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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적 인간에 관하여
2017년 06월 14일 (수) 08:30:44 박찬일 budjn2009@gmail.com
특수상대성이론은 가속원리를 통해 ‘에너지와 질량의 상호호환성’에 관해 말한다. 속도를 내면 낼수록[가속이 붙으면 붙을수록] 질량이 무거워지고, 크기가 작아지고, 시간이 느리게 간다. 타자가 빠른 공에 손을
   
못 대는 것이 크기가 줄었기 때문이고, 포수가 빠른 공을 받을 때 손바닥이 아픈 것이 질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우사인 볼트가 100미터를 10초에 가고─시간이 더디게 가고, 박찬일이 100미터를 100초에 간다─시간이 빨리 간다. 물체가 궁극적으로 빛의 속도에 다다르면 질량이 무한대로 커지고, 크기가 극소화되고, 시간이 멈추게 된다.

특수상대성이론은 가속도와 질량의 관계이고, 일반상대성원리는 가속도를 중력으로 대체시켜, 가속도와 질량의 관계를 중력과 질량의 관계로 일반화시킨 경우이다. 일반상대성원리는 [중력]에너지와 질량의 상호호환성에 관해 말한다; 중력[질량]은 공간을 휘게 하고 시간을 휘게 한다. 질량이 곧 에너지인 것이다. E=mc2이 말하는 것이 질량과 [중력]에너지의 상호호환이고, 특히 에너지의 질량화에 관해서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을 - 양자이론과 비교해서 - 중력이론으로 부르는 이유이다.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을 양자중력이론으로 일반화시킬 수 있는 것은 양자이론이 에너지의 양자화를 말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플랑크 공식 E=hv에서 v가 [양자]진동수로서, 플랑크공식[양자공식]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것이 에너지와 양자의 상호호환에 관해서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이 에너지와 질량의 상호호환을 말하고, 양자이론은 에너지와 양자의 상호호환을 말한다. 혹은 전자(前者)가 에너지의 질량화를 말하고 후자가 에너지의 양자화를 말한다. [상대성원리와 量子역학의 ABC를 말할 때 그것은 질량에 관해서이다. 量에 관해서이다]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의 ABC를 말할 때 그것은 불확실성에 관해서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주지하다시피 양자세계에서의 위치와 운동량의 동시적 확정 불가능성에 관해서이다. 운동량은 물체의 질량과 물체의 속도의 곱하기로 나타난다. 위치가 확보되면 물체의 질량과 물체의 속도의 곱하기가 확보될 수 없다. 역도 마찬가지이다. 운동량[물체의 질량과 물체의 속도의 곱]이 확보되면 위치가 확보될 수 없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미시세계(혹은 양자세계)에서만 적용되는 것으로 말할 수 없다. 위치와 운동량의 동시적 확보 불가능성은 거시세계에도 해당된다. 거시세계에서도 위치와 운동량의 동시적 확보가능성을 말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움직이고 움직이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상대성원리의 계율은 주지하다시피 거시세계에 관한 것이다. [일반상대성원리를 중력에 관한 이론이라고 할 때 이것은 주로 거대 천체에 관한 것이다] 문제는 ‘움직이는 모든 것’이다. 움직이는 모든 것이 거대 천체에만 해당되지 않고 소립자에도 해당된다. ‘움직이는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 또한 거대 천체에만 해당되지 않고 소립자에도 해당된다. 강조하면, 미시세계와 마찬가지로 거시세계에서도 위치와 운동량의 동시적 확보가능성을 말할 수 없다. 거시세계에서 위치와 운동량의 동시적 확보불가능성을 말하기 힘든 것은 큰 물체에서 위치와 운동량의 ‘차이’를 가시적으로 드러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상보성 원리에 의하면 하나가 분명히 드러나면 다른 하나는 모호해진다. 이 또한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에 두루 적용된다. ‘모든’ 물질은 입자[물체]와 파동의 성질을 갖는다. 이른바 ‘입자-파동의 이중성’이다. [‘파동’과 운동량이 상호인접 관계에 있다. 운동량이 질량과 속도의 곱으로 나타나는 반면, 파동의 속력은 (1초당) 파장과 진동수의 곱으로 나타난다] 전자(혹은 광자)뿐만 아니라, 큰 물체 또한 ‘물질파’를 가지나, 물질에 비해 파동이 너무 작아 파동의 성질을 감지해내기 힘들다. 큰 물체에서 위치와 운동량의 차이를, 즉 위치와 운동량의 동시적 확보불가능성을 감지해내기 힘든 것과 같다. 파동-입자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곳이 미시세계에서이다. 1905년의 ‘아인슈타인의 광전자효과’에서 이것이 분명해졌다. 감마선-X선-자외선 등 파장이 짧은 고에너지 빛을 금속판에 쬘 때 전자가 튀어나오는 것은 파장이 짧은 고에너지 빛이 파동의 능력을 거의 상실하고 입자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며, 가시광선 이하 적외선 극초단파 단파 등 파장이 긴 고에너지 빛을 금속판에 쬐었을 때 전자가 튀어나오지 않는 것은 파장이 긴 저에너지 빛이 입자의 능력을 거의 상실하고 파동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입자-파동의 이중성을 말할 때 이것은 주로 넓은 의미의 빛에 관해서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이나 일반상대성이론이나 공통적인 것은 절대적인 것의 부인이다. 모든 것은 움직이고 움직이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엄격히 말해 우리 인간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확정시키기가 불가능하다. 우리 인간이라는 물체는 크게 보아 입자와 파동이나, 주로 입자의 성격이 인지되고 파동의 성격이 인지되지 않는다. 말했다시피 물체 크기 자체에 비해 파동이 너무 작아 파동을 감지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늘 회의적인 인간이다, 확정시킬 수 없는 인간이다, 일찍이 데이비드 흄과 임마누엘 칸트가 ‘회의론’(혹은 물자체의 부인)을 통해 우리에게 일러줬었다. ‘나는 인간을 회의한다.’

-시인 · 추계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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