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산은 네팔 히말라야산맥의 8000m급 봉우리 14좌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봉우리이다. ‘풍요의 여신’이라는 의미의 안나푸르나는 8091m인데, 등반대의 전진기지인 베이스캠프는 4130m에 있다. 일반적으로 안나푸르나 트레킹이라고 하면 베이스캠프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지난 12월 필자가 남편과 함께 다녀온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 네팔 카투만두에 본사를 둔 Chaudhary Group이 네팔 트리부반 국제공항에 조성한 불상.
여행의 시작은 항공권 끊기입니다. 몇 주 동안 항공권 비교사이트를 들락거리면서 알아보다가 마침내 중국 남방항공으로 결정했습니다. 우리 입에 맞는 기내식을 먹으면서 편하게 갈 수 있는 직항도 있지만, 남방항공의 저렴한 비용을 결국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예약한 항공권은 중국 광저우를 경유하는 조건입니다.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광저우에 가서 기다렸다가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야 하지요. 이게 좀 번거롭게 여겨질 수 있지만, 네팔 가는 경우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네팔까지 직항으로 가면 8시간이 걸리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 한자리에 앉아있는 것보다는 중간에 내려서 다리도 풀고 따뜻한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온 게 오히려 좋았습니다.

비행기에서 찾아온 두통

광저우에서 비행기를 바꿔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럽게 두통이 찾아왔습니다. 비행기나 여행지에서 아픈 적이 없었기 때문에 겁도 나고 당황스러웠습니다. 두통약이라도 먹으면 좋겠는데 수화물로 부쳤기 때문에 약도 없고,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어서 참아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두통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식은땀이 나고 어지럽고 고통이 너무 심해서 정신을 잃을 것 같아 승무원을 불렀습니다.

“두통약 있나요?”
“드러그?”

나의 ‘드러그’(약)라는 영어발음을 잘 못 알아듣는 듯 했습니다. 그러더니 “드럭?”했습니다.

드디어 상황을 파악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더니 아스피린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중국산 두통약을 먹을 것인가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옆에 앉은 남편은 내가 다른 나라 두통약을 먹었다가 부작용이 나서 갑자기 잘못 될까봐 큰 소리로 ‘아스피린’이라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승무원은 약을 갖다 주겠으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자리를 떴습니다.

그녀가 떠나고 다른 승무원이 기내식을 나눠주었습니다. 난 먹고 싶지 않아서 안 받았는데 사람들이 먹으면서 내는 소리, 음식냄새 등이 굉장히 예민하게 다가왔습니다. 제발 사람들이 밥을 빨리 먹고 조용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머리를 누른 채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금방 약을 가져다줄 것 같던 승무원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내가 몹시 아파하는 것을 느꼈는지 다른 승무원에게 다시 나의 상황을 서툰 영어로 설명했습니다. 그 승무원이 가고 나서 마침내 처음 나에게 약을 갖다 주겠다고 했던 승무원이 아스피린과 따뜻한 물 한 컵을 갖다 주었습니다. 그녀가 정말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격렬한 두통 때문에 거의 죽을 지경이다가 희망이 생기는 기분이었습니다.

약을 먹고 나니까 졸음이 몰려왔고, 마침내 한숨 잘 수 있었습니다. 자고 나니 두통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기분도 좋아졌습니다. 비행기도 마침내 카트만두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불상이었습니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가 있는 나라답게 공항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고 아담한 공항청사지만 ‘네팔에 마침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막연한 꿈, 그리고 두려움

나는 정말 오래전부터 네팔 히말라야에 가겠다고 별렀습니다. 막연하게 이런 꿈을 안고 있었던 것은 20여 년 전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다녀온 동생이, 그곳에서 걸었던 시간이 자기 삶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동생의 말은 내게 각인됐고, 기필코 히말라야에 가야겠다는 생각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5년 전에도 가려고 구체적으로 시도했고 재작년에도 가려고 했는데, 항상 피치 못할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히말라야와 인연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꿈이 이뤄진 것입니다.

마냥 기쁠 것만 같았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너무 큰 기대를 했던 만큼 부담도 컸던 모양입니다. 동생은 마치 히말라야를 천국처럼 말했는데 여행 준비를 하면서 그 천국에 대한 회의감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고산증이 두려웠습니다. 고산증은 해발 3000m쯤 위치한 ‘데우랄리’라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는데 두통을 앓거나 불면증, 어지럼증, 심할 경우 호흡곤란을 겪으며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 글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눈사태로 사망사고가 있었다는 얘기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자 히말라야에 대한 두려움이 슬금슬금 올라왔습니다.

광저우에서 카트만두 갈 때 생긴 갑작스러운 두통은 이런 부담감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동생이 말한 천국에 가면서 난 심하게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고산증에 대한 두려움, 겨울이니만큼 눈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준비물을 제대로 안 챙긴 것 같은 찜찜함, 과연 끝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등, 산에 오르기도 전에 걱정이 너무 많았습니다. 천국에 가면서 걱정을 한가득 안고 간다는 것은 너무나 모순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라는 경고였는지 갑작스럽게 두통이 생겼던 것입니다.

카트만두 공항에서 만난 불상을 향해 무사히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마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김은주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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