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 수련, 또는 수행이 유행이다. 한국 불교의 전통 수행법인 간화선이 도시로 내려온 것은 이미 오래됐고, 남방 불교의 전통 수행법인 위빠싸나, 사마타 등도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얼핏 보기에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런 붐이 일지 않으면 안될 만큼 심신이 피폐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이 그만큼 절실한 문제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행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기나 한 것인가. 만약 도움이 된다면 어떻게 얼마만큼 도움이 되는 것인가. 오랫동안 정신치료 현장에서 수행을 접목시켜온 서양정신과 전문의들은 “수행과 현행 서양정신치료는 분명 다르며, 수행이야말로 정신치료학계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말하고 있다.
프로이트와 융의 사유에 근간을 두고 있는 서양 정신치료의 요체는 약화된 자아를 강화하거나, 미숙한 자아를 보다 성숙시켜 자신의 문제를 옳게 깨닫게 해주는 데 있다. 즉, 자아에 의한 무의식 속으로 추방되었으나,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자아를 괴롭혀오고 있는 응어리진 것들을 의식 속으로 끌어들여 자기를 더 잘 알게 되면 생각과 행동과 삶의 자세가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수행과 서양 정신치료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는 정창용 박사(대동병원·대구)는 “자아를 강화하는 것으로 인간의 이상불안(異常不安), 즉 정신병은 치료할 수 있지만, 보통 인간이 살아가는 데 불가피한 정상불안(正常不安), 즉 번뇌는 막아낼 수 없다”며 서양 정신치료의 맹점을 지적한다.
인간의 고뇌를 뿌리째 뽑기 위해서는 자아를 강화하는 서양 정신치료에서 한 단계 나아가 지금까지 자기라고 믿었던 ‘자아’를 참선을 통해 전면적으로 재검토, 이에 대한 집착을 철저히 포기함으로써 자성이 본래 청정하고 번뇌 또한 공(空)한 것임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죽내 교수(경북의대 정신과) 역시 “노장의 핵심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고, 이에 이르는 방법은 ‘마음을 비우고(치허·致虛), 마음을 고요히 지키는 것(수정·守靜)”이라며, 이는 “분석심리학에서 ’자기‘가 되는 것, 즉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것”과 일치한다고 설명한다.
사실 두 사람과 같이 수행을 바탕으로 정신치료를 시도해 긍정적인 효과를 얻고 있는 정신치료 전문의들은 1970년대 이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에 있고, 한국정신치료학회를 결성해 ‘도(道)·정신치료’라는 다소 생소한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프로이드나 융 관련 학회와 비견되는 동양의 정신치료학회로 주목받고 있다.
최훈동 한볕정신병원장은 “수행은 정신질환 치유에 있어 약물요법이 보완할 수 있는 대체요법으로서의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깊이 관하고 욕망에 끄달리지 않도록 하는 수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학적 효용가치도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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