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서 방영하고 있는 <이웃집 찰스>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봅니다.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인데,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특별히 신부님을 소개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온 김하종 신부님이라고, 성남에 소재한 ‘안나의 집’이라는 노숙자를 위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는 분입니다. 신부님은 이 일을 무려 27년째 해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2018년 말에는 현재 사용하는 공간을 비워줘야 하고, 또 500여 명 분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한데 언제나 살림살이는 빠듯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이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내내 유쾌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새벽에 시작되는 신부님의 일과는 분주했습니다. 노숙인 무료급식소 뿐만 아니라 청소년 쉼터 등을 운영하는 신부님은 잠시의 여유도 없이 일했습니다. 자정이 돼서야 모든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완전히 지친 몸으로 돌아와 작은 기도실에서 기도하는 모습은 참으로 경건했습니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소진하고 신 앞에 당당히 선 사람의 아름다움이 보였습니다.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한국, 2016)는 김하종 신부님처럼 타인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던지는 삶을 사는 한 스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신부님이 가장 가난한 다수의 사람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다면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우르갼 스님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택했습니다. 이들의 삶은 이렇게 다른 듯 같았습니다. 신부님이 희생을 통해 신에게 다가가고 행복을 얻었다면 스님 또한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삶을 살면서 그 어떤 때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희생을 통해 행복을 얻은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건 모든 생명체가 추구하는 것인데 그것이 다른 존재를 위해서 자신을 던질 때 오히려 얻어진다는 것을 배우게 하는 삶이었습니다.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인도 고산지대 라다크를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평생 의사이자 승려로 살아온 우르갼 릭젠과 린포체로 인정받은 9살 동자승 파드마 앙뚜의 얘기인데, 뜻밖에도 우리나라 문창용 감독이 만들었습니다. 티베트불교의 전통인 환생제도를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영화의 핵심은 스승과 제자간의 인간적 공감, 특히 스승의 제자에 대한 순수한 보살핌과 사랑입니다. 이 모습이 무척이나 감동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스승인 우르갼은 라다크의 산간마을을 다니면서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고 약간의 돈을 받아 생활해왔는데 어느 날 자신의 뒤를 이어 전통의사가 될 후계자를 들였습니다. 그런데 말문이 트이면서 동자승은 자신이 전생에 티베트 캄사원의 고승이었다고 말했으며, 그 내용은 구체적이었습니다. 마침내 앙뚜는 라다크 불교협회로부터 린포체로 인정받았습니다. 린포체는 티베트 고승이 환생한 존재로, 살아있는 부처로 불리며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데, 동자승 앙뚜가 린포체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절은 티베트 캄에 있습니다. 지금 그곳은 중국 지배령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도 없습니다. 앙뚜는 린포체이긴 하지만 자기 절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스승의 좁고 초라한 오두막에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어린 앙뚜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다른 린포체들은 자신의 절에서 제자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생활하는데, 자신은 캄사원에 가지도 못하면서 점점 전생의 기억은 사라져가고 있으며, 또 사람들 중에는 그에게 자기 절도 없는 가짜 린포체라고 놀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승은 마침내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앙뚜의 제자들이 린포체 환생 소식을 듣고 찾아오길 막연히 기다리기보다 자신들이 티베트 캄사원을 찾아가는 길을 택한 것이지요.

캄사원으로 길을 떠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스승 우르갼은 린포체인 앙뚜의 교육을 위해 그만뒀던 의사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큼 돈이 모였을 때 그들은 길을 떠났습니다. 바라나시를 거쳐 시킴으로 갔습니다. 그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라다크의 조용한 마을에 살던 스승과 제자에게 바라나시는 너무 정신없는 곳이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시킴까지 가는 길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마침내 인도와 티베트의 국경마을인 시킴에 도착했고, 눈 덮인 산을 넘으면 바로 티베트였습니다. 그러나 산 정상에는 중국 군인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티베트로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관문에서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절을 찾아가려던 앙뚜는 시킴에 있는 큰 사찰에서 더 나은 교육을 받기 위해 남기로 하고, 스승인 우르갼은 고향인 라다크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앙뚜가 5살 때부터 13살 때까지 함께 동고동락했던 스승과 제자는 마침내 이별 앞에 섰습니다. 스승은 웃으면서 헤어지려 했지만 결국 눈물을 보였습니다. 스승에게 제자는 자신의 전부였습니다. 오직 제자를 위해서 자신은 존재했습니다. 스승 우르갼이 제자인 앙뚜를 돌보는 모습은 엄마가 자식을 돌보는 모습 이상이었습니다.

▲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한 장면.

스승 우르갼에게 앙뚜는 비록 제자고 자신이 돌봐야 하는 연약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생의 고승으로서 자신이 모셔야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르갼의 모습에는 두 가지가 엿보였습니다. 귀여운 아이를 대하는 스승의 자애로움과 훌륭한 존재에 대한 존경과 섬김의 자세가 함께 있었습니다.

이렇게 귀한 존재를 돌보느라 그는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60을 훌쩍 넘기고 70을 바라보는 노구지만 그는 제자의 책을 들고 학교로 뛰어가고, 제자가 먹을 음식을 장만하고, 불경도 가르치고, 또 틈만 나면 제자와 눈싸움을 했습니다. 눈싸움을 할 때는 어린 제자가 눈을 잘 뭉치지 못하는 걸 배려해 자신이 뭉쳐놓은 눈덩이를 제자 옆에 슬쩍 놓아주기도 했습니다.

시킴에서 산을 오를 때는 너무 추웠지만 그는 제자에게만 장갑을 사주고 자신은 언 손으로 걸었으며, 제자가 힘들어하면 노구인 자신도 힘들었지만 제자를 끌어주면서 산을 올랐습니다. 그에게서 제자는 귀여운 어린 아들이자 정말 귀한 손님이기도 했는데 그는 이 손님을 너무나 극진하게 돌봤던 것입니다.

이미 많이 노쇠한 몸으로, 그리고 가난한 살림살이로 린포체를 돌보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 일을 자신의 업이라고 여기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앙뚜와 헤어질 때 그렇게 울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전부였던 존재와의 이별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줄만 알았던 앙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승님. 스승님과 함께 있을 땐 늘 좋았어요. 스승님이 아이가 되면 그때는 제가 스승님을 돌보겠어요.”

먼 미래의 만남을 기약하면서 스승은 라다크로 돌아오고 제자는 시킴에 남았습니다. 스승은 5살 어린 제자를 무려 8년여 최선을 다해서 키웠습니다. 어떤 보상을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평범한 동자승인줄 알았던 제자가 린포체인 걸 알게 되고, 자신이 모셔야 하는 존재인 걸 알게 되자 그는 기꺼이 제자를 돕는 삶을 선택하고, 그걸 자신의 업으로 받아들인 채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린 린포체가 스승인 우르갼을 대하는 태도는, 할아버지를 따르는 손자처럼 믿음을 갖고 의지했으며 스승인 우르갼은 사랑과 섬김의 자세로 제자를 돌보았습니다. 그들 사이의 공감은 주로 눈싸움이나 썰매타기 등을 통해 표현됐는데 제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어린 아이처럼 함께 놀아주는 모습 속에서 교감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라다크의 고즈넉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두 사람의 깊은 공감을 다룬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문준용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무려 8년여의 제작기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다큐멘터리 피디였던 문감독이 불교 의학을 촬영하기 위해 라다크에 갔다가 라다크 전통의사였던 우르갼을 만나게 됐는데, 우르갼과 앙뚜의 인간적 교감이 인상적이어서 촬영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제67회 베를린영화제 제너레이션 부문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제너레이선 부문은 아동, 청소년을 위한 성장영화를 대상으로 시상하는 부문으로, 이 영화는 ‘심사위원들에게 인간성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는 심사평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특별한 아름다운 마음을 이 영화를 통해 배우게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앞에서 김하종 신부님에게서 특별히 감동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런 종류의 감동을 영화에서 우르갼 스님을 통해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이란 정말 아름다운 존재구나, 하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하는 영화입니다. ‘힐링 무비’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여겨집니다.

김은주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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