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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당 대휘 스님(老老堂 大徽, 1907~1992)
능엄주 독송 정례화, 선과 율 수행의 중추
2018년 07월 25일 (수) 11:24:59 한국불교선리연구원 budjn2009@gmail.com


   
▲ 대휘스님 근영

노노당 이대휘 스님은 청담 스님, 영암 스님, 성철 스님 등 근대 고승들의 도반으로 경학에 밝으시고, 계율에 엄하시며, 선화에도 능하신 스님이셨다. 조선 조계종맥의 태고 보우에서 7대 부휴의 정통 맥을 이은 16대 월헌(月軒) 정광(淨光) 선사로부터 법통을 이어 받으셨다. 은사 하정광 스님으로부터 대휘 스님이 받은 전법게(傳法偈)는 다음과 같다.

松鶴千秋月江 天萬里碧禪翁 歸何處依舊宿 欄于

선사이자 율사로서 한 평생을 청규정신으로 일관되게 정진하신 스님은 수행자들의 모범이 됨은 물론, 신도들을 정법에 의지하여 생활하도록 지도하신 근세 한국불교 큰스님 중의 한 분이시다.

스님의 법명은 대휘(大徽), 법호는 노노(老老)이다. 순종 1년인 정미년 1907년 1월 29일, 경북 청도군 각남면에서 출생하시어, 1927년 10월 15일에 경북 선산(현 구미) 도리사(桃李寺)에서 월헌당(月軒堂) 하정광(河淨光)선사께 득도하시고, 같은 날 이석우(李石右) 선사께 사미계를 수지하셨다.

스님의 은사인 하정광 스님은 당시 선객인 정금오(鄭金烏) 스님, 이단암(李檀庵) 스님, 이탄옹(李呑翁) 스님, 이백우(李白牛) 스님, 설석우(薛石友) 스님, 정운봉(鄭雲峰) 스님들과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하시던 기라성 같은 선객들이었으며 후일 한국 불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셨던 분들이다.

1932년 3월 15일 도리사 강원에서 사교와 대교과를 수료하신 대휘 스님은 1932년부터 2년간 선산 도리사에서 안거를 나시고, 1934년에는 통도사 백련암에서 하안거, 1935년부터 2년간은 묘향산 상원사와 법왕대에서 안거를 나셨다.

1936년 중국으로 건너가신 스님은 3월 15일 중국 강서성 보화산 융창율원에서 융인율사(融忍律師)에게 구족계를 수지하셨다. 1937년부터 그 이듬해인 1938년까지 중국 상주 천녕사(天寧寺)에서 안거하셨고, 1938년부터 1939년까지 진산 금산사(金山寺) 및 오대산 광제모봉(廣濟茅峯)선원에서 안거하셨다. 1941년 4월 26일에 중국 보화산 호국혜거사 계단에서 보살계를 수지하셨다. 1941년부터 2년간은 일본 교토의 만복사(萬福寺)에서 안거하셨다.

스님은 귀국 길에 장개석 당시 중화민국 총통을 방문하여 법담을 나누기도 하셨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귀국 후, 1943년에는 금강산 마하연암 선원에서 하안거를, 이어 1944년부터 2년간은 선산 수다사에서 안거를 나셨다.

이렇듯 여러 도반과 함께 대중 생활을 통해 철저히 선(禪)과 율(律)을 수련한 스님은 이후 1945년 7월 15일 충북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에 강천사(江天寺)를 창건하셨다.

1949년 문경 대승사에서 하안거를 나신 후, 이듬해인 1950년 부산 선암사에서 하안거, 1951년 양산 내원사에서 하안거, 같은 해 통도사 극락암에서 동안거를 나셨다. 1952년에 김해 신어산 영구암, 1958년에는 김해 신어산의 은하사, 1958년부터 2년간 밀양 표충사의 주지 소임을 맡으셨다.

1959년 2월 2일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에 육주사(六舟寺)를 창건하셨다. 2년 후인 1961년 부산 원효학원 이사를 맡으셨고 같은 해 설악산 봉정에서 하안거를 나셨다. 다음 해인 1962년 김용사 금선암에서 안거를 나신 후, 1963년 양산 통도사 주지 소임을 맡으셨다. 1968년 의성 고운사 주지와 밀양 표충서원의 이사장직을 맡게 되셨다. 같은 해 대한불교조계종 원로로 추대되어 종단 발전에 힘쓰셨다. 1970년에는 재단법인 선학원 제9대 이사장을 역임하셨다.

해인사 지월 스님을 중심으로 한 <축성여석회(築城餘石會)>의 모임을 함께 하신 스님은 청담 순호, 운허 용하, 홍경 장육, 탄허 택성, 고암 상언, 구산 수련, 벽안 법인, 자운 성우, 노천 월하 등 당대의 선지식들과 함께 종단의 대소사를 논의하셨다.

제천 강천사와 부산 육주사를 창건한 스님은 신도들의 증언에 따르면 평소 근검절약하시며 치열하게 구도하시고,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셨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많은 불자들이 각지에서 찾아들었다. 평소 불자들을 위해 경전 강의에 남다른 심혈을 기울이셨던 스님은 특히 능엄주를 강조하셨고, 때때로 먹을 갈아 부처님의 경문을 써주기를 즐기셨다고 한다. 주로 <반야심경>과 <금강경>, <선가귀감> 등 소필의 족자와 병풍 글이 많다.

세월이 흘러 80대 노구가 되셔도 수행에 한 치의 나태함 없이 정진하시던 스님은 임종이 가까워지자 “절대 밖으로 소문내지 말고, 문도들만 모여 조용히 다비하라”는 유언을 남기시며 납자의 본분을 지키고자 하셨다. 1992년, 음력 9월 20일 부산 육주사에서 입적하시고,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천태사에서 유언에 따라 다비가 비교적 조용히 치러졌다.

스님께서는 근세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능엄주를 하신 분으로 항상 능엄주를 염하셨다. 이후 봉암사 결사 등에서 능엄주 독송이 정례화 되기도 하였다. 스님께서 송학산에서 축지법을 하셨다는 일화와 아울러 스님에 얽힌 많은 이야기가 문도와 신도들 사이에 전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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