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을 두고, 이것이라고 한다면 머리 위에 머리를 얹는 격이요, 이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머리를 끊고 살고자 하는 격이니, 여기에 이르러 어떻게 생각으로 접근할 수 있겠는가. 고인이 “생각하고자 하나 생각할 수 없어 그 자리를 밟을 때 만리 하늘에 구름이 없어 늘 드러나 있다.”1)라고 하였으니, 이 또한 쓸데없는 말일 뿐이다. 또 “비록 천 척의 높은 소나무는 있으나 바위틈에 솟아난 죽순은 없다.”2)라고 하였으니, 죽순이 있은들 무엇하리오. 또 “공겁(空劫) 이전은 호리병 속 풍월3)이요,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은 눈에 가득 아름다운 풍광이다.”라고 한 것은 군더더기일 뿐이다.

앙산(仰山) 화상은 “깨달음은 없지 않지만 제이두(第二頭)4)에 떨어짐을 어이하리요.”라고 하였으니, 이는 반쯤만 말한 것이다. 수산 주(修山主)는 “알면 매우 기특한 일이지만 알지 못해도 인정한다.”라고 하였으며, 대혜 선사(大慧 禪師)는 “4, 5백 길 꽃과 버들 우거진 거리요 2,3천 곳 풍악 울리는 누각이다.”라고 하였으니, 여기에 누가 주둥이를 댈 수 있겠는가. 주둥이를 댄다면 나에게 주둥이 댄 곳을 도로 가져다 보여 달라. 한 사람이 나와서 이르기를 “그 또한 귀를 막고 요령을 훔치고 몸은 숨겼으나 그림자는 드러난 것이다.”라고 하면 즉시 “네가 어느 곳에서 이런 소식을 얻었는가?”라고 하리라. 일러 보라,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이 도리어 맞는 말인가? 또 지금 푸른 벼랑은 깎아지른 듯 솟았고 소나무 삼나무는 푸른빛으로 우거졌으며, 시냇물은 졸졸 흐르고 안개와 구름은 피어올랐다 갰다 하고 온갖 새들은 지저귀며, 들판은 아득히 드넓고 바다에는 파도가 일며, 경물(景物)은 어지러이 펼쳐져 사철에 따라 모습이 바뀌니, 이 중에 또한 불법이 있는가? 경(經)에 “삼계가 오직 마음이다.” 하였고, 또 고인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달빛 비친 물가가 진심(眞心)을 나타내 보이고 노란 국화와 푸른 대나무가 묘법(妙法)을 드러내 밝힌다.” 하였으며, 또 “분명하고 분명한 백초(百草)5) 위에 분명하고 분명한 조사(祖師)의 뜻이로다.” 하였으니, 일러 보라, 어느 것이 진심과 묘법을 드러내 밝힌 것이며, 어느 것이 조사의 뜻이며 불법인가? 만약 없다면, 불조(佛祖)가 어찌 거짓말로 사람을 속였으리오. 이미 사람을 속이지 않았다면 또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고인이 이르기를,

일단 일에 손을 댔으면 끝까지 해야 하니6)
한 주먹으로 쳐서 황학루를 거꾸러뜨리고
한 발길로 차서 앵무주를 엎어버린다
의기 있는 곳에 의기를 더 보태고
풍류 없는 곳에서 풍류를 즐긴다

하였으니, 이 또한 호떡을 눌러 기름을 짜는 격이라 크게 수고로울 뿐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한 승려가 묻기를 “어떤 것이 변천하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하니, 고덕(古德)이 “해가 동쪽에서 떠서 밤에 서쪽에서 진다.” 하였다. 또 한 승려가 앞의 질문을 하니, 고덕이 손으로 물이 흘러가는 시늉을 하였다. 그 두 승려가 모두 깨달았다.

일러 보라. 무엇을 깨달았는가? 그 또한 단 복숭아와 감은 먹지 않고 산을 돌아다니며 신 배를 따는 격이니, 허물이 적지 않고 낭자(狼藉)7)가 적지 않도다. 그렇다면 필경 어떻게 해야 분명히 알겠는가. 우선 아래의 주각(注脚)을 들어보라.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이르노라.

“조상이 똑똑하지 못하여 앙화(殃禍)가 자손에게 미치도다. 30년 뒤에 잘못 들어 말하지 말라. 쯧쯧.”

○若道這箇是, 頭上安頭, 若道這箇不是, 斷頭覓活, 到這裏却如何湊泊? 古人云: “欲思不思踏破時, 萬里無雲常現露”, 也是閑話長語. 又云: “雖有千尺寒松, 且無抽條石笋”, 要石笋作甚麽? 又云: “空劫已前, 一壺風月, 威音那畔, 滿目烟光”者, 又是贅疣指駢了也. 仰山和尙云: “悟則不無, 爭奈爲第二頭.” 道得一半了也. 修山主云: “會得甚奇特, 不會也相許.” 大慧禪師云: “四五百條花柳巷, 二三千處管絃樓.” 誰能揷嘴得? 揷嘴了, 也還我揷嘴處看. 有人出來云: “也是塞耳偷鈴, 藏身露影.” 卽云: “爾向甚處, 得這消息來.” 且道, 如此下語, 還諦當也否? 且也現今蒼壁峭截, 松檜森翠, 澗水嗚咽, 烟雲舒捲, 百鳥和鳴, 廣野綿邈, 大海汹湧, 景物紛羅, 四時變態, 於中亦有佛法也無? 經云: “三界唯心.” 又古人云: “風柯月渚, 現露眞心, 黃花翠竹, 宣明妙法.” 又云: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且道, 那箇是現明底眞心妙法, 那箇是祖意佛法? 若無也, 佛祖豈是妄語欺人? 旣不欺人, 又且如何和會得? 古人云: “一不造二不休, 一拳拳倒黃鶴樓, 一蹋蹋飜鸚鵡洲, 有意氣時添意氣, 不風流處也風流.” 亦將胡餅壓汁的相似, 大是勞而無功. 僧問: “如何是不遷變意?” 古德答曰: “日出東方也落西8).” 又僧作前問, 古德以手作流水勢, 二僧皆悟去. 且道, 悟箇甚麽? 也是不喫甘桃杮, 緣山摘醋梨, 漏逗不少, 狼藉不少. 然則畢竟如何諦當得去? 且聽下文注脚. 噓一噓云: “祖禰9)不了, 殃及子孫, 三十年後莫錯擧. 咄.”

해설

○ 이 일원상은 자기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자기 마음을 가지고 다시 자기 마음을 찾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기 마음이 아니라 부정할 수도 없다. 마음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지만, 하늘은 드넓게 푸르고, 벼랑은 높이 솟았고, 소나무는 짙푸르고, 시냇물은 졸졸 흐르고, 안개는 아련히 피어오르고, 새들은 지저귀고, 들판은 아득히 펼쳐지고, 바다에는 파도가 일렁인다. 이것이 경계인가 마음인가? 경계를 버리고 따로 마음을 찾으면 마음은 어디 있는가. 4,5백 길 꽃과 버들 우거진 거리, 2,3천 곳 풍악 울리는 누각이 이대로 본지풍광(本地風光)이다. 이 눈 앞에 펼쳐진 경계는 여여(如如)하여 취하래야 취할 수 없고 버리래야 버릴 수 없다. 생각한다고 해서 알 수 없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모를 수 없다. 이것이 내 마음과 하나인가, 둘인가? 알아도 30방(棒)이요 몰라도 30방인 것이다. 이 자리에는 아무리 기특(奇特)한 도리를 갖다 붙여도 맞지 않다. 그래서 옳은 대답을 해도 “비록 천 척(尺)의 높은 소나무는 있으나 바위틈에 솟아난 죽순은 없다.”라고 한다. 아무리 잘 대답해도 아쉬운 점이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밤에 서쪽에서 지는 것과 물이 흘러가는 것은 변천하는 세간상(世間相)이다. 그렇지만 변천하는 상(相)을 보이는 당처(當處)는 여여(如如)하여 변치 않는다. 그 변치 않는 당처를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변천하는 상을 통해 볼 수 밖에 없다. 이는 마치 무색투명(無色透明)한 마니주를 찾으려면 마니주에 비친 색채나 형상을 보고 마니주가 그 자리에 있음을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자기 마음의 당처는 늘 원만(圓滿)하여 아무 부족할 게 없거늘 다시 무엇을 깨달으려고 망상을 피우니, 이것이 단 복숭아와 감은 먹지 않고 산을 돌아다니며 신 배를 따는 격이다. 어찌 허물이 크지 않겠는가. 마음을 깨달으라고 가르친 불조(佛祖)의 설법이 실은 자손에게 앙화(殃禍)가 끼친 것이다.

그래서 경허 스님은 티끌처럼 하찮은 말이라는 뜻에서 이 법문에 일진화(一塵話)란 제목을 붙인 것이니, 이 법문을 환병(幻病)을 고치는 환약(幻藥)으로 알아야지 중요한 도리로 받아들여 지녀서는 안 된다고 간절히 당부한 것이다.

주) -----
1) 생각하고자…있다 : 서주 용문 불안 화상(舒州 龍門 佛眼 和尚)의 상당 법어에 나온다.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 권제28.
2) 비록…없다 : 삼성 영수(三聖令秀) 상좌(上座)가 장사(長沙) 스님에게 묻기를 “남전(南泉)이 천화(遷化)하여 어디로 갔습니까?”라고 하니, 장사 스님이 “석두(石頭) 스님이 사미일 때 육조(六祖) 스님을 뵀느니라.”라고 하였다. 영수 상좌가 “석두 스님이 육조 스님을 찾아 뵌 일은 묻지 않았습니다. 남전 스님이 천화하여 어디로 갔습니까?”라고 하니, “네가 생각해 보아라.”라고 하였다. 이에 영수 상좌가 “화상은 비록 천 척 높이 소나무는 있지만 바위 틈에 빼어난 대나무는 없습니다〔和尚雖有千尺寒松, 且無抽條石笋〕.”라고 하니, 장사가 대답하지 않았다.
3) 호리병 속 풍월 : 매우 풍광이 아름다운 별천지를 뜻한다. 후한(後漢) 때 시장에서 약(藥)을 파는 호공(壺公)이란 노인이 자기 점포에 병 하나를 걸어 놓고 있다가 장사를 마치면 늘 그 병 속으로 뛰어 들어가곤 했는데, 비장방(費長房)이란 사람이 그것을 보고 호공에게 청하여 따라 들어가 보니, 호리병 속에는 별천지가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후산서(後漢書)》 권82하(下) <방술열전·비장방(方術列傳·費長房)>.
4) 제이두(第二頭) : 제일의제(第一義諦)와 상대되는 개념으로 제이의第(二義)와 같다. 즉 향상(向上)의 제일의(第一義)로부터 향하(向下)의 차별문으로 후퇴하여 여러 가지 방편에 의해 중생의 미망을 깨어 깨달음으로의 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5) 백초(百草) : 현상계의 모든 사물을 총괄하여 말한 것이다.
6) 일단…하니 : 원문의 ‘일부주, 이불휴(一不做二不休)’는 ‘일단 손을 대고 나면 끝까지 하다, 한번 나쁜 일을 시작한 바에는 끝까지 하다.’라는 뜻이다. 《오조법연어록(五祖法演語錄)》 권상(卷上)에 “一不做, 二不休. 不風流處也風流.”라 하였고, 《벽암록(碧巖錄)》 79칙 본칙평창(本則評唱)에 “衲僧家, 一不做, 二不休.”라 하였다.
7) 낭자(狼藉) : 이리가 풀을 깔고 자고 난 뒤의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모양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허물을 뜻한다.
8) (역) ‘日出東方也落西’는 《호서화상법어(湖西和尙法語)》에 ‘日出東夜落西’로 되어 있다.
9) (역) ‘禰’는 선학원본에 ‘稱’ 자로 되어 있는데 이는 오자이다.

이상하 |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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