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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추는 모습이 다르듯
2019년 03월 06일 (수) 16:06:00 한국불교선리연구원 .

제5장 인과(因果)

582. 그 때 문수보살이 보수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모든 중생들의 4대(四大, 육신을 구성하는 地水火風)가 평등하고 ‘나’라든지 ‘내 것’이 없는 것일 터, 어찌하여 어떤 이는 괴로움을 받지만 어떤 이는 즐거움을 받고, 어떤 이는 단정하지만 어떤 이는 누추하고, 어떤 이는 지금의 삶에서 과보를 받지만 어떤 이는 다음 세상의 삶에서 과보를 받는 것이오니까?”
보수보살이 대답했다.
“그 사람의 행위에 따라 이러한 과보의 차이가 생기오니, 비유하면 밝은 거울에 비춰지는 사물의 모습에 따라 각기 다릅니다. (의지해 머물지만 서로 알지 못하는) 업의 성품은 본디 공(空)하며 씨앗의 성품도 그러합니다. 마치 밭에 뿌려진 씨가 서로 알지 못하면서도 제각기 자연히 움싹 트는 것과도 같고, 환술사(幻術師)가 사방으로 통하는 길거리에서 여러 빛과 모양을 나타내는 것과도 같습니다.”
- 《화엄경(華嚴經)》

583. 과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상의 선업과 악업은 그대로 간직되어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재와 미래의 고락(苦樂) 등의 업보를 다시 능히 성숙〔진리로 이끌어 완성시킴〕시켜 차이와 어긋남이 없게 한다. - 《기신론(起身論)》

584. 모든 중생은 각자 번뇌〔몸과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괴롭히는 나쁜 정신을 총칭〕를 지은 업(業)으로 그 형상〔몸〕과 거하는 경지를 스스로 만든다. 일일이 자기 형상과 거하는 경지, 그리고 있는바 수용(受用)을 스스로 이루는 것은 업 외에 다른 물건이 또 없다. - 화엄경(華嚴經)》

585. 업(業)이 보(報)를 벗어나지 않고, 보(報)가 업(業)을 벗어나지 않는다. - 《화엄경(華嚴經)》

586. 일체 중생의 고락(苦樂)의 과보(果報)가 모두 현생의 업(業)에 연유함은 아니다. 그 원인이 과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원인이 없으면, 미래에 과(果)가 없는 것이다. - 반경(涅槃經)》 

587. 선악(善惡)의 보(報)는 그림자(影)가 형상(形)을 따르는 것과 같다. 삼세의 인과는 순환하여 없어지지 않나니, 이 생을 헛되이 보내면,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 《열반경(涅槃經)》

588. 소위 인과(因果)는 선악(善惡)을 인(因)이라고 하고, 고락(苦樂)을 일러 과(果)라고 한다. 말미암는 바가 인(因)이오. 일어나는 바가 과(果)이니, 말미암는 바와 일어나는 바가 서로 의존하여 함께 인과(因果)가 된다. -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
589 인연(因緣)이 화합하여, 선악(善惡)의 업(業)과 고락(苦樂) 등의 보(報)가 없어지지도, 파괴되지도 않는다. - 《기신론(起身論)》

590. 정의도니야자(淨意兜泥耶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모든 사람들의 각종 행상(行相)이 각각 차이가 있어, 혹은 장수(長壽)하며, 혹은 단수(短壽)하며, 혹은 병이 많으며, 혹은 병이 적으며, 혹은 단정(端正)하며, 혹은 추루(醜陋)하며, 부귀자도 있고 빈궁자도 있으며, 우치자도 있고 지혜자도 있어, 이 같은 종류의 차이가 갖가지 있으니, 어떤 인연으로 보응(報應)이 이와 같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중생이 지은 바 행위의 원인에 차별이 있는 까닭에 그 얻는바 과(果)도 각각 차이가 있는 것이다.” - 《우바새소문경(優婆塞所問經)》

591. 591. (과거세에 지은 인(因) 때문에 금세에서 그 과를 받는) 숙인금과(宿因今果)가 터럭만큼의 차이도 없다. 인(因)을 말미암아 과(果)를 이루나니, 과(果)는 그 인(因)과 같다. 이에 바르게 알아 모든 의심의 그물망(疑網)을 제거해야 한다. 선악의 업보가 결코 허망하지 않으며, 그 세력이 거센 물줄기와 같아, 가히 제어하지 못한다. 이러한 업력 때문에 그 보를 각각 부르니, 복의 인〔福因〕을 스스로 지으면 낙과(樂果)를 얻을 것이다. 백천겁을 지나도 저 업은 가히 파괴되지 않는다. 인연이 서로 화합하여 과보를 반드시 받게 된다. - 《정행소집경(正行所集經)》  

592. 선악(善惡)의 업(業)을 말미암아 윤회(輪回) 유전(流轉)하여 고락(苦樂)의 보(報)를 부른다. - 《제법집요경(諸法集要經)》

593. 모든 중생이 지은 바 업(業)은 비록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가, 인연(因緣)이 서로 만나게 되면 마땅히 그 과보를 마땅히 스스로 받게 된다. - 《광명동자인연경(光明童子因緣經)》

594. 일체 유정이 짓는 업(業)과 닦은 인연의 선악(善惡)이 같이 않아, 획득하는 바 보응(報應)에 귀하고 천함과 높고 낮음 그리고 종족(種族)의 높고 낮음 또한 다르게 된다. - 《분별선악보응경(分別善惡報應經)》

595. 인생은 홀로 태어나, 죽을 때 역시 홀로 죽는다. 몸이 선악(善惡)을 지으매, 홀로 당하여 대신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 《뇌타화나경(賴吒和羅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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