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4일 조계종 중앙종회는 ‘해종ㆍ악성 인터넷 매체 근절 촉구 및 공동대책위원회 구성을 위한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종회는 “무분별한 비방과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악성 인터넷 매체들이 더 이상 종단 내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 불교포커스와 불교닷컴을 해종ㆍ훼불ㆍ악성 인터넷 매체로 규정하고 종단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총무원은 “중앙종회의 결의를 존중하며 뜻을 무겁게 받아들여 불교포커스와 불교닷컴에 대해 취재지원의 중단과 출입을 금지하고 종회의 결정사항을 적극 실행할 것”이라는 논평을 냈다. 이후 지금까지 종단은 취재금지, 광고금지, 인터뷰 금지 등 두 언론에 대한 전방위의 탄압을 자행하고 있고 이로 두 언론은 고사 직전에 있다.

불교는 민주주의·언로의 열림 추구…언론탄압은 훼불

이전 7번째 칼럼, ‘직선제가 청정승가의 토대’에서 지적했듯이, 붓다는 밧지족의 민주적 시스템을 칭찬하며 이를 바탕으로 칠불퇴법(七不退法)을 승가에 적용시켰다. 붓다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비판에 귀를 열었다. 붓다는 “말과 뜻이 다른 어떤 이에 대해 자신의 뜻을 밝히고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① 충고하고, ② 듣지 않으면 꾸짖고, ③ 듣지 않으면 꾸짖기를 멈추고 ④ 다 같은 여래의 제자로서 각자의 판단에 따라 함께 올바른 말과 뜻을 추구해야 한다”(《장아함경》)고 했다. 붓다는 어떤 사람이 종성(種姓)을 묻는다면 “나는 사문 석가모니의 종성의 아들이다”라고 답하라 할 정도로 신분과 직업을 떠나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바라보았다. 부처를 만나고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서까지 지존의 권위와 지위마저 해체하고 진리라 생각한 것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이를 깨야만 진정한 진리에 다다른다는 것이 불교의 진리관이다. 원효성사는 진리라고 단정하는 것에도 일말의 허위가 있으니 그를 골라내고 허위라고 규정한 것에도 일말의 진리가 있으니 그를 추려내야 하니, 어떤 주장이든 받아들인 다음 그를 따르는 동시에 따르지 않는 순이불순(順而不順)의 화쟁(和諍)을 통하여 진리로 다가가는 방편을 알려주었다. 승가(僧伽)는 모든 안건을 찬성과 반대를 묻는 대중공사인 갈마(kamma)를 통하여 처리하는 민주주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만장일치에 이를 때까지 토론을 거듭하되, 이것이 불가능하면 다수결로 표결하여 정하였다. 이렇듯 불교는 교리적으로나 전통으로나 강렬하게 민주주의와 ‘언로(言路)의 열림’을 지지하고 추구하였다. 그러니, 종단의 언론탄압이야말로 부처님의 뜻을 어기는 훼불행위다.

언론·사상 자유는 인류의 보편원칙

백보를 양보하여 불교에 민주적 교리와 전통이 없다 하더라도 지금은 21세기다. 스님과 종단 또한 근대 국가의 틀 안에 있다. 근대국가는 언론의 자유를 근간으로 한다. 존 밀턴이 1644년에 《아레오파기티카(Areopagitica)》에서 언론과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였고, 존 스튜어트 밀은 1859년에《자유론(On Liberty)》에서 “전 인류 가운데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동일한 의견을 갖고 있고 한 사람만이 그에 반대되는 의견을 갖고 있을 경우, 인류에겐 그 한 사람을 침묵시킬 권리가 없다. 한 사람이 인류 전체를 침묵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인류를 침묵시킬 권리가 없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였다. 밀은 이어진 문장에서 그 이유에 대하여 말한다. “만약 의견이란 것이 그 당사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개인적 소유물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 의견의 향유를 방해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손해이며, 그 손해가 소수자에 미치는가, 다수자에 미치는가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점이 생긴다. 하지만, 의견의 표현을 침묵시키는 데 대한 폐해는 그것이 인간의 권리를 탈취하며 그 의견의 당사자들보다도 그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권리마저 박탈한다는 데 있다. 만약 그 의견이 정당한 경우 반대자들은 과오를 버리고 진리를 따를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다. 만약 그 의견이 그릇된 경우, 그들은 과오와의 충돌에서 야기된 진리의 보다 명료한 지각과 선명한 인상 - 이것은 과오를 버리고 진리에 따르는 이익과 거의 동일한 규모의 이익 - 을 잃어버린다.”

밀턴과 밀의 이론을 바탕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언론의 자유를 위하여 피를 흘린 결과, 언론과 사상의 자유는 인류의 보편원칙이 되었으며, 이로 인류는 중세의 주술의 정원에서 벗어나 진리를 올바로 구현하는 지평에 놓였다. 실제에서 괴리가 있지만, 지구상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헌법을 통하여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언론 또한 권력자들이 통제하고 검열하는 권위주의 단계에서 벗어나 진리와 사상을 마음껏 표현하는 자유주의 단계로 도약하였다.

밀의 인용문에 적절하게 부합하는 사건이 <데일리 메일>지의 사례다. 세계 제1차 대전 발발 이듬해인 1915년 5월에 다른 언론이 영국의 연전연승을 보도하는 상황에서 <데일리메일> 신문만은 영국군이 실은 연전연패하고 있으며 그 원인은 포탄과 병기들이 너무 낡았고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 사이에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도한다. 아스키스(Asquith) 내각과 육군 장관 키치너(Kitchener) 원수 및 군부의 보도협조 요청을 받아들인 다른 신문들은 일제히 <데일리메일>의 보도를 매국노의 짓으로 매도한다. 이에 시민들도 이 논조에 동조하여 데일리메일지를 불태우고 불매운동을 벌인다. 광고주도 외면하자 이 신문은 심각한 경영위기에 놓이고 문을 닫으려 한다. 이때 비스카운트 노스클리프(Viscount Northcliffe) 사장의 동생이 자신의 재산을 투여하여 돕는다. 이후 새로 들어선 로이드 조지(Lloyd George) 내각은 병기를 개선하는 등 패전 요인들을 바로잡아 나갔고 결국 전쟁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다. 패전한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는 “노스클리프의 신문 때문에 전쟁에서 졌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범계·비리 비판 목소리 잠재워 은폐하는 저의 분명”

<데일리 메일>지의 사례가 시대와 공간을 건너 뛰어 오늘 한국에서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를 상대로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종회와 종단이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를 해종언론으로 규정하던 2015년 11월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면 종단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종단과 지도층 승려들의 범계 행위는 1700년 이어져온 한국 불교를 송두리째 파괴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종단의 수장을 포함하여 지도층 승려들이 은처, 폭력, 성폭행, 뇌물 수수 및 공금 유용, 억대 도박 및 해외원정도박 등 메가톤급 범계 및 비리행위를 끊임없이 범하고 있었다. 당시에 흥국사의 탱화를 절도한 의혹이 있는 스님은 동국대 이사장이 되어 연임을 시도하였었고, 처자식이 있는 스님은 아직도 용주사 주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 스님의 혼인증명서를 제출하고 어떤 스님의 경우 성매수를 했음이 드러났는데도 종단은 문서견책으로 끝내고, 처자식 신상정보와 사진까지 밝혀졌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이런 작금의 사태에 대하여 두 언론사만이 제대로 보도하고 다른 언론들은 이들 문제에 대해 보도를 하지 않거나 미온적으로 처리해왔다. 심지어 몇몇 언론사는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를 비방하는 기사를 싣기도 하였다. 물론 두 언론사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두 언론사가 기사를 매개로 거래를 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언론인의 윤리 차원에서 철저히 성찰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언론탄압에서 빚어진 것이다. 두 언론사가 사실을 왜곡, 조작한다면 몰라도 청정 승가를 위하여 범계를 비판하고, 권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비판의 자유를 행사하며 정론직필을 한 것을 이유로 압박하는 것은 명백한 언론 탄압이자 진리를 침묵하게 하는 반불교적 행위이며, 종단의 범계와 비리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잠재워 이를 은폐하자는 저의가 분명하다.

타자 응시없다면 인간은 마음대로 타락한다

지금 두 언론사는 17개월 동안 취재와 광고탄압을 받으면서 <데일리메일>처럼 문을 닫을 위기에 있다. 밀이 잘 묘파한 대로, 두 언론사의 의견이 정당한 경우 종단은 과오를 버리고 진리를 따를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다. 설혹 두 언론사의 의견이 그릇되었다 하더라도 종단은 허위와 삿됨과 싸움에서 진리를 좀더 선명하게 드러내고 전파할 수 있는 이익을 상실한 것이다. 지금 종단 지도층 승려의 타락과 범계는 종단을 근본에서부터 붕괴시킬 지경에 있다. 불교신자가 300만 명이나 감소한 원인은 탈종교화 등의 요인과 더불어 청정승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신자들이 섬겨야 할 스님들을 잃어버렸는데 어찌 절을 찾고 싶을 것이며, 그 스님들이 범인보다 더 타락하였는데 어찌 스님을 찾아가서 지혜를 묻고 열반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언론의 자유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들이나 집단은 그것으로 드러날 비리와 허위, 망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대로 “등에가 쏘지 않는다면 누가 게으른 말을 깨우겠는가.” 열쇠구멍으로 방안을 훔쳐보던 아이가 계단의 발자국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가는 것처럼, 타자의 응시가 없다면 인간은 마음대로 타락할 것이다. ‘방일한 스님을 깨우는 등에’로서, ‘범계의 유혹을 견제하는 타자의 응시’로서 언론의 자유는 철저히 보장되어야 한다.

미국 예일 대학의 토마스 에머슨(Thomas I. Emerson) 교수는 《표현 자유의 체계(The System of Freedom of Express》라는 책에서 표현의 자유가 네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표현의 자유는 개인의 자기실현(self-fulfillment)을 도모하고, 진리를 발견하는 데 기여하며(truth-seeking enlightment),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여 사회 결정, 더 나아가 사회발전에 이바지하며(self-government), 다양한 의사를 표현하여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안정 사이에서 균형(safety valve)을 취하게 한다. 필자가 더 추가하면, 표현의 자유는 정부와 소속집단의 부패와 비리를 견제하고 정화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현재와 같은 디지털시대에서는 브리태니카 백과사전보다 위키피디아가 더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담고 있는 데서 잘 드러나듯, 집단지성을 통해 지혜에 이르게 한다. 그러기에 한 사람을 침묵하게 하는 것은 인류를 침묵하게 하는 것이자 인류가 기억과 성찰을 통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봉쇄하는 것이다.

17세기 이전 야만의 시대로 퇴행시키는 조계종

그럼에도 종단이 자신들의 범계와 비리를 비판한 언론사를 탄압하는 것은 역사를 17세기 이전의 야만의 시대로 퇴행시키는 것이자 헌법을 부정하는 위헌 행위이다. 종단은 두 언론사에 대한 모든 탄압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 더 나아가 두 언론사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에 대한 종단의 유착 및 결탁행위를 낱낱이 고백하고 부처님의 뜻을 따라 모든 언론의 자유를 철저히 보장하고 언론사와 어떤 밀실협상도 하지 않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해야 한다. 그럴 때 종단은 다시 위의와 권위, 정당성을 획득하며, 승가는 청정성을 회복하기 시작할 것이며, 절을 떠난 신도들도 발길을 돌릴 것이다. 그의 이름을 딴 법학대학원이 있을 정도로 권위가 있는 미국의 연방대법관인 벤저민 카도조((Benjamin N. Cardozo)가 1937년 팔코 대 코네티컷 재판에서 판결한 대로 “표현의 자유는 다른 모든 자유의 모체이자 절대 필요한 조건”이다.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 · 한양대 교수

<이 칼럼은 본지 제휴사인 불교닷컴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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