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 누대

중구지언(中冓之言)이라는 말이 있다. 침실 깊숙한 곳의 말이란 뜻으로, 남녀 간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가리킨다. 이 말은 《시경》의 〈담장의 찔레나무[牆有茨]〉란 노래에서 유래한다.

담장의 찔레나무 牆有茨
쓸어낼 수 없네 不可掃也
침실서 한 얘기 中冓之言
말할 수 없다네 不可道也
말할 수 있어도 所以道也
말하면 추해져 言之醜也1)

드러내면 추해지는 이야기가 중구지언이다. 남녀 간의 이야기는 대개 그렇다. 부부만의 은밀한 이야기가 까발려져 듣기 민망한 경우가 생기는 건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쩌면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지도 모른다.

2700여 년 전 춘추시대 위(衛)나라에 선공(宣公)이라는 왕이 있었다. 이 왕은 어지간히 여자를 밝혔다. 사내대장부가 여색을 밝히는 거야 당연시하던 시절에도 분별력 없는 호색은 문제가 되기 마련이다. 선공은 왕자 시절부터 호색한의 명성이 자자했다. 그는 부왕인 장공(莊公)의 애첩 이강(夷姜)과 사통하여 급(伋)이라는 아들까지 낳았다. 그리고 부왕이 죽고 왕위에 올라서는 본처를 제쳐놓고 이강을 원비(元妃)로 여겼다. 이강 또한 실질적인 왕후로 행세하며 이들은 급을 후계자로 앉히려 하였다.

급이 장성하여 장가를 보낼 때가 되었다. 선공은 이웃나라인 제(齊)나라 희공(僖公)의 맏딸과 혼인시키기로 하고 사자를 보내 혼담을 성사시켰다. 사신으로부터 며느리가 될 여자가 절세미인이라는 말을 들은 선공은 구미가 당겼다. 그는 먼저 강가에 멋진 저택을 짓고, 곧 신랑이 되어야 할 아들 급은 송(宋)나라에 사절로 보냈다. 그리고 새 집에서 며느리가 될 여자, 선강(宣姜)을 맞았다. 선강은 젊은 왕자와 혼인하러 왔다가 늙은 왕의 첩이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노래했다.

새 누대는 선명하고 新臺有泚
황하 물은 출렁출렁 河水瀰瀰
고운 님을 구했는데 燕婉之求
이 못난이 왠말인가 蘧篨不鮮

새 누내는 화사하고 新臺有洒
황하물은 철렁철렁 河水浼浼
고운 님을 구했는데 燕婉之求
이 못난이 죽지 않네 蘧篨不殄

고기 그물 쳤더니만 魚網之設
큰기러기 걸렸다네 鴻則離之
고운 님을 구했는데 燕婉之求
이 못난이 만났다네 得此戚施2)

《시경》의 〈새 누대[新臺]〉란 노래이다. 이 노래에서 매 절마다 등장하는 못난이는 거저(蘧篨)를 번역한 말이다. 거저는 갈대나 대나무를 대충 엮어 만든 거친 자리이다. 흔히 거적때기라고 하는 거적이 이 말에서 유래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당시 사람들에게 선공은 어지간히 꼴 보기 싫은 왕이었던 것 같다. 시의 내용은 아름다운 왕자님과의 황홀한 첫날밤을 꿈꾸며 멀리 시집을 왔는데, 화려한 신방에 들어온 신랑은 못생기고 추잡한 늙은이였다는 것이다.

2. 두 아들이 배를 타고

첫날밤 선강을 맞이하였던 선공이 그렇게 추한 몰골의 늙은이였을 것 같지는 않다. 선강을 며느리로 데려올 때 급의 나이가 16살이고, 선공이 왕자 시절에 급을 낳았으니, 이때는 넉넉하게 잡아도 30대 후반, 더 늙어봤자 4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왕으로서는 한창 폼 나는 나이이고, 권력자로서는 당당해 보이는 나이이다. 선강인들 이런 왕을 싫어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선강은 곧 선공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수(壽)와 삭(朔)이라는 두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 한쪽의 행복은 다른 한쪽의 불행임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왕의 총애를 잃은 이강은 자결한다.

이강의 죽음을 기다렸다는 듯 선강은 둘째 아들 삭과 모의하여 급을 모함하였다. 이들의 무고에 혹한 선공은 급을 제나라에 사자로 보내며, 따로 몰래 도적에게 사람을 보내 급을 죽이도록 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선강의 첫째 아들 수가 이복형인 급에게 알리며 도망칠 것을 권했다. 하지만 급은 부왕의 명을 거역할 수 없다며 제나라로 떠나려 하였다. 할 수 없이 수는 술자리를 마련하여 급을 취하게 만들고는 자신이 사신의 절기(節旗, 사신임을 나타내는 깃발)를 들고 제나라로 떠났다. 도적은 수를 급으로 알고 살해하고, 뒤미처 당도한 급은 자신이 급임을 알리고 또한 살해된다.

두 아들이 배를 타고 二子乘舟
두리둥실 멀리 가네 汎汎其景
아들 생각 날 때마다 願言思子
안절부절 속이 타네 中心養養

두 아들이 배를 타고 二子乘舟
두리둥실 떠나가네 汎汎其逝
아들 생각 날 때마다 願言思子
다칠 세라 아플 세라 不瑕有害3)

《시경》의 〈두 아들이 배를 타고[二子乘舟]〉란 노래이다. 이 노래에는 아들을 향한 어미의 사랑과 사랑만큼 엄습해오는 불안감이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괜찮은 두 왕자를 잃은 당시 사람들의 상실감 또한 짙게 깔려 있다.

실제로 두 왕자는 마차를 몰고 가다가 죽지만, 노래에선 배를 타고 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강과 배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영원한 이별의 상징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도 사람이 죽으면 스틱스 강을 카론이 젓는 배를 타고 건넌다고 생각했다. 한번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 슬픔과 상실감은 남은 후계자에 대한 불신과 표리관계를 이룰 때 더욱 증폭된다. 당시 사람들의 불안감 그대로 선공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남은 왕자 삭은 무능했다.

기원전 700년 선공이 죽었다. 가장 사랑했던 아들 수의 죽음이 상당한 충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강의 입장에선 졸지에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장례가 끝나기도 전에 위후(衛后)를 일컬으며 즉위한 혜공(惠公) 삭은 쓸데없는 전쟁에 참여하며 국력을 낭비했다. 결국 공자들에 의해 축출되었다가, 8년 만에 다시 외가 나라인 제나라의 도움으로 복귀하지만, 그의 재위 기간 31년, 위나라는 엉망이 되어갔다.

3. 담장의 찔레나무

남편은 죽고 아들은 일국의 왕. 이 타고난 요부(?)에겐 인생의 황금기가 열린 것일까? 홀로 된 선강은 공자 완(頑)—역사서에 따라서는 석(碩)으로 나온다—과 놀아났다. 완은 선강이 애초 결혼하기로 했던 급의 동생이었으니, 죽은 남편의 전처의 아들이었다.

혜공이 15세에 즉위하였다고 하니, 이때 선강의 나이는 30대 중반쯤이고, 공자 완은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일 것이다. 한창 때의 남녀가 궁중에서 마음껏(?) 밀회를 즐긴 것이다. 이 은밀한,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생활 이야기가 중구지언(中冓之言)이다. 〈담장의 찔레나무〉 전체를 보자.

담장의 찔레나무 牆有茨
쓸어낼 수 없네 不可掃也
침실서 한 얘기 中冓之言
말할 수 없다네 不可道也
말할 수 있어도 所以道也
말하면 추해져 言之醜也

담장의 찔레나무 牆有茨
치울 수 없다네 不可襄也
침실서 한 얘기 中冓之言
자세힌 말 못해 不可詳也
자세히 말하면 所可詳也
이야기 길어져 言之長也

담장의 찔레나무 牆有茨
동여맬 수 없네 不可束也
침실서 한 얘기 中冓之言
읊을 수 없다네 不可讀也
읊을 수 있어도 所可讀也
읊으면 욕이지 言之辱也4)

말하면 입이 더러워지고, 읊으면 욕이 되는 침실 속 이야기. 통간(通姦)할 남자가 없어서 죽은 남편의 서자(庶子)이며, 한 때는 결혼하려던 남자의 동생과 간통한 여인의 이야기. 《시경》의 고전적 주석서인 《모시(毛詩)》에서는 “공자 완이 임금의 어머니와 간통하니 나라 사람들이 이를 미워하였으나 입에 올려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라고 하였다. 이제 선강은 말하기조차 더러운 음란·간통녀가 되었다.

4. 님과 함께 늙어야지

선강은 친정 오빠인 제나라 양공(襄公)의 주선으로 공자 완과 정식으로 혼인하고, 2남 3녀를 더 낳았다. 그리고 완 이외에 다른 남자와의 불륜 이야기는 알려진 게 없다. 어쩌면 두 사람은 5남매나 두어가며 백년해로했을 것이다.

님과 함께 늙어야지 君子偕老
옥으로 머리 꾸미고 副筓六珈
온화하고 참한 자태 委委佗佗
산과 같고 강과 같아 如山如河
그 예복은 어울려도 象服是宜
그대행실 안 맑음은 子之不淑
이 어이된 말인가요 云如之何

진정 곱고도 고와라 玼兮玼兮
꿩깃 무늬 찬란하네 其之翟也
뭉게구름 검은 머리 鬒髮如雲
가발 얹을 필요없네 不屑髢也
옥으로 된 귀장식에 玉之瑱也
상아 비녀 꽂았구나 象之揥也
고운 이마 환한 얼굴 揚且之晳也
어찌 그리 천신 같나 胡然而天也
어찌 그리 천제 같나 胡然而帝也

빛도 곱고 선명하네 瑳兮瑳兮
그의 예복 빛남이여 其之展也
고운 갈포 받쳐입고 蒙彼縐絺
속엔 삼베 적삼이네 是紲袢也
님의 눈매 청명하고 子之清揚
고운 이마 뽀얀 얼굴 揚且之顏也
진정 어여쁜 이로세 展如之人兮
온 나라의 미인이네 邦之媛也5)

이 〈님과 함께 늙어야지[君子偕老]〉에서 님은 전통적으로 공자 완이 아니라 죽은 선공으로 해석해왔다. 남편과 마땅히 백년해로해야 하는데, 남편이 일찍 죽었으면 미망인으로 정숙하게 살아야지, 어째서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니느냐는 비난이 풍자의 형식으로 실려 있다는 거다.

그런데 이 시는 첫 장의 ‘자지불숙(子之不淑)’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여기서 인용한대로 ‘그대의 맑지 못한 행실’로 보면 선강의 불륜과 음란을 비난하는 시가 된다.

정조(正祖)의 하문에 답한 정약용(丁若鏞)의 해석에 의하면, 선강이 화려하게 꾸미고 짙은 향기를 풍기며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기겠지만, 아는 사람들은 음란하고 더러운 악취에 코를 막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덕행을 전혀 거론하지 않으며 외모의 아름다움만 찬양하는 것에서 그 음란함에 대한 극도의 기롱과 풍자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6) 이런 정약용의 해석은 정조 입장에서는 당연히 듣고 싶었던 말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확실히 이 시는 선강의 타고난 미모와 그 미모를 받쳐주는 화려한 옷과 장식물 등을 읊고 있다. 그러면서도 선강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딱 그 한 구절 ‘자지불숙(子之不淑)’밖에는 없다. 이 구절을 빼고, 아무런 선입견 없이 본다면, 이 시는 한 절세 미녀에 대한 찬가이다. 그야말로 여신을 대하는 팬심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천하의 음란녀를 향한 찬가를 불렀다는 말인가?

‘자지불숙(子之不淑)’의 다른 해석은 ‘그대의 불행’이다. 즉 너무도 아름다운 여인이 어쩌다가 불행해졌고, 불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나라 최고의 미인이라는 노래가 된다. 그렇다면 이 시는 어린 나이에 속아 시집와서,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을 잃고, 말하기 추잡한 불륜녀로 낙인 찍혀 살아야 하는 여인의 운명을 슬퍼하는 노래는 아닐까. 더구나 그 운명이 타고난 미모 때문임을 한탄하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당시 위나라 사람들은 선강을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음탕하고 부도덕한 여인으로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새 누대〉의 주인공은 선공이고, 〈담장의 찔레나무〉의 주인공은 공자 완이다. 비난과 풍자는 이 두 남자들로 향하고 있다. 선강이 주인공인 시는 〈두 아들이 배를 타고〉와 〈님과 함께 늙어야지〉이다. 전자에는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불안감이, 후자에는 아름답지만 결코 행복하지 못한, 아니 절세의 미인이어서 오히려 불행해진 한 여인이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 여인을 바라보는 당시 사람들의 한탄과 연모가 깔려있다. 어쩌면 선강은 춘추시대라는 혼란기에 왕가의 여인으로 태어나, 더러운 정치판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휩쓸려 다녀야만 했던 가련한 여인이었는지도 모른다. 먼 이국땅에 시집와서 시아버지가 되어야할 남자의 첩이 되었다가, 어머니 소리를 들어야 할 남자의 아내가 된 여자.

하지만 그녀는 두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첫 번째 남자에게서 아들 둘을 낳았고, 두 번째 남자에게서 아들 둘과 딸 셋을 낳았다. 일곱 남매는 분명 진정한 사랑의 결실일 것이다. 하지만 천년의 세월이 흘러 선강은 가장 음탕하고 부도덕한 여인의 표상이 되었다. 무수히 많은 지식인 남성들과 권력을 가진 사내들에 의해 그녀는 말하기 더러운 천하의 요부가 되었다.

주) -----
1) 한홍섭, 《공자, 불륜을 노래하다》
2) 위의 책
3) 위의 책
4) 위의 책
5) 위의 책
6) 정약용 저, 실시학사 경학연구회 역주, 《시경 강의》

김문갑 | 철학박사,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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