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시민들은 정권의
 비리에 대해 분노 폭발
 이를 악용하는 세력도 있어

나라가 몹시 혼란스럽다. 최순실 사태로 빚어진 탄핵 정국으로 나라살림 꼴은 엉망이다. AI방역에도 구멍이 뚫리고 구제역도 다시 창궐할 조짐이다. 소비급감으로 서민 경제는 바닥이다. 안보 문제도 심각하다. 사드 배치문제로 중국은 오만하게 거듭 우리를 협박한다. 북한의 미사일과 핵 위협을 목전에 둔 우리는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국이 이런데 정치인들은 이런 일 따위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촛불 시위에 기대어 정쟁에만 골몰하고 있다. 종편 방송에선 정치를 무슨 도박판처럼 생각하고 있는지, 탄핵관련 돌아가는 그날그날의 에피소드를 갖고 이를 잡듯 까뒤집으며, 결국 ‘누가 이길 것인가’ 하는 이야기로, 끝도 없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일에 빠져있다.

처음 촛불 시위가 일어났을 때, ‘정의’를 외치던 함성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보내고 동참도 했다. 허나 시간이 흐르면서 변색이 되는 건가. 광화문 일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이곳이 마치 해방구 같다는 생각에, 이제 그 모임의 순수성을 의심하고 있다. 악의에 찬 문구나 잔혹한 그림들이 난무한다. 비상한 광경에 그만 가슴이 서늘해진다고 입을 모은다. 일부 참석자들은 북한의 전령을 받아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세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 때문이리라. 촛불 집회에 질리기 시작했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단다.

태극기 집회는 촛불 시위에 대한 반동 작용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허나 언론에서는 태극기 집회가 ‘병리적 현상’이란 듯,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다루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11일 촛불집회는 광화문 광장 약1만2천 평방미터에 가득 찬 정도였다. 태극기 집회는 시청 앞에서부터 남대문까지 약 5만2천 평방미터에 가득 찼다. 실로 엄청 났다. 인원수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허나 언론에서는 광화문 광장 촛불시위자는 70만 명이라는 보도다. 그 넓이에 그 숫자가 상식적으로 가능한가. 애국집회도 200만 명은 터무니없이 과장됐다.

언론에서는 초기부터 애국 집회를 제대로 알리는 일에 무척 인색했다. 언론은 그 무슨 사태든, 있는 그대로 사실을 보도함이 원칙이다. 최순실 사태를 호도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녀의 자아도취적 행태는 말할 것도 없이 탐욕성 정신질환이라 부를 만하다.

허나 그간 사태의 추이를 보면, 촛불집회는 전문가집단에 의해 진행됐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태극기 집회에서 외치는 일단의 소리에 귀기울여보라. 이들은 촛불 집회의 발단이 허위, 조작, 선동언론에 의해 야기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번 사태는 부분적으로 지난날 허위 정보에, 히스테리성 광기의 시위였던, ‘광우병 사태’를 연상시킨다. 틀린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언론에서는 심층 취재를 통해, 사태의 프로세스에 대해 양측의 의견을 드러내도록, 반대 토론의 장을 충분히 열어줬어야 마땅하다. 허나 그런 토론의 장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광장에서는 서로 자기 쪽이 옳다는 주장만 편다.

이번 사태의 허위, 조작에 대한 이야기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소규모였던 태극기 집회의 규모는 그새 엄청나게 세를 불렸다. 순진한 시민들은 정권의 비리에 대해 강한 분노와 불만을 폭발시켰다. 그러나 일부 세력들은 지금 호기를 잡았다는 판단 하에, 동조하는 시민들의 분노의 파도를 타면서, 이런 분노를 사회적으로 폭발시키며 정당화하는데 열을 올렸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네트워크의 가동은 전교조나 민주노총, 언론노조 등의 조직적 가동으로, 착착 진행됐으리라. 사회 정의를 외치나 실은, 탐욕에 가득 찬 권력 중독자들은 사람들을 선동하는데 능숙하다. 증거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탄핵 결의를 서두른 점, 헌재를 압박하고, 특검의 속도전, 국회에서 매사를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정황을 보면, 일련의 맥락은 어렵지 않게 읽혀진다. 이번 비리 관련자들을 ‘악마화’시키는 극단적 처사들은 마치 혁명 전야의 분위기 같다.

촛불집회만이 민심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태극기 집회도 커다란 민심이다. 애국 집회를‘어리석은’ 보수 꼴통이나 하는 짓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진보를 자처하는 자들은 이기적이고, 매우 이념적이며, 치밀하고, 전술적이다. 보수는 대체로 비겁하다. 양측 다 뚜렷한 비전이 없긴 마찬가지다. : 노새의 일이 지나가기도 전에, 말의 일이 도래했다. 늘 그랬다. 우리는 모두 ‘큰 그림의 답’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시인 · 블레스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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