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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교류하고 의지하며 탁마 도운 옛길
길 따라 떠나는 사찰순례 2 - 조계산 천년불심길
2019년 06월 10일 (월) 18:07:09 이창윤 기자 budjn2009@gmail.com
   
▲ 선암사 숲길.

승객 서넛을 태운 시내버스는 크고 작은 산과 들판 사이를 내달립니다. 창문 틈으로 밀려들어오는 새벽 공기가 꿈길을 헤매던 머릿속을 맑혀줍니다.

한 시간 남짓 달린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남도 삼백리길 노선도’가 버스에서 내린 순례자를 반깁니다. ‘남도 삼백리길’은 느릿느릿 걸으며 남도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길입니다. 이번 순례길은 이중 선암사에서 출발해 조계산 굴목재를 넘어 송광사에 이르는 ‘천년불심길’입니다.

선암사 숲길로 들어섭니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아침햇살이 순례자를 반깁니다. 산새의 지저귐과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마음을 청량하게 해줍니다. 1km 남짓 걸어 올라가니 선암사 동부도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부도 11기와 비석 8기가 수행한담하듯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그중 화산 대사 사리탑은 네 마리 사자가 탑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과 닮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리탑은 아픔을 겪었습니다. 탑을 지탱하던 사자상 2점을 1986년 2월 누군가 훔쳐간 것이지요. 돈이 된다면 고승의 법구를 외호하던 사자상마저도 훔쳐가는 세태가 씁쓸합니다.

다시 선암사로 향합니다. 무지개다리(홍예교) 두 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타납니다. 그중 뒤쪽 다리가 우리나라 무지개다리 중 가장 아름답다는 승선교입니다. 숙종 24년(1698) 호암 약휴(護岩 若休) 스님이 축조했습니다. 지금이야 차량이 다닐 수 있는 새 길이 닦였지만 옛길은 두 무지개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굳이 건너지 않아도 될 계곡을 왜 두 번이나 건너 절로 들어가도록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온갖 세속의 홍진을 털어버리고 진리의 세계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라는 상징은 아니었을까요?

승선교를 지나 강선루에 다가서니 오른쪽 바위에 새겨진 두 개의 방함록이 눈길을 끕니다. 1912년에 새긴 <대웅전불량헌답갑인계원방함록(大雄殿佛粮獻畓甲寅禊員芳啣錄)>과 1929년에 새긴 <응진당불량헌답갑술계원방함록>입니다. 대웅전과 응진당을 중수하기 위해 정성을 모았을 불자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 선암사 일주문.

선암사는 통일신라 말 도선 국사가 광양 운암사, 영암 용암사와 함께 호남을 비보하는 3암의 하나로 창건한 사찰이라고 합니다.

고려 선종 9년(1092) 대각 국사 의천 스님이 머물며 크게 중창한 선암사는 정유재란 당시 문수전, 일주문 등 일부 전각을 제외하고 모두 불탑니다. 이후 현종 대에 경준(敬俊), 경잠(敬岑), 문정(文正) 세 스님이, 숙종 대에 호암 스님이 크게 중건했습니다. 이후에도 선암사는 여러 차례 그고 작은 화재로 소실된 후 중창되는 과정을 겪습니다. 선암사에는 광복 직후까지 모두 65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소실되고 지금은 20여 동만 남아있습니다.

선암사는 태고종의 유일한 총림(태고총림)입니다. 경내에는 승가대학과 종립선원이 있습니다. 태고종은 근래 심한 내홍을 앓고 있습니다. 태고총림은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수행 종단의 정체성을 지켜내야 할 마지막 버팀목입니다. 경내 원통전에서 홀로 ‘태고총림 선암사 승풍 진작 및 발전을 위한 천일기도’를 올리는 스님의 기도소리가 간절하게 들린 것은 그 때문이었을까요? “마음의 티끌은 씻어버렸고 지혜의 물은 맑다네〔情塵渾擺落 智水正澄凝〕.”라고 노래한 고려 문신 김극기의 시처럼 선암사가 하루 빨리 승풍 진작과 도제 양성의 중심도량로서 제자리를 찾기를 기대해 봅니다.

   
▲ 조계산 숲길.

도량을 뒤로 하고 본격적인 산행에 나섭니다. 선암사에서 산 너머 송광사까지 가는 숲길은 크게 네 갈래가 있습니다. 천년불심길은 그중 큰굴목재와 송광굴목재를 거치는 최단거리 숲길입니다.

숲길은 선암사 서부도전과 편백나무숲을 지나 계곡과 벗하며 큰굴목재로 이어집니다. 숲길 양옆에는 참나무, 나도밤나무, 노각나무, 당단풍, 산딸나무, 산벚나무, 서어나무, 쪽동백 등 다양한 수종의 나무가 저마다 조계산의 일원임을 자부하며 서 있습니다.

조계산은 높지 않지만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이 아름다워 1979년 전라남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습니다. “경치가 정결하고 그윽하며 깊다. 봉우리가 둘이 있어 밝고 고와 마음이 숙연해진다. 사면의 경계가 오로지 묘하다.”(《대동지지》)란 찬사가 과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큰굴목재를 향해 오르다 길가에 선 연인목에 발걸음을 잡혔습니다. 수종이 다른데도 두 나무가 서로를 향해 갈구하듯 한 나무처럼 엉켜 있습니다. 그중 큰 나무가 작은 나무의 줄기를 제 몸 안으로 감싸 안았습니다. 그리 편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네 삶이 그렇습니다. 지나친 사랑은 집착이 되고, 집착은 삶을 고통으로 몰아갑니다. 사랑하되 집착하지 않고, 감싸 안되 언제든 놓아줄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숲길 주변에는 숯가마 터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띕니다. 송광, 선암 두 사찰에서 운영한 숯가마라 합니다. 숯가마는 사찰 재정에도 큰 도움이 되었겠지만 지역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찰은 숲을 보호하려고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매년 한 골짜기에서만 숯을 구웠다 합니다. 조계산에는 이런 숯가마 터가 100여 곳이나 있다고 합니다.

숯가마 터를 지나치자 호랑이 한 마리가 길손을 노려보고 있습니다. ‘호랑이 턱걸이 바위’입니다. 사람의 심성을 꿰뚫어 보는 호랑이가 선한 사람이 올라오면 자리를 피해주고, 악한 사람이 지나가면 해치려고 달려들었다지요. 바위를 지나치면서 내가 걸어온 삶은 바르고 고왔는지 돌아봅니다.

큰굴목재를 넘어 송광굴목재에 이르면 본격적인 하산길에 들어섭니다. 숲길은 돌계단을 따라 지루하게 이어집니다. 토다리 삼거리쯤에 이르면 깊은 소(沼)가 있습니다. 보소(椺沼)입니다. 보소는 핍박받던 조선불교의 현실을 말없이 증언하는 곳입니다. 조선 영·정조 이후 송광사 스님들은 산중 노역에 자주 동원됐습니다. 하루는 관아를 짓는데 쓸 대들보용 나무를 운반하는 일에 동원됐는데, 스님들이 감독이 없는 틈을 타 나무를 소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합니다. 나무가 없어진 사실을 안 감독이 “찾아내라” 윽박지르자 견디기 힘든 스님들이 기도했는데, 며칠 뒤 10리 밖 곡천 다리 밑 삼밧소에서 대들보가 떠올랐다 합니다. 이 때문에 스님들이 대들보를 밀어 넣은 소를 ‘대들보 보(椺)’ 자를 써서 ‘보소’로 불렀다 합니다.

보소를 지나 1km 남짓 내려오면 고려불교 개혁의 산실인 송광사에 이릅니다. 송광사는 흔히 ‘승보종찰(僧寶宗刹)’로 불립니다. 이곳에서 보조 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 스님을 시작으로 모두 열여섯 분의 국사가 배출됐기 때문입니다.

   
▲ 송광사 불일 보조 국사 사리탑.

송광사가 대찰로서 사격을 갖추게 된 것은 고려 명종 대 지눌 스님이 이곳을 정혜결사(定慧結社)의 중심지로 삼으면서부터입니다. 스님은 교(敎)와 선(禪)이 대립하고, 혼란한 세태에 휩쓸려 승가의 기강이 무너지자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일으킵니다. 영천 거조암에서 정혜결사를 시작한 스님은 지리산 상무주암을 거쳐 명종 27년(1197) 이곳 송광사로 결사도량을 옮깁니다.

송광사는 수선사의 2대 국사인 진각 국사와 16대 고봉 국사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으나 임진·정유 두 번의 왜란으로 폐사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송광사가 다시 수선도량으로 명성을 되찾은 건 부휴 선수(浮休 善修, 1543~1615) 스님이 광해군 원년(1609) 이곳에 주석하면서부터입니다. 헌종 8년(1842) 큰 화마를 만난 송광사는 철종 대에 다시 크게 중창되었지만 현대사의 비극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80여 동의 전각과 당우가 소실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이후 송광사는 1970년대 구산 스님이 방장으로 주석하면서 조계총림을 일구고 수선사의 전통을 되살리면서 승보종찰의 면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조계산은 선암사와 송광사라는 두 대찰을 품고 있습니다. 두 사찰은 조계종과 태고종을 대표하는 수행도량입니다. 그 옛날 송광사는 선(禪)을, 선암사(敎)를 대표하는 사찰이었습니다.

지금은 천년불심길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불리지만, 조계산 굴목재를 넘어 오가던 이 길은 닮은 듯 다른, 다른 듯 닮은 두 사찰 스님이 교류하고 의지하며 서로 탁마를 도왔을 길입니다. 그런 면에서 굴목재 옛길을 천년수행길로 바꿔 부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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