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눌은 선사(禪師)이다. 그러나 지눌은 선사이면서도 화엄교학을 공부했으며,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 화엄교학과 선종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선적 수행을 하려는 자들에게 교학적 토대를 마련해주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교학자들에게 선적 수행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고자 하는 것이다.1)

그는 개인적으로는 화엄교학이 그의 선사상 체계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하며, 사회적으로는 선과 교는 서로 보완되어서 상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이후 지눌은 선사임에도 불구하고 돈오가 결코 선의 전유물이 아님을 화엄적 돈오(華嚴的 頓悟)의 체험을 통해 몸소 확인한다.2)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화엄론절요(華嚴論節要)》와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에서 화엄적 돈오의 길을 천명한다. 이를 통해 지눌은 돈오의 의미를 조금 더 분명하게 하고 현교화(顯敎化) 시켰을 뿐 아니라, 선의 관점에서 화엄을 해석하고 - 혹은 화엄의 관점에서 선을 해석함으로써 - 교를 선 안으로 끌어안았다.3) 그리고 이것은 고려 불교의 골칫거리였던 선․교의 갈등에 대한 그의 해법이기도 했다.4)

지눌은 비록 본성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다[頓悟]하더라도, 거기에 그치지 말고 깨달음을 의지해 닦아서 점차로 익히어[漸修] 성인을 이루라고 우리에게 설파한다. 지눌 사유체계의 중심 되는 힘은 바로 이러한 이상적인 인격인 불격(佛格)에 대한 강한 지향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점이 어떤 면에서는 지눌이 돈오보다는 우리의 자각적 노력인 점수에 더 큰 무게 중심을 두고 그의 사유체계를 전개해 나가는 원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자성은 자란다’. 자성은 부처되기의 가능성에서부터 완성된 부처의 모습까지 다 껴안을 수 있는 넓이를 가지고 있다. 동시에 완성된 부처의 모습은 자성이 변하는 만큼 변화한다. 다시 말해서 자성과 불성은 현존하는 인간의 자심(自心)이라는 심성(心城) 안에 존재하는 동일자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표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동일자인 자성과 불성은 상즉․상생의 관계를 가진다. 자성은 불성에 가까워지는 만큼 불성의 크기를 크게 만들며, 그 크게 만들어진 불성은 다시 자성에게 영향을 끼친다. 이런 상호확장의 상즉․상생관계는 끊임없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반복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성도 불성도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서로 자란다는 것이다.5) 즉 지눌의 경우, 그가 말하는 바의 자성과 불성과 부처는 우리 안에서, 상호간에 서로의 자리를 바꾸어 가면서, 끊임없이 자라고 있다고 해도 그 표현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6)

그렇기 때문에 지눌의 경우 돈오점수는 모든 근기를 다 포용할 수 있는 천성(千聖)의 궤철(軌轍)이다.7) 또한 이 돈오 이후의 점수는 다만 오염되지 않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다시 만행을 겸해 닦아서 자타를 아울러 구제하자는 문이다. 불성을 밝게 본다는 것은 다만 중생과 부처가 평등하고 나와 남의 차별이 없음을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다시 ‘자비(慈悲)의 서원(誓願)’을 내지 않으면 한갓 적정함에만 머물러 있게 된다. 따라서 돈오는 점수와 더불어 동시적 상즉구조를 갖고 있는 두 날개이다. 이때 오후수인 점수의 구체적 내용이자 실천이 되는 것이 정혜쌍수이다. 따라서 지눌이 표방하는 바의 정혜쌍수는 불격을 지향하는 인간들의 도덕적 공동체[定慧結社]에서 불교적 이상 세계를 구축하려는 끈질긴 신념과 실천의 장이 된다.

지눌에 의하면 선문에는 정혜를 닦는 것 이외에 다시 하나의 문이 더 있다. 그것은 무심합도문(無心合道門)이다. 그리고 그 무심합도문은 격외(格外)의 일문(一門)으로서 간화경절문(看話徑截門, 看話禪)에 의해서 들어갈 수 있는 문이다.8)

지눌이 보기에 간화경절문은 두 가지의 도구적 용도를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돈오 이후에 점수를 제대로 하기 위한 방편이고,9) 나머지 또 하나는 지해를 단박에 없앨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상근기를 위한 방편이다.10) 이때 그 두 가지의 용도가 모두 깨침이라는 궁극의 세계를 증득하기 위한 방법론이라는 점에 지눌이 대혜의 간화선을 받아들이는 특징이 있다. 즉 지눌은 방법론적으로는 대혜의 간화선을 수용한다. 그러나 그 실질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대혜가 지해를 단박에 없앨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간화선만을 주장하는데 비하여, 지눌은 학인들의 근기에 대하여 대기여법의 입장에서 점수로서의 간화경절문과 지해를 단박에 없애는 활로로서의 간화경절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여 주장하는 독창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지눌이 돈오점수를 천성의 궤철이라고 한 점과 간화선 강조는 서로 배반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범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돈오점수는 지눌 이론의 큰 담론이고, 간화선은 그 큰 담론의 구체적인 수행방편으로서의 작은 담론이다. 그 결과 간화선 수행법은 어떤 때는 돈오를 제대로 하기 위한 방법론적인 자각으로, 어떤 때는 돈오 이후에 점수를 제대로 하기 위한 방법론적인 자각으로 제시되지, 돈오점수의 영역을 근본적으로 침해하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선 이외에 화엄교학을 통해서도 돈오를 체득할 수 있다는 사실도 부정되지 않는다. 단지 화엄교학이 가지고 있는 실천적인 면의 부족을 간화선이 보강할 수 있다는 점이 논구되고 있을 뿐이다.

지눌의 경우 간화선은 그의 선적 사유체계를 보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부분적으로 수용된다. 따라서 지눌이 간화선을 접한 이후 선교일치와 돈오점수로 대표되는 생애 전반부의 독창적이고도 본질적인 사상체계를 수정하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지눌은 간화선 일변으로 정리될 수 있는 사상가가 아니며, 보다 더 종합적이며 독창적이어서 한국 불교 사상사에서 중국의 영향을 벗어난 독자적인 선사상을 일으킨 거의 유일한 선사이기 때문에 그의 선적 사유체계는 ‘보조선(普照禪)’이라 불리는 것이 마땅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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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길희성, <지눌 선사상의 구조>,《지눌의 사상과 그 현대적 의미》(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6), p.66.
2) 수행과정에서의 두 번째 전기는 28세 무렵 3년 동안 《화엄경》을 열람하다가 일어난다. (《화엄론절요서(華嚴論節要序)》, 《보조전서(普照全書)》, p.173중. “至閱華嚴經出現品, 擧一塵, 含大千經券之喩, 後合云, ‘如來智慧, 亦復如是, 具足在於衆生身中, 但諸凡愚, 不知不覺’ 予頂載經卷, 不覺殞涕.”)
3) 지눌의 선교일치는 선종과 교종 전체의 일치가 아니다. 선종과 화엄교학의 일치이다.
4) 길희성, 위의 논문, p.92.
5) 《수심결(修心訣)》, 《보조전서》, p.34좌. “雖悟本性, 與佛無殊, 無始習氣, 難卒頓除, 故 依悟而修, 漸熏功成, 長養聖胎, 久久成聖.”
6) 위의 책, pp.38우~39좌. “若能如是念念修習, 不忘照顧, 定慧等持, 則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自然斷除, 功行自然增進, 煩惱盡時, 生死卽絶. ……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7) 위의 책, p.33중. “此頓漸兩門, 是千聖軌轍也.”
8)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보조전서》, p.123중. “此無心合道, 亦是徑截門得入也.”
9) 위의 책, p.164좌. “先以如實知解,決擇自心眞妄生死, 本末了然,次以斬釘截鐵之言,密密地, 仔細叅詳,而有出身之處,則可謂四稜著地,掀揧不動,出生入死,得大自在者也.”
10) 위의 책, p.159중. “故 更爲今時衲僧門下,離言得入,頓亡知解之者. 雖非密師所尙,略引祖師善知識,以徑截方便,提接學者,所有言句,係於此後,令叅禪峻流,知有出身一條活路耳.”

이덕진 | 한국문화콘텐츠연구원 원장,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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