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로 잴 수 있는 인위적인 시간의 흐름은 지속과 변화의 중첩된 양상으로 다가오곤 한다. 찰나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직접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 불교의 시간관에 따르면 동일한 시간의 지속도 영원도 가능하지 않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우리 눈 앞 달력에서 저물어가는 한 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것 또한 우리 개인과 사회의 역사로 쌓이며 굴절된 기억의 대상으로 전환될 것이지만 말이다.

2017년은 내게 어떤 해로 기억될 수 있을까? 공부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강의라는 매개를 통해 전달하는 일을 업으로 갖고 있는 내게는 우선 올해도 강의실 등에서 만난 수많은 눈망울과의 마주침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 중에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지 않을 마주침이 대부분이지만, 올 초 한라산 중턱에 자리한 탐라교육원에서 그 지역 도덕 선생님들과 만나 삶과 교육을 이야기했던 진지한 기억은 내려오는 길 잠시 차를 멈추게 했던 새끼노루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함께 꽤 오래 남을 이야기로 접힐 것 같다.

또 한 가지 잊을 수 없을 이야기는 조계종 적폐 청산 시민연대와 청정승가 구현을 위한 연석회의의 구성원으로 참여해 최소한의 계율이라도 지키는 종단 운영과 불교 자체의 청정성 회복을 외친 일이다. 범불교도대회를 비롯한 대규모 집회 두 번과 매주 목요일 저녁 진행된 촛불법회, 조계사 앞 기자회견과 피켓 시위 등을 통해 우리는 평화적이면서도 끈질기게 외쳤고, 그 외침은 특히 종단 외부의 시민사회 전반에 잔잔하지만 꽤 울림이 큰 사건으로 기억될 듯하다. 그 중에서도 기독교와 가톨릭 평신도들에게 미친 영향은 루터 종교 개혁 500주년과 겹치면서 일정한 성과로도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단 자체의 개혁을 이루는 데는 실패했다. 시민연대 2기가 출범했고 연석회의 또한 승가 중심의 연대체로 자리매김하고 있어 개혁의 외침은 진행형이지만, 범계 의혹이 있는 총무원장 체제의 지속이라는 결과는 우리들로 하여금 일정한 열패감을 느끼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그 지점에서는 분명 실패했기 때문에 이 상황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의 지혜를 갖추고자 하면 해소될 문제일 뿐이다.

그 여실지견의 과정 속에는 우리 자신, 특히 재가자로서의 삶의 자세와 계율 준수에 관한 성찰이 포함되어야 한다. 원효가 그토록 강조했던 자찬훼타계, 즉 자신의 허물은 눈감으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에만 눈을 부릅뜨는 태도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범계승을 옹호하는 승가공동체는 그들만의 고립된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재가자를 포함하는 사부대중공동체의 구성 요소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우리 시민사회에 포함된 특수한 공동체인 종교공동체의 하나일 뿐이다. 식당에 가서 스님에게 고기와 술을 권하면서도 뒤돌아서서는 비난하는 재가자나, 분명히 밝혀진 범계 행위가 있음에도 ‘우리 스님’이라고 무조건 숭배하고 얼굴 붉혀가며 옹호하는 일부 보살의 행태 또한 비판적 극복의 대상이다.

자찬훼타계를 생각하는 과정에서는 당연히 적폐운동을 함께했던 동지들에게도 그 성찰의 시선이 돌려져야 한다. 힘주어 적폐청산을 말하고는 실천으로 온전히 옮기지 못한 자신이나, 바쁜 일상을 쪼개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뒤에서 관전평만 보내는 일부 시선들, 승가와 재가를 엄격히 분리시키면서 승가만을 향해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 모두 자찬훼타계를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는 섣달이었으면 좋겠다.

불교의 진리 중 핵심은 나와 남이 온전히 분리되지 않는다는 불이(不二)의 연기론(緣起論)이다. 이 변치 않는 진리를 우리 자신의 삶 속에서 확인하고 실천하면서 질긴 어둠[無明]의 그림자를 떨쳐버리는 일이 사부대중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내야 하는 목적이자 목표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그럴 수 있으면 2018년 새해는 맑고 환한 햇살이 비치는 한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렘도 공유하고 싶다.

박병기 |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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