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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뽕나무 아래에서
남녀 어울린 뽕나무숲은 사당 있던 신성한 곳
2017년 09월 27일 (수) 13:16:35 김문갑 meastree@naver.com

1. 귀족들의 남의 아내 도둑질하기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말이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일석이조(一石二鳥), 일거양득(一擧兩得)을 뜻하는 말은 많은데, 하필이면 왠 뽕?

그렇게 새삼을 캔다고 爰采唐矣
매고을 그곳엘 갔었지 沬之鄕矣
누굴 생각하고 갔냐고 云誰之思
예쁜 강씨네 여인이지 美孟姜矣
상중에서 나랑 만나선 期我乎桑中
상궁으로 데려 가더군 要我乎上宮
날 보낸 건 기수가였지 送我乎淇之上矣

그렇게 보리를 캔다고 爰采麥矣
매고을 북쪽엘 갔었지 沬之北矣
누굴 생각하고 갔냐고 云誰之思
예쁜 익씨네 여인이지 美孟弋矣
상중에서 나랑 만나선 期我乎桑中
상궁으로 데려 가더군 要我乎上宮
날 보낸 건 기수가였지 送我乎淇之上矣

그렇게 순무를 캔다고 爰采葑矣
매고을 동쪽엘 갔었지 沬之東矣
누굴 생각하고 갔냐고 云誰之思
예쁜 용씨네 여인이지 美孟庸矣
상중에서 나랑 만나선 期我乎桑中
상궁으로 데려 가더군 要我乎上宮
날 보낸 건 기수가였지 送我乎淇之上矣

- 한홍섭 지음, 《공자, 불륜을 노래하다》, 사문난적

《시경》의 〈상중(桑中)〉이란 노래이다. ‘상중’은 ‘뽕밭에서’, 혹은 ‘뽕나무 숲에서’란 뜻이다. 이 시를 노래하는 주인공은 남자다. 한 남자가 세 명의 여자를 번갈아 만나며 즐기고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사내는 매(沫)라는 고을로 새삼과 보리와 순무를 캔다며 간다. 하지만 정작 삼밭이나 보리밭이 아니라 뽕밭에 간다. 그곳에서 먼저 강씨(姜氏)네 여인을 만난다. 맹강(孟姜)은 맹 씨네 맏딸이란 말인데, 아마도 맹씨 가문의 안주인이거나 충분히 성숙한 여인임을 암시한다고 하겠다. 이렇게 성숙한 여인이 뽕나무 아래에서 사내를 기다리고 있다가 상궁(上宮)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헤어질 때면 남자를 기(淇)라는 강까지 데려다 준다. 이런 식으로 남자는 익씨(弋氏)네 여인을 만나고, 용싸(庸氏)네 여인을 만난다.

남송(南宋)의 주희(朱熹)는 이 여인들을 당시 귀족이라고 보았다. 귀족의 여인들이 몰래 뽕나무 밭에서 정인(情人)을 만나 바람을 피운다는 것이다. “위(衛)나라의 풍속이 음란하고 세족들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서로 처첩을 훔쳤다. 그러므로 이 사람이 스스로 말하기를, 장차 매읍에서 새삼을 캘 것인데 그리워하는 사람과 더불어 서로 기약하고 만나고 맞이하고 전송함을 이와 같이 한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귀족들이 남의 아내나 첩을 몰래 만나서, 아니 도둑질해서 통정하였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스와핑을?

   
▲ 신윤복의 〈월하정인〉. 남녀가 달밤에 만나는 은밀한 곳은 뽕나무 숲의 사당인 것 같다.

굳이 주희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이 시는 음란시(淫亂詩)의 대명사이다. 뽕나무밭이 남녀의 밀회를 상징하는 장소가 된 연유에는 아마도 틀림없이 이 시가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남녀 간의 즐거움을 상중지희(桑中之喜)라고 하고, 남녀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상중지기(桑中之期)라 하는데, 대개는 음란성이 농후한 경우에 쓰인다. 그러고 보면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신윤복(申潤福)의 〈월하정인(月下情人)〉에서 두 남녀가 달빛 고고한 밤에 만나는 장소는 다름 아닌 뽕나무 우거진 사당이 아닐까? 하여튼 뽕나무는 남녀 간의 성애(性愛), 특히 부도덕하고 은밀한 정사의 대표적인 은유이다. 《성종실록》 8년 6월 5일 기사를 보자.

사헌부 대사헌 김영유 등이 차자를 올리기를, “신 등이 엎드려 듣건대, 종부시(宗簿寺)에서 부림군(富林君) 이식(李湜)이 안천군(安川君) 권팽(權彭)의 첩인 기생 금강아를 간음한 죄를 계청하니, 명하여 관노(官奴)들만 몰수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경 등의 말이 옳다. 음란한 풍속을 금하지 않으면 장차 〈상중〉에 이를 것이므로, 이식이 비록 지극히 가까운 친족이지만 이미 그 죄를 다스렸고, 또 종부시의 청을 따라 금강아에게 장형을 내렸으니, 다시 무엇을 더하겠는가?” 하였다.

부림군 이식은 세종대왕의 손자이다. 시를 잘 지었고 노래도 대단히 잘하여 명창(名唱)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으로 말하면 작사 작곡에 노래까지 혼자서 해내는 완벽한 싱어송 라이터였던 셈이다. 더구나 왕족이니, 노는 데라면 일가를 이루고도 남았을 터이다. 조선시대 왕족에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힘 있는 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병권(兵權)이라도 쥐는 날엔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사전 예방 차원에서 그랬던 것이다. 대신 놀고먹기에 부족하지 않게 토지나 이권을 주었다. 하여 명승지를 찾아 술을 마시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지냈다. 그러다 보니 왕족 중에는 문학과 예술에 뛰어난 인물이 많이 배출되기도 하였다. 이식도 문장가이며 가수로 일생을 풍미했던 사람이다.

너무 놀기에 팔려서 그랬는지, 아니며 워낙 미인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금강아란 권팽의 첩과 사통하였다. 권팽은 태종(太宗)의 딸인 숙근옹주(淑謹翁主)의 외아들이었다. 그러니 항렬로는 좀 멀긴 해도 고모나 숙모뻘쯤 되는 여자와 놀아난 것이다. 이 간통사건이 문제가 되자 성종이 간음한 남녀를 징벌한 것인데, 이 때 징벌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하는 말이 그냥 놔두면 음란한 풍속이 〈상중〉에 이를 것이라는 거였다. 〈상중〉은 이렇게 막장 중에서도 막장으로 인식되었다.

2. 귀족 여인들의 호스트 불러 놀기

이 시의 주인공 남자가 귀족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한홍섭 선생의 《공자, 불륜을 노래하다》에서 선생이 하는 주장을 요약해 본다. 이 시에는 사내의 행로가 정해져 있다. 상중에 가면 여인이 나와 있고, 여인의 안내로 상궁에 가서 여인과 놀다가 다시 여인의 안내로 기수가에 나온다. 한홍섭 선생은 이런 패턴은 당시에 하나의 관행이었고, 사내는 남창(男娼)이었다고 한다. 즉 당시에 귀족의 여인들이 남창을 불러서 놀다가 돌려보내는 내용이고, 이런 일은 매우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의 근거로 이 노래는 당시 민중들 사이에서 불렸던 것이고, 여러 정황상 이 남자는 귀족 여인들의 단골 남창이었다는 것이다. 대단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며, 이 글의 맨 앞에 소개한 이 시의 번역문 또한 선생의 번역이다. 그렇다면 뽕나무밭의 상궁(上宮)은 현대판 호스트바?

3. 봄날에 젊은 남녀가 모여 공공연히 놀기

동양의 신화에 따르면 태양은 동쪽 바다 끝에 있는 부상(扶桑)이라는 큰 뽕나무에서 떠오른다고 한다. 부상은 어마어마하게 큰 뽕나무로, 하루를 마치고 서쪽 하늘 밑으로 내려간 태양이 정결하게 몸을 씻은 후에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곳이다. 부상은 열 개의 커다란 가지를 갖고 있는데, 이 열 개의 가지에서 열 개의 태양이 교대로 떠오른다고 한다.

고대인에게 뽕나무는 신성한 나무였다. 태양이 떠오르는 나무. 이처럼 신성한 나무이기에 뽕나무는 사당(社堂), 즉 제사를 지내는 신전을 장식할 수 있었다. 따라서 ‘상중의 상궁’은 뽕나무 밭의 사당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에 뽕나무를 신성시 한 것은 고대인들의 삶과 연관이 있다. 뽕과 누에와 비단을 생각해 보면 그 연관성을 쉽게 집작할 수 있다. 맹자가 “다섯 이랑의 집에 뽕나무를 심으면 오십을 넘긴 어른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다.”고 한 것처럼 뽕나무는 삶에서 뗄 수 없는 나무였다.

고대 중국의 여인들에게 비단을 짜는 일은 중요한 과제였다. 하지만 뽕나무를 기르고 누에를 치며 비단을 짜는 일은 여인이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을이 공동으로 해내야할 일이었다. 필자도 대학교에 다닐 때 누에가 세 번째 잠을 잘 때면 시골집에 내려가 뽕나무를 베어 나르곤 했다. 일손이 딸릴 정도로 일이 많았던 것이다. 따라서 뽕밭은 언제나 마을 가까이 있었다. 운반이 용이하고 심고 가꾸기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뽕밭이야 말로 사당이 들어설 최적의 장소이다. 때가 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제사도 지내고 여러 가지 행사를 벌였던 곳이 바로 뽕나무밭이었던 것이다.

뽕밭이라고 하니까 키 작은 뽕나무를 연상하겠지만, 실상 뽕나무는 매우 크다. 그러니 뽕밭이라기보다는 뽕나무 숲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특별히 사당 주위에 있는 뽕나무는 더욱 컸을 것이다. 따라서 이 〈상중〉이란 시의 배경은 기수(淇水)라는 강가 옆에 뽕나무 숲, 즉 상림(桑林)이 있고, 상림에 사당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음식과 술을 나눠 먹었다. 《묵자(墨子)》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연(燕)나라에 조택(祖澤)이 있는데, 제(齊)나라의 사직(社稷), 송(宋)나라의 상림(桑林), 초(楚)나라의 운몽(雲夢)에 해당한다. 이곳은 남녀가 모여서 교합하고 노닐며 구경하는 곳이다.

조택, 사직, 운몽은 상림과 마찬가지로 사당이 있는 곳이다. 이렇게 명칭이 다른 것은 기후와 풍토에 따라 마을 단위의 사업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만 춘사일(春社日) 같은 날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제사 지내고 술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춤과 노래를 즐긴 점은 모두 같다.

춘사일이란 봄에 맞는 사일(社日), 즉 제사 지내는 날이다. 봄에 지내는 제사를 춘사(春社)라고 하고, 가을에 지내는 제사를 추사(秋社)라고 하는데, 각각 입춘과 입추 후 다섯 번째 무일(戊日)에 지낸다. 제비가 춘사를 지낼 때면 날아와서 추사일 즈음이면 돌아간다고 한다. 이 날은 모두 일을 멈추고 남녀가 모여 신령께 제사를 지낸다. 그 후엔 제사 음식과 술을 나눠 먹으며 하루를 즐기는 것이다.

매실을 던진다네 摽有梅
남은 열맨 일곱 개네 其實七兮
날 원하는 사내들이여 求我庶士
혼인할 때 놓치지 말기를 迨其吉兮

매실을 던진다네 摽有梅
남은 열맨 세 개라네 其實三兮
날 원하는 사내들이여 求我庶士
딱 지금을 놓치지 말기를 迨其今兮

매실을 던진다네 摽有梅
광주리엔 이제 없네 頃筐墍之
날 원하는 사내들이여 求我庶士
말난 이땔 놓치지 말기를 迨其謂之


이 〈표유매(摽有梅)〉란 시는 익은 매실을 남자에게 던지며 구애하는 시이다. 넓은 공터에 젊은 남녀가 모이고 이 때 여자가 맘에 드는 남자에게 매실을 던진다. 매실을 던진 여자가 맘에 들면 남자가 매실을 받는데, 그러면 두 남녀는 둘만의 자리로 옮겨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중매를 들여 혼인날을 잡는 것이다. 매실을 뜻하는 매(梅)란 글자에는 중매(中媒)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춘사일과 매실이 익는 시기는 서로 다르다. 옛날에는 삼월 삼짇날을 답청절(踏靑節)이라 하여 들에 나가 푸른 풀을 밟으며 한 해의 풍년과 무병장수를 기원하였다.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봄빛을 만끽함도 물론이다. 그러고 보면 봄에만도 답청절, 춘사일, 단오절 등등 공식적으로 노는 날이 꽤나 많았다. 그러다가 매실이 익을 때면 이런 즐거운 행사도 있었음직하다.

매실을 던지며 남녀가 공식적으로 데이트하기 딱 좋은 곳이 어딜까? 아마도 뽕나무 숲 어디쯤이 제격일 것이다. 그리하여 매실이 익는 화창한 봄날에 상림의 상궁엔 혼기가 찬 강 씨네 맏딸, 그리고 익 씨네 맏딸, 또 용 씨집 딸들이 나와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사내에게 매실을 던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중〉의 남자는 많은 여자들에게 선택되는 꿈을 노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표유매〉나 〈상중〉은 옛날에 젊은 남녀들이, 따뜻한 봄날 공개된 장소에서 자유롭게 짝을 찾아 어울리던 아주 건강하고 아름다운 시절의 노래였다. 아마도 틀림없이.

4. 뽕, 음란? 혹은 자유?!

《태종실록》 10년 11월 29일 기사를 보면, “사간원에서 상소하기를, ‘인륜(人倫) 강상(綱常)을 지키고 풍속을 바르게 하는 것은 나라에서 우선적으로 힘써야 할 일이요, 정치의 큰 근본입니다. 그런데 남녀의 정욕이란 심히 인심을 해치고 풍속을 무너뜨리기 쉬운 것이어서, 만일 이를 바르게 하지 않으면 욕정이 제멋대로 발동하여 하늘의 이치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리하여 장차 오랑캐나 금수만도 못한 지경이 될 것입니다. 공자께서 《시경》을 편찬하며 〈장유자(牆有茨)〉나 〈상중〉 같은 여러 편을 국풍에 나열하여 후세에 경계로 삼았던 것이 참으로 이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장유자는 담장의 찔레나무란 뜻이다. 이 시는 당시 위(衛)나라 임금의 어머니인 선강(宣姜)과 서자(庶子)인 공자(公子) 완(頑)과의 사통사건을 풍자한 노래이다. 하여튼 공자가 〈장유자〉나 〈상중〉을 《시경》에 넣어 편집한 것은 어떤 짓이 금수만도 못한 짓인지를 후세에 보임으로써 윤리 도덕을 세우려했다는 게 태종시대 사간원의 주장이었다. 물론 이는 주희의 주장이고, 주자학을 금과옥조로 떠받들던 조선시대 선비들의 입에서 나오는 당연한 말이기도 할 터이다. 그렇다면 만약 주희의 해석이 틀렸다면 조선 500년 선비들의 주장도 틀린 것 아닐까.

옛날 바벨론에 잘생긴 미남 피라모스와 아름다운 처녀 티스베가 이웃하며 살았다.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양가 부모는 이들의 만남을 반대하였다. 하지만 젊은 남녀의 사랑을 누가 막으랴. 담장 틈새로 서로의 목소리만 나누다가 두 남녀는 저물녘 들판의 뽕나무 아래서 만나기로 하였다. 티스베가 먼저 뽕나무 아래로 나가 피라모스를 기다리는데, 마침 뽕나무 옆의 샘에서 나오는 시원한 샘물을 마시려고 사자 한 마리가 내려왔다. 티스베는 깜짝 놀라 바위 틈 사이로 몸을 숨겼는데, 이 때 자신의 숄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사자는 막 짐승을 잡아먹어서 입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그런 피 묻은 입으로 티스베가 떨어뜨린 숄을 찢어 놓고 가 버렸다. 조금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한 피라모스는 피 묻고 찢겨진 티스베의 숄과 사자 발자국을 보고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짐작하였다. 청년은 울부짖었다.

“아, 가엾은 티스베. 나 때문에 죽었구나. 이렇게 무서운 곳으로 나오게 하고 내 손으로 지키지 못하였도다. 사자여. 이 죄 많은 몸도 갈가리 찢어다오. 그대의 피로 물든 숄, 내 피로 다시 물들이리라.”

하고는 칼을 빼어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한편 사자가 돌아가길 기다리며 숨어있던 처녀는 조심조심 나왔다가 티스베의 죽음을 보게 되었다. 처녀도 울부짖었다.

“뽕나무여 우리 죽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 다오. 우리 둘이 흘린 피를 너의 열매로 기억해 다오.”

이 가엾은 처녀는 청년의 가슴에 깊이 박혀 있던 칼을 빼어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뽕나무는 본래 하얀 색이었는데, 두 남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신들이 그 죽음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붉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동양이나 서양이나 뽕나무 아래는 남녀가 모여 서로 사랑을 나누던 곳이었다. 그 사랑의 메타포(metaphor, 은유)가 지방 따라 세월 따라 여러 형태로 변주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동양에서는 언제부터인지 뽕나무가 부도덕한 성애의 표상이 되었다. 한편으로 서양에선 젊은이들의 사랑을 금하지 말라는 지혜로운 교훈이 여전히 숨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아니 처음부터 아무런 장애 없이 자유롭게 만나고 마음껏 사랑했던 먼 옛날로 돌아갈 수 있으면 더 좋겠다.

김문갑 | 철학박사,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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