가사상에 정통해 있던 만해는 이에 대응할 논리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자신의 사상체계를 구축해 나갔다.

《불교대전》의 목차 구성상에 뚜렷이 유추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유가적 성격4)은 전통불교의 폐해와 이에 대한 비판의 핵심을 정확하게 인식하면서, 불교경전 속에 들어있는 충효사상을 비롯한 윤리적인 면을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불교대전》에 스며있는 유가사상의 측면을 제대로 분석해 낸다면 만해 사상의 특징을 보다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만해는 5, 6년간 설악산 오세암에 머무는 동안 불경을 공부하는 한편, 여러 근대 서양 교양서를 접하게 되었다. 세계지리서인 《영환지략(瀛環地略)》을 읽고 세계 사정에 눈 뜨는가 하면, 스승 김연곡 화상이 건봉사 등에서 구해다 준 중국의 근대 지식인 양계초(梁啓楚, 1873∼1929)의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5)을 통해 근대 서구의 사상과 문물을 익혔다. 타고난 진취적 기상에 힘입어 당시 승려로서는 드물게 일본에 순유(巡遊)하여 근대 문화를 경험하였으며, 또한 국내 문인들의 해외문학 번역서들을 통해 구미의 문예를 접하며6) 사상의 폭을 넓혀 나갔다.

급진적인 불교 개혁가로서 근대 세계로의 여정을 시작한 한용운은 양계초로부터 배운 사회진화론을 대승불교의 기본적인 철학과 조화시키려고 분투하였으며, 처음부터 불교의 구세(救世)적이고 평등주의적 본질을 역설하였다.7) 불교 자체 내에 이미 서구 근대 사상적 요소들이 내재해 있으나, 시대에 적절하게 구현되지 못하였음을 비판하고, 당대와 미래 시대의 이정표로서 불교사상을 쇄신하고자 하였다.

만해는 유교를 극복하고, 서구 사상을 수용하며, 불교에 귀의한 당시 흔치 않는 인물이다. 불교에 귀의하고서도 은둔적인 산간 불교를 배척하고 시대정신에 부합되는 새로운 불교로 개조하고자 노력하였다. 한국불교의 전통 사상을 되살리고 잇고자 한 것이었다.8) 《불교대전》의 편찬은 바로 만해가 전통과 근대를 아울러 당대 문제를 타개해 나가고자 한 시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유교의 병폐로 인한 많은 문제를 직시한 한용운은 소용돌이치는 시대 상황을 헤쳐 나갈 새로운 사상으로 불교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구도열에 불타 깨달음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혼란한 시대의 청년 한용운은 매우 현실적이고, 실존적인 고민 속에 서서히 불교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불교 수행자로 입문하고도 조선 사회와 더 넓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불교에 안착하지 못하고, 국외로 발걸음을 향하게 되었다. 드넓은 세상에서의 견문과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토대로 삼은 불교 안에서 자신의 불교 개혁사상을 정립하여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하게 된다. 이것은 만해사상의 청사진으로서 이후 행적의 푯대가 된다. 즉 《조선불교유신론》이라는 사상적 뼈대 위에 그때그때 당면하는 역사적 사건이나 시대 상황에 맞춰 현실적 대응을 해 나갔다.

만해는 불교에 귀의함으로써 세계관을 혁신하고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경전 공부과 참선 수행을 통해 불교적인 세계관을 체화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불교의 최종 목표인 해탈을 자유라는 개념으로 구체화하고, 자신의 핵심적인 가치로 삼게 된다. 그의 삶과 사상은 불교의 자유정신을 심리적 혹은 내면적 차원으로만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연과 적용 범위가 정치‧ 사회적인 측면에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실천적으로 보여 주었다. 만해 사상의 형성에 있어서 ‘만해다움’의 출발점은 출가로 인한 불교와의 만남이었다고 평가된다9)는 지적처럼 만해에게 불교는 바로 조선의 현실과 세상의 변화를 읽고 해석하는 가장 유용한 렌즈였다. 그러므로 불교 개혁이 곧 조선의 개혁이었고, 세계 변혁의 시발점이었다.

유가 사상과 근대 사상의 흡수, 그리고 출가자로서 불교 내·외적 경험은 만해사상을 형성하는 주요한 줄기들이었다. 특히 일제 식민지라는 시대 상황과 격변하는 세계사의 흐름과 맞물려 어떤 여정을 통해 만해의 독특한 사상이 정립되었는지 천착할 필요가 있다.《불교대전》은 바로 만해사상을 보다 심층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는 중요한 텍스트라 할 수 있다.

만해는 탈세속적 구도의 초역사적 일탈을 부인하고, 끝임 없이 변화하는 역사의 현장 가운데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현실 속에서 구현해 나가고자 하였다. 어릴 적 가슴 속 깊이 품었던 의인·걸사를 추구하던 지사적 정신은 대승 보살의 원력으로 승화되고, 일체중생개유불성(一切衆生皆有佛性)의 불성론(佛性論)은 자유·평등의 근대적 사상 체계 안으로 포섭하는 등 만해 사상의 특성을 새롭게 읽고, 해석해 볼 수 있는 있는 체계를 모색하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라 생각한다.

한용운은 전통의 기반 위에 서구 사상을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발전시켜 그 사상이 현장성을 띠며 적극적인 힘으로 전화되어 작용할 수 있게 하였고, 한국 근대 사상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10)하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으로 《불교대전》의 편제 구성과 인용경전에 대한 보다 면밀한 검토를 통해 만해 사상의 새로운 이면이 조망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격동의 시기를 살며 자신이 뿌리내리고 있던 삶의 터전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흡수하여 독자적인 사상 체계를 정립한 만해는 자신의 사상을 고답적인 이론의 틀 안에 가두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생명력을 발휘하며 역사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살아낸 한 근대 불교계 지성인이었다.

은산철벽 같은 식민지 상황 속에서 대장경의 숲을 헤치며 자신을 연단하듯 인고의 시간을 보낸 만해가 집대성한 《불교대전》의 시대성이나 역사적 의의 등은 앞으로 활발히 개진되어야 연구 주제라 할 수 있다.

앎과 삶의 조화를 이루며 수행자(禪師), 종교인으로서 삶의 전범(典範)을 보여 주었던 한용운의 사상과 실천은 다문화, 다종교 상황이라는 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서 묵은 것과 새로운 것, 뿌리 내리고 있는 것과 새롭게 이식되는 것이 어떻게 조화롭게 만나 당대 문화에 합당한 몸짓으로 거듭나 창조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만해의 치열한 자기 쇄신의 모습은 이 시대에 절실히 요청되는 진정한 종교인, 사상가의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주) -----

1) 최병헌, <일제 불교의 침투와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 진산 한기두박사 화갑기념 《한국종교사상의 재조명》, 원광대학교 출판국, 1993, 451면.

2) 중국 원(元)나라 때의 왕실보(王實甫)가 지은 잡극(雜劇). 장생(長生)이란 남자와 최앵앵(崔鶯鶯)이란 여자가 어려운 고비를 겪은 끝에 사랑을 성취한 내용.

3) 중국 송(宋)나라 사마광(司馬光)이 영종(英宗)의 명으로 편찬한 중국의 편년체(編年體) 역사서.

4) 송현주, <한용운의 《불교대전》과 난조분유·마에다 에운의 《불교성전》의 비교연구 - 구조의 차이와 인용 경전의 특성을 중심으로>, 《불교연구》 43, 한국불교연구원, 2015, 28면.

5) 음빙실(飮氷室)은 양계초의 호(號)로 ‘얼음을 먹어 차오르는 열을 식힘’ 이라는 뜻. 허도학 <근대계몽철학과 조선불교유신론>, 《불교평론》 2003년 가을 제5권 제3호, 96면 참고.

6) 고명수 <조선불교유신론과 만해의 불교관>, 《불교평론》 2003년 가을 제5권 제3호, 114면.

7) 블라디미르 티코노브(박노자) <1920~1930년대 만해 한용운의 불교사회주의>, 《천태학 연구》 8집, 천태불교문화연구원, 2006, 126면.

8) 김삼웅 《만해 한용운 평전》, 시대의 창, 2006, 29면.

9) 윤세원 <한용운의 정치사상에 관한 연구 - 자유관을 중심으로>, 《2003 만해축전》, 만해사상실천선양회, 2003, 211∼212면.

10) 이상철 <한용운의 사회사상에 관한 일고찰>,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3, 81∼8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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