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겪는 고통 중 가족의 죽음이나 본인의 질병 등의 본질적인 고통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인간관계가 문제가 되는 경우일 것이다.

그 문제 되는 인간관계를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 달라서 벌어지는 일이 대부분이다. 가치관이 달라서이기도 하지만 출생지역이나 풍습 등 태어나면서부터 멍에처럼 갖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보통은 진화과정에서 생존과 배타성이 연관돼왔다는데, 이제 생존의 위험이 없는 세상에 살면서도 여전히 배타성을 띠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나와 다른 것에 경계심을 넘어 배척하거나 적대시하는 이유는 뭘까. 나는 그것이 ‘기대감’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생각이 비슷해야 내 의견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존중받을 수 있으니 나와 다른 생각은 나를 피곤하거나 힘들게 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젊은이보다는 나이 들어 에너지가 약해진 이들이 자기와 반대되는 의견을 심하게 힘들어한다.

내 생각이 곧 ‘나’이고, 내 생각이 흔들리면 나라는 존재가 위험하게 될 수 있다는 진화의 불합리성을 뛰어넘는 것이 종교, 그 중에서도 불교라고 나는 생각한다. 부처님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며 타인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고 내 안의 불성을 얘기하며 나의 변화를 끌어내려 하셨다. 어디서나 당당하고 조용한 삶을 살 방법을 알려주셨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다른 것을 지혜롭게 극복한 영화 둘이다.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는 많은 난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낯선 세상의 낯선 이들, 가족으로 다시 태어나다

▲ 디판 <출처 = 다음영화>


‘디판’(2015, 자크 오디아드)

스리랑카에서 반군으로 내전에 참전했다가 가족을 잃은 주인공(디판)은 가짜 가족을 만들어 프랑스 망명을 신청한다. 가족이 있어야 망명 신청을 받아줄 확률이 높기 때문인데 젊은 여성(알리야) 하나가 난민캠프를 다니며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일라이얄)를 데려온다. 이들은 새 이름과 나이를 받고 결국 프랑스 망명에 성공한다.

셋은 서로에게 너무나 낯설지만 이들에게는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계속 가족을 유지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있다. 특히 20대의 여성 알리야는 남편이나 아이가 처음이라 더욱 힘들다. 알리야는 일라이얄과도 잘 지내지 못하고 디판과도 그렇다.

그들에게 정착이 허락된 장소는 낡은 아파트촌으로 이미 마약과 범죄의 소굴로, 치외법권 지역 같았다. 그곳에서 디판은 관리인으로 일하고 알리야는 한 노인에게 음식과 집안일을 해주는 파출부로 일하게 된다. 디판이나 일라이얄은 초보 수준의 프랑스어를 하지만 알리야는 그마저도 하지 못해 집을 벗어나면 반벙어리로 살아야 한다.

일라이얄도 새로운 학교에서 친구들의 따돌림을 겪다가 그 친구 한 명을 들이받는 사고를 치고 엄마 역의 알리야가 학교에 불려온다. 알리야는 엄마가 아니라 역할을 맡았을 뿐이라서 그런 상황이 너무 힘들다. 결국 알리야를 때리며 자신의 화를 풀자 알리야는 그를 멀리하고 디판을 따르게 된다.

한편 디판은 특유의 성실함과 강인함으로 관리인으로서 점차 자리를 잡아간다. 하지만 무법자들이 차지한 장소에서는 그를 인종차별하며 조롱하고 또 위협한다. 알리야는 자신이 일하는 집에서 범죄집단의 우두머리이며 전과자인 노인의 조카 브라힘을 만나는데, 자신에게 말을 붙여주는 금발의 잘생긴 그를 점점 좋아하게 된다. 그렇게 아슬아슬하지만 가족이 일상으로 적응해가던 중, 아파트에서 범죄 집단 간의 총격전이 벌어진다. 알리야는 그 충격으로 혼자 짐을 싸서 기차역으로 떠나고 디판이 쫓아가서 잡아온다. 디판에게 잡힌 알리야는 이제 억지로 살게 되고 브라힘을 향한 감정이 더 커진다.

이미 한번 가족을 잃은 디판은 새로 구성한 이 가족을 지키려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만 마음이 떠난 알리야를 보고 괴로워한다. 그는 빼앗아 보관하던 여권과 간단한 쪽지를 알리야에게 남겨 떠나라고 허락한다. 그런 디판의 결정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며 떠나지 못한 알리야, 일을 나간 자리에서 알리야는 브라힘이 상대편의 총에 맞은 걸 보고 도망치려 하지만 브라힘에게 잡힌다. 디판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고 총탄이 빗발치는 현장에서 반군이었을 때의 경험을 살려 총을 쏘며 나아가 알리야를 구출한다.

이제 그들은 진짜 가족이 된다. 디판은 알리야를 구했고 알리야는 총격전을 처음 겪었을 때 일라이얄을 보호했다.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서로를 구하는 경험을 나눴으며 낯선 세상에서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관계가 되었다.

편견이 없다는 것은 용기 있다는 것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2017, 기예르모 델 토로)

▲ 셰이프 오브 워터 <출처 = 다음영화>

 


미 항공우주연구센터 비밀 연구실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엘리사는 어느 날 괴생명체를 만난다. 물고기처럼 비늘이 덮여있고, 아가미로 숨을 쉬는 물고기인간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인간과 너무 다른 모습과 기괴한 소리를 내는 그를 끔찍하다고 외면할만하다. 하지만 엘리사는 그에게 선뜻 다가간다. 자신이 가져온 계란을 그의 앞에 살포시 놓으며 먹으라 하고, 텐테이블을 갖고 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듣기도 한다. 본능적으로 그가 악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엘리사는 그가 놀라지 않게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간격을 좁혀간다.

 

여기서 엘리사에 대해 알고 갈 필요가 있다.
엘리사로 말할 것 같으면 어렸을 때 버려졌고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졌고 건물의 청소부로 일 하고 있다. 그러니 외형상 우리 사회의 제일 낮은 위치에 있다고 할 만한 인물이다. 그의 친구로는 함께 청소하는 흑인여성 젤다와 가난한 화가이자 동성애자인 남자사람친구 자일스가 있다.

엘리사는 편견이나 두려움 없는 인물이다. 여기서 물고기인간으로 상대를 설정한 이유도 말 못하는 엘리사와 교류할 수 있는 장치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엘리사에게 눈을 맞추고 그의 언어를 들으려고 귀 기울일까.

고아 장애인, 흑인, 동성애자는 사회에서 외면하는 인간군상으로, 감독은 의도적으로 이들을 서로 의지하도록 구성해놓았다. 거기에 괴생물체라는 극단적인 설정으로, 낯섦을 가장 극대화했다. 감독은 엘리사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이런데도 겁이 안나? 이런 인물에게도 마음을 열 수 있어?’라고 묻는 듯하다.

엘리사와 맞서는 인물은 연구실의 보안책임자인 스트릭랜드로, 권위적이며 출세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 그는 아마존에서 신으로 추앙받는 물고기인간을 잡아와 인간의 발아래 두고 연구를 빌미로 전기 충격봉으로 고문한다. 그는 자신과 다른, 모든 것은 무시한다. 여자를 무시하고 백인이 아닌 인종을 무시하고, 장애인을 희롱하며 물고기인간을 혐오한다.

물고기인간이 곧 죽게 된다는 계획을 듣고 엘리사는 그를 구출할 계획을 세운다. 젤다나 자일스는 겁을 내지만 결국 친구인 엘리사를 믿고 계획에 동참한다. 약자들의 연대가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욕조에 채워진 물에서 살게 된 물고기인간의 생명은 점점 강도가 약해지며 강을 통해 바다로 돌아가야 살 수 있다. 엘리사는 또다시 어려운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마지막 장면에서 물고기인간은 진짜 신이었다. 총을 맞고도 살았고, 엘리사를 데리고 물로 도망쳤다.

약한 인간일수록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디판〉은 그런 두려움을 가족을 구성하려는 신념 때문에 깨는 과정을 그렸고, 〈셰이프 오브 워터〉는 잃을 것 없는 약자가 결국은 가장 포용력이 크며 사랑을 얻을 수 있음을 역설한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 편견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기고 그걸 표시내지 않기 위해 권위를 가장해 억압한다. 그런 와중에 폭력이 동반하기 마련이다.

만약 당신이 부처님처럼 ‘천상천하 유아독존’하고 싶다면 먼저 다름에 대해 마음을 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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