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평생을 불자로 살며, 배우로서의 한길을 가는 전무송 배우.(사진=예천배우연구소)

1962년부터 시작해 56년간 연기의 한길을 걸어온 배우, 전무송.

만나자마자 그는 “《반야심경》만 겨우 외우는 정도지, 절에 갈 때마다 부끄럽다”며 웃었다. 연극한 지 20여 년 만에 임권택 연출의 영화 〈만다라〉에서 ‘지산 스님’ 역할을 하며 불교를 만났다. 어머니가 절에 다녔지만 본인은 〈만다라〉 대본에서 ‘백척간두’, ‘견성’ 등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처음 절을 찾은 것이다.

그 즈음인 1979년 영산회가 결성됐다. 전무송 씨와 이왈종 화백, 김홍신 작가, 김상준 아나운서, 국악인 김종엽 씨를 비롯해 당대의 문화예술인들이 경국사에서 모여 지관 스님을 법사로 모셨다. 영산회는 부부가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매달 법회를 갖고 큰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신심을 키웠다. 또 사찰순례와 여름수련회 등도 정기적으로 실시했다.

전무송 씨 부부는 지관 스님께 ‘다정(茶亭)’과 ‘반야심(般若心)’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40여 년을 이어온 영산회는 그 사이 지관 스님이 열반하시고 지도법사를 정법사의 법진 스님(선학원 이사장)으로 모시는 변화를 맞았지만 그 외에는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돈 없고 열정만 많던 당시의 젊은 예술가들은 그 사이 사회적으로 명망을 얻었지만, 만나면 여전히 ‘형’, ‘ 아우’로 부르며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그 시절로 돌아간다. 현재도 40여 명의 회원들이 있고 30명 이상 모임에 나온다.

“연극의 뜻을 펼쳐라”라는 숙제

그는 최근 연기를 꿈꾸는 이들을 위해 터전을 열었다. 자신이 한국연극아카데미 1기생으로 극작가 유치진 선생에게 연기를 배우며 인생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처럼, 연기에 목마른 이들에게 자신이 배운 것을 물려주고 싶은 것이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강남구 소재 예천배우연구소(이하 예천연구소)는 지난해 후반 창립해, 12월부터 단원을 모집했고 새해의 시작과 함께 첫발을 내디뎠다.

연극연출가이자 배우인 김진만 씨가 대표로 있고, 전현아, 전진우, 김미림 배우가 강사로 포진해있다. 그들은 전무송 씨의 사위, 딸, 아들, 며느리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가족이 경영하는 연기아카데미인 셈이다.

“제가 연극을 공부하던 때는 연극인의 사회적 지위가 일천했습니다. 그래서 유치진 선생님은 제게, ‘열심히 공부해서 연극의 뜻을 펼쳐라’라고 숙제를 주셨지요.”

전무송 씨는 우리 사회가 발전했지만 연극에 대한 문화적 접근은 여전히 안 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스럽다. 그래서 이번 예천연구소의 설립에 거는 기대가 크다.

예술이 하늘을 감동시킨다는 뜻의 ‘예천(藝天)’ 연구소가 보통의 연기스쿨과 다른 점은 대학입시를 위한 교육기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대학과 연기스쿨에서 학생을 가르쳤던 김진만 대표는 입시 위주의 연기 교육에 염증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예천연구소는 순수하게 연기가 좋아서 취미로 하고 싶은 이와 배우가 됐지만 학교교육에서 배우지 못한 실제 연기를 다시 배우려는 이의 두 가지 방식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아마추어 극단과 배우 재교육을 위주로 한다는 말이다.

이런 생각을 뒷받침 해주는 든든한 지원자가 바로 전무송 씨다. 현재 주말반으로 등록한 청소년극단, 직장인극단 단원들이 6개월 과정으로 매주 1회 연기를 배우고 있다. 이들은 과정이 끝나는 시점에 무대에 공연을 올릴 예정이다. 또 드라마제작사에서 의뢰한 배우 재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꾸준히 예천연구소의 성과를 쌓아가고 있다.

전무송 씨는 “우리에게 연기를 배우고 무대에 서며 아마추어 연극인이 된다면 그들이 느끼는 ‘연극’은 전과 다를 것”이라며 “제 숙제가 조금이라도 해결되고 또 단원들이 이를 통해 인생을 여유롭게 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불교 공연 꿈꾸지만 현실은 요원”

불교전용극장 설립 꿈꿔

전무송 씨가 최근 관심을 갖는 또 하나는, 불교의 ‘진공묘유(眞空妙有)’를 영상으로 재현할 영화 〈공유(空宥)〉의 제작이다. 서울예대 후배이자 영화감독인 김행수 씨가 준비한 시나리오를 받고 출연하기로 약속했는데 제작이 진행되지 못하는 상태다.

‘공유’는 산중의 도인인 묵계 스님이 생을 정리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자신이 예전에 거둔 상좌 묘진, 법공 스님과 이별하는 이야기다. 젊은 상좌들은 진리로 향하는 길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묵계 스님이 열반에 들며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언뜻 〈만다라〉가 떠올려지는 이야기다.

전무송 씨는 묵계 스님으로 내정돼 있지만 불교라는 제한적인 소재의 영화가 제작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다. 먼저 시나리오를 소설로 출간했고 지금도 제작을 위해 노력하는 단계다.

“불교계가 출가자와 신도 감소로 어려움을 맞고 있는데 제 생각에 가르침을 확산할 때 가장 효과가 있는 건 영상입니다. 포교적 측면에서 이 영화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저예산 독립영화로 제작할 것이고 흥행보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영상언어로 풀어서, 알기 쉽게 만드는 게 목적이다. 만약 수익이 생긴다면 같은 의미의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데 쓰겠다는 감독의 말을 전무송 씨가 대신 전했다.

인터뷰 말미에 전무송 씨는 두 가지 꿈을 얘기했다. 첫 번째는 불교전용극장으로, ‘조신의 꿈’ 같은 연극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장소를 갖고 싶다고 했다. 두 번째는 크리스마스에 교회에서 작은 무대에 연극을 올리는 것처럼 사찰에서도 부처님오신날, 신도들이 연극무대를 마련하면 좋겠다고 했다.

1941년생, 80을 앞둔 천생 연기자인 그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그는 아이처럼 웃으며 낙천적으로 말했다.

“살아있으니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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