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장편소설 《혜초》에서 ‘혜초’는 기행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쓴 통일신라 고승 혜초 스님(704~787)이다. 따라서 《혜초》의 시공간적 배경은 《왕오천축국전》의 기록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소설 《혜초》를 살펴보기에 앞서 《왕오천축국전》을 살펴보자.

《왕오천축국전》은 총 6,000여 자이고 두루마리 형태인데 일부만이 현존한다. 그 의미는 ‘오천축국으로 여행 갔던 기록’이라는 뜻이다. 천축국은 인도이다. 그리고 오천축은 인도의 동서남북과 중앙을 일컫는다. 1908년 3월 프랑스의 탐험가 펠리오가 중국 둔황의 천불동 석굴에서 발견했다. 원본은 3권이었다고 하나, 현존본이 사본으로 전체내용인지 요약본인지는 알 수 없다.

현존본은 중부 인도 갠지스 강 유역의 마가다국(Magadha : 지금의 비하르) 기행에서 시작한다. 이 나라는 16대국(大國) 중 하나로 불교가 가장 성행해 유적도 많은 곳이나, 혜초 스님 방문 당시에는 힌두교가 보다 성행했다. 혜초 스님은 여기서 서북쪽으로 쿠시나가라(Kusināgara : 지금의 카시아)로 갔다. 쿠시나가라는 석가모니가 입멸(入滅)한 곳이다. 혜초 스님은 이곳에 다비장(茶毘場)과 열반사(涅槃寺) 등이 있다고 기록했다. 1개월 동안 다시 남쪽을 여행해 바라나시(Varanasi)에 이르렀는데, 여기에는 석가모니가 처음 설법한 녹야원(鹿野苑)이 있으며, 약 1세기 전에는 당나라의 현장(玄奘)도 찾아왔던 곳이다. 다시 동쪽으로 가 라자그리하(Rājagrha, 王舍城)에서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竹林精舍)를 참배하고, 《법화경》의 설법지 영축산(靈鷲山)을 방문했다.

그리고 남쪽으로 향해서 세존이 대각(大覺)을 이룬 부다가야(Buddahagaya)를 거쳐, 서북쪽으로 향해 중천축국의 수도 카나우지로 갔다. 이곳은 왕이 코끼리 900마리를 지니고 그 아래의 대수령들은 200~300마리를 지녔다고 썼다. 여기서 인도 전역의 기후와 풍속을 총괄적으로 서술했는데, 예를 들어 음식은 멥쌀로 빚은 떡과 미숫가루·우유·소금 등이 있으며, 가축을 기르지 않지만 소만은 기른다고 기록했다.

다음 여행지는 남천축국인데 현재의 데칸 고원이다. 여기에는 과거에 불교가 성해 산중에는 용수보살(龍樹菩薩)의 신력(神力)으로 세웠다는 큰 사원이 있었으나, 당시에는 폐허였다고 기록했다. 이후 혜초 스님은 다시 서북쪽으로 향해 서천축국을 거쳐 북천축국을 방문했다. 지금의 파키스탄 남부 일대와 간다라 문화 중심지를 차례로 들른 것이다. 이어 북쪽의 현재 카슈미르(Kashmir) 지방을 거쳐 대발률(大勃律)·소발률(小勃律) 등을 방문한 후, 거꾸로 간다라 지방을 거슬러 내려오면서 스와트·길기트·페샤와르 등지를 거쳐 그 북쪽에 있는 오장국(烏長國)·구위국(拘衛國) 등을 답사했다.

이곳은 모두 투르크족이 지배하고 있지만, 불교를 상당히 널리 믿고 있다고 기록했다. 이후 실크로드를 따라 서부 투르키스탄(Turkistan) 지역에 가면서 그의 오천축국 순력은 끝난다. 그 지역에 있던 투카라(吐火羅 : 아프가니스탄과 소련의 국경지대)에서 상당 기간을 머물면서 그 지방의 인물이나 풍속 등을 기록했다. 특히 이 지역이 동서교통의 요지인 관계로 인근 여러 곳에 관한 지식을 얻어 페르시아나 사라센, 동로마 제국까지 언급했다.

이후 파미르 고원을 넘어서 당의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가 있는 쿠차(Kucha)에 도달하면서 여행기는 마침표를 찍는다. 그 시점이 서기 727년 11월이다.

소설 《혜초》도 《왕오천축국전》에 나타난 혜초 스님의 행장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이어서 단정하기 이를 데 없는 문체를 따르지는 않는다. 《왕오천축국전》의 문장은 아래와 같다.

다시 파사국에서 북쪽으로 열흘을 가서 산으로 들어가면 대식국에 이른다. 다시 호밀국에서 동쪽으로 보름을 가서 파밀천을 지나면 곧 총령진에 이른다.

▲ 김탁환 작가.
기실, 이처럼 기록에 방점을 찍은 문장으로는 소설을 완성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까닭에 《왕오천축국전》과 달리 《혜초》에서는 여러 인물들이 길 위에서 만나고 헤어진다. 소설은 고선지가 돌림병에 걸린 혜초 스님을 업고 사막을 나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고구려 출신인 고선지는 당나라 안서도호부의 유격장군이었으나 탁월한 전략과 용맹함으로 대장군까지 진급한 입지적인 인물이다. 작가는 왜 혜초 스님과 고선지 장군이 만나는 것으로 소설을 시작하는 것일까? 작가는 혜초 스님이 《왕오천축국전》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도착 시간을 밝힌 곳이 ‘구자’였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 이유는 구자가 고선지가 서역 원정의 발판으로 삼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서사가 혜초 스님과 고선지 장군을 구심점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 소설의 주인공은 혜초 스님과 고선지 장군이라고 할 수 있다.

《혜초》의 장점이자 단점은 중층적인 구조이다. 그래서 읽는 재미를 더하지만, 가독성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혜초 스님이 고선지를 만나면서 시작되는 현재의 이야기와 혜초 스님이 양피지에 남겨 놓았던 과거의 여행기가 교차된다. 현재의 이야기는 다시 기억 상실에 걸린 혜초 스님이 김란수와 동행하는 이야기와 돌림병에 걸린 고선지 장군이 오름과 혜초 스님의 뒤를 좇는 이야기로 세분화된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직선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파편화된다. 그 파편화된 서사의 조각을 맞추는 것은 바로 독자의 몫이다. 이처럼 내러티브가 다소 난해한 구조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흥미진진함을 유지한 채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이유는 혜초 스님이 잃어버린 기억의 편린(片鱗)들을 조합할수록 여러 의문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과거 혜초 스님과 김란수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김란수는 왜 혜초 스님에게 양피지를 일정 분량 이상을 읽지 못하게 하는가, 각별한 인연임에도 불구하고 왜 오름은 혜초 스님과 고선지 장군을 사지로 유인하는가 등 이런저런 의문들이 점층적으로 생기는 것이다.

소설의 구성을 설명하면서 언급했다시피 작품 속에는 혜초 스님과 고선지 장군 밖에도 주요한 인물이 2명 더 등장한다. 서역에서 온 무희 오름과 장사꾼 김란수이다.

김란수는 이재에 밝은 탁월한 장사꾼이다. 김란수라는 인물로 인해 소설의 서사가 한층 복잡해기도 한다. 김란수는 혜초 스님을 속여서 노예사냥꾼들에게 넘긴다. 그러나 김란수 자신도 노예사냥꾼들에게 속아서 노예로 팔려가야 하는 신세가 된다. 그 무리 중에는 기독교 일파인 경교를 믿는 야곱도 있다. 혜초 스님과 김란수와 야곱은 이동 중 탈출에 성공하고, 오름의 동생 내림 일행을 만난다. 일행이 설산(雪山)을 넘는 과정에서 혜초 스님은 지옥을 체험한다. 김란수와 길 안내자들이 내림을 살해하고 인육을 먹는 것을 목도함은 물론이고, 김란수가 우격다짐으로 건넨 내림의 인육을 먹어야 하는 참혹한 상황까지 경험하는 것이다. 혜초 스님이 오름을 다시 만났을 때 용서를 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름은 혜초 스님과 고선지 장군에게 적의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오름이 두 사람에게 적의를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혜초 스님은 쌍둥이 동생 내림의 인육을 먹었기 때문이고, 고선지는 파밀 서쪽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당나라의 장수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저지른 죄악에 비하면 혜초 그대가 모래 언덕에 나뒹구는 시신을 수습한 일은 지극히 작고 또 작은 일에 불과해. 너희는 단지 너희와 다른 족속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말을 쓰고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살갗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대유사의 마을들을 불태우고 마을 사람들을 도륙해왔지. 천자의 은덕을 널리 펴기 위함이라는 가당찮은 구실을 갖다 붙이곤 말이야. 파밀 서쪽의 이교도들은 두려워하고 업신여기면서도 호선무 추는 무희들은 무조건 받아들였지. 세상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니 파밀을 넘어 당나라 국경으로 들어가는 일은 무희들의 바람이 또한 아니었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긴 하겠지. 하나 그 바람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다시 스스로에게 물어야해. 당나라의 무희들이 파밀고원을 넘어 대식이나 파사로 왔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지. 유혹의 큰 함정을 파 놓고 우리를, 꿈 많고 호기심 많은 우리를 끌어들인 거지.
내가 얼마나 내림을 아꼈는지, 또 내림이 얼마나 고운 아이였는지 모를 거야. 내림의 참혹한 최후는 당나라로 들어온 무희들의 슬픈 생애를 간명하게 압축해 보여 준 사건이지. 너희는 우리의 격한 춤을 보고, 우리의 간드러진 노래를 듣고, 우리의 길고 얇은 손을 만지고, 우리의 깊고 어두운 사타구니를 탐한 뒤, 우리가 늙고 병들면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아. 너희는 우리의 춤과 노래와 몸을 뜯어먹는 거야. 값을 치렀다고 둘러대진 마. 돈 몇 푼으로 인간의 삶을 망가뜨릴 수는 없는 법이니까.
참 이상한 일이지. 너희를 만나기 전엔 평화롭기 그지없던 마을이 도적 떼의 소굴로 둔갑하고, 너희네 국경으로 들어가기 전엔 하늘처럼 맑고 꽃처럼 향기롭던 소녀들이 남자 없이 하룻밤도 지내지 못하는 음탕한 창기 취급을 받으니까 말이야.”


오름이 혜초 스님과 고선지 장군에게 저주처럼 퍼부어 대는 말이다. 이 말 속에는 오름이 왜 혜초 스님과 고선지 장군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가 깃들어 있다.

당시 혜초 스님이 여행한 당나라와 오천축은 세계의 전부라고 과언은 아닐 것이다. 김탁환 작가가 혜초 스님의 행장기를 이 시대에 다시 끄집어내는 이유는 당시 당나라 중심의 중화문화와 지금의 팍스아메리카나의 문화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혜초》는 여행길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이 사랑하고 이별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그 인연 중에는 선연(善緣)과 악연(惡緣)이 교차하고, 증오심과 자비심이 교차한다.

오름과 내림 자매와 혜초 스님의 인연, 김란수와 혜초 스님의 인연이 대표적인 악연이라면, 불제자 혜초 스님과 경교도인 야곱의 인연, 신라 출신 승려 혜초 스님과 고구려 출신 장수 고선지의 인연은 대표적인 선연이다.

이 작품은 중층적인 구도 때문에 서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두 번 읽어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그 수고를 감수한 끝에 독자가 최종적으로 만나는 지점은 ‘여전히 칼날 같고, 검은 모래 폭풍 같고, 번갯불 같고, 대유사 같고, 파밀 고원 같은’ 용맹한 장수 고선지가 건넨 양피지 다발을 늙은 혜초 스님이 장작불에 태우는 장면이다. 그 순간 혜초 스님은 곱디고운 모래를 밟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인다. 혜초 스님은 ‘은자(隱者)에겐… 망각을 기억하는 책이 더 소중해.’라는 혼잣말을 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그렇게 혜초 스님이 걸어간 맨발의 기록,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들은 사라지고, 지명과 거리만 기록된 《왕오천축국전》만 남게 된다.

작가가 독자에게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이 역시 중층적이다. 한편에서는 문화의 다양성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 편에서는 길 위의 서사와 그 기록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말하고 있다.

문화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파사국에 당도해 혜초 스님이 천교(조로아스터교), 회화교(이슬람교), 경교(기독교) 등 일신교의 교리를 경험하는 대목에서 두드러진다. 특히, 경교도인 야곱과 함께 노예상들에게서 벗어나 유행하면서 서로의 종교 교리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은 인상 깊다.

“방금 예수님이라고 하였소? 그 사람이 누구요? 독생자는 또 무슨 소리요? 누구의 독생자란 거요?”
야곱은 대답 대신 제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 짓습니다. 하룻밤 대화로 서로의 믿음과 삶을 이해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아는 탓입니다. 야곱은 조용히 답합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마을이 있고, 그 마을에는 다양한 신들이 숭앙을 받지요. 스님께서도 소위 외도들의 삶을 보셨으니까 제 말뜻을 받아들이실 겁니다. 저는 경교를 믿습니다. 경교에서 최고의 신은 하느님 여호와이며, 그 외아들 독생자가 바로 예수님이지요. 예수님이 활동하신 곳을 순례하기 위해 돌궐을 떠나온 거고요.”
여행자도 경교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장안에 가면 기인한 종교들의 사원을 구경할 수 있는데, 경교와 마니교, 천교의 인기가 그중 높다 하였습니다.
“하느님? 독생자 예수님? 언뜻 들으면, 경교의 신은 단일함을 추구하는 듯하구려.”
“세상에 단 하나의 신만을 경외하는 종교는 경교뿐만이 아니지요. 신을 가리키는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가령 천교에서는 그 신을 아후라 마즈다라고 부르고, 회회교에서는 알라라고 부르고, 경교에서는 하느님 여호와라고 부릅니다. 그 신의 절대적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네 피조물의 사명이지요. 납득하기 어려우신가요?”
야곱이 슬쩍 여행자의 눈치를 살핍니다. 이런 토론을 꽤 해 본 경험이, 자신의 교리를 단정하게 설명하면서도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아후라 마즈다, 알라, 여호와! 단 하나의 신을 만들고 무조건 순종하는 건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야곱이 슬쩍 말허리를 자릅니다.
“저 역시 누구나 득도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 교리를 받아들이기 힘들답니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죠. 이방의 사람들끼리 만나서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이야기가 바로 종교 이야기랍니다. 어느 종교나 배려와 자비 혹은 사랑을 강조하지만, 또 그만큼 아집을 지닌 게 없으니까요. 스님은 부처님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저는 하느님께 살려 달라 기도하겠습니다. 그 정돈 할 수 있겠지요?”


위 문장에서 여행자는 혜초 스님이다. 혜초 스님과 야곱은 유일신교인 기독교 교리와 유심론인 불교 교리를 놓고 논쟁한다. 그 논쟁 끝에 둘은 대화의 화제를 마을로 옮긴다.

“저들에게 빼앗긴 스님의 걸낭엔 무엇이 들었습니까?”
“마을입니다.”
“마을! 마을을 어떻게 걸낭에 넣나요?”
여행자는 야곱의 농담에 웃음 짓습니다.
“양피지 다발에 제가 거쳐 온 마을을 담았습니다. 저들이 그것들을 없애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방인의 물품은 어느 것도 쉽게 버리지 않을 겁니다. 신라는 당나라보다도 더 먼 나라이니, 신라 승려가 지닌 것이면 값이 나간다고 여기겠지요.”
“야곱의 마을은…… 어떤 곳인가요? 돌궐은 높은 산과 깊은 계곡 또 넓은 평원과 푸른 강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라 듣긴 했습니다만…….”
“아름답지요. 누구에게나 고향은 아름답지만 제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은, 그러니까 뭐랄까요. 새들이 유독 많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새처럼 울고 웃고 날아다니는 흉내를 내곤 했지요. 믿지 않으시겠지만, 우리 마을 어른들은 누구나 새 떼들과 대화를 나눈답니다. 아주 시끄럽게 울게 할 수도 있고, 수십 마리가 날아오르거나 내릴 때도 침묵하게 하기도 했지요. 고향으로 돌아가면 꼭 그 재주를 배울 작정입니다.”
“새들의 마을이군요. 강을 끼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강처럼 고요하고 푸르며, 눈이 많이 내리는 마을 사람들은 눈처럼 하얀 피부와 하얀 웃음과 하얀 목소리를 지녔더군요.”


이처럼 둘의 대화는 ‘마을’에서 그 마을을 끼고 흐르는 ‘강’이나, 마을을 덮고 있는 ‘눈’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강을 닮아서 고요하고 푸른 사람들과 눈을 닮아서 하얀 피부, 하얀 웃음, 하얀 목소리를 지닌 사람들로 이어진다. 이 사람들은 혜초 스님이 길 위에서 만난 다른 듯 같으면서도 같은 듯 다른 사람들이다. 이러한 다양성의 역설은 대중이 아닌 다중(多衆)의 시대를 사는 현 시점에서 대단히 유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의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도 길이고, 그 사람들이 만나서 새로운 이야기를 펼치는 곳도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혜초 스님은 그 길의 기록들을 모조리 하얀 망각의 강에 빠뜨린다. 혜초 스님이 모래언덕 자신의 무덤을 파면서 읊조린 독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여행자는 제 무덤에 들어가서 눕습니다. 어머니 품처럼 편안합니다. 두 번 다시 모래 위로 올라오지 않을 겁니다. 해와 달과 별을 볼 일도 없습니다. 검은 모래 폭풍이 밀려오는 걸까요. 모래 알갱이들이 떨어져 볼을 때립니다. 제 여행 이야기, 이야기 여행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소멸만이 남았고 다시는 여행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기(記)와 록(錄)에 매달리지 않을 겁니다. 항하의 한 알 모래 알갱이로 돌아가겠습니다.

혜초 스님이 여행의 소멸을 통해서 기록에 매달리지 않고 항하의 한 알 모래 알갱이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도 서사에서 유추할 수 있다. 천자가 혜초 스님에게 신라를 그리워하면서도 돌아가지 않는 이유를 묻자 혜초 스님은 ‘그립다 하여 모두 돌아간다면 그리움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때로는 가지 않고 그리움만으로 간직하고픈 일도 있다.’고 답한다. 그러니까 혜초 스님은 자신의 기억 속에 숱한 그리움의 길을 묻는 것이고, 그 결과 혜초 스님이 맨발로 걸어왔던 길의 기록은 바람이 불면 사라지고 마는 모래 위에 찍힌 발자국처럼 종적 없어지는 것이다.

유응오 | 소설가, 전 주간불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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