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기쁜 일은 해탈입니다. 마음 속 오래 자리 잡고 있었던 무거운 짐을 훌훌 털고 벗어버렸을 때 그 한가로운 심정 그 무엇에 비교하겠습니까. 거의 30년 가깝도록 마치 일제 식민지 백성처럼 무서운 순사의 눈초리를 의식하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마침내 해방의 희소식을 듣고 엉엉 울고 만 옛 어느 평범한 애국자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오직 힘의 논리의 희생양이 되어 언제나 이 어두운 가슴에 동이 트려나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문득 여명의 밝은 기운을 느끼고 뿌듯해하는 이 사람 이는 윤회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구도자의 미소가 될 것입니다.

절에 와서 복(福)을 빌고 무언가 좋은 일이 있기를 기대하는 소시민의 애틋한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부처님 법을 바로 만나서 이 인생이 건져지는 참사람으로 거듭나는 장부를 한껏 바라는 마음입니다.

처음 낸 마음이 물러섬 없이 줄곧 나아가면 마땅히 정각(正覺)에 이른다 하듯이 낙숫물이 굳센 바위를 뚫듯 불자다운 걸음걸이로 묵묵히 나아감에 지성이면 감천(感天)이듯 일이 성취됨을 믿어야겠지요. 옛 그리스 시대 많은 궤변론자들을 물리치고 소크라테스가 우뚝 섰듯이 나의 마음 속 갖가지 번뇌 망상의 마(魔)를 조복 받고 하늘의 구름 사이 밝은 해가 뵈듯 그런 날을 맞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하지 않겠습니까.

분별심 속에 작아보이던 나. 허나 공성(空性)을 감지하고 한 번 웃으니 별 것 아니더라 그것입니다. 미혹하면 중생이고 깨달으면 부처라 하는데 그 무서워 뵈던 사자의 형상이 알고 보니 황금사자인 바 이젠 가서 어루만지기도 하나니 이것이 각자(覺者)의 묘(妙)가 아니리오. 참으로 눈 뜬 현자(賢者)에겐 역시 세상이 살만한 것 같습니다.

선(禪)은 부처님 마음이요 언어를 떠난 자비일진대 하늘의 진월(眞月) 아닌 물속에 뜬 달이 그림자인줄 모르고 아무리 건지려 해봐야 원숭이처럼 스스로 속아 되지 않을 것, 이는 사실입니다. 진실한 뜻을 외면하고 언제까지나 허물에 놀아나는 철부지는 진정 참다운 불자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바보처럼 허상에 묶여 마음고생하고 말 잘 하는 앵무새처럼 청산유수의 언변에 떨어지는 우리 불자제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에 눈 뜬 의젓한 우리 절 식구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그럴듯한 약장수처럼 떠들거나 휘황찬란한 광고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다움을 지키어 언제나 여유로운 자아를 노래합시다. 추운 겨울을 난 풀이 더욱 생명력이 강하고 뜨거운 용광로를 거친 쇠가 더욱 굳듯이, 어려운 역경을 헤치고 마음 속 봄을 맞은 이는 분명 주위에 희망이 될 것입니다.

절공부 하는 이라면 힘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주인공을 믿고 감내하여 이를 극복해내려는 마음이 꼭 있어야겠지요.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 하는데 작은 냄비에 물은 일찍 끓지만 빨리 식어버리듯 우리도 원력을 지니고 자기의 모든 숙업(宿業)을 녹여서 부처님처럼 자재로울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옳을 듯합니다.

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 시저가 외쳤듯 나 스스로도 갖가지 수행에 장애가 되는 마군(魔軍)과 겨루어 이겨내고서야 비로소 일 없는 개선장군처럼 세상의 등불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평상심이 도(道)라 하듯 ‘너는 누구인가?’ 묻거든 그저 소박하게 웃고 차나 한 잔 권하는 것이 어울리겠지요.

부처님 법 속에 언제나 아름답게 세상과 함께 한 송이 숨은 꽃처럼 주위에 맑은 향기를 전하는 고운 삶이 되고 싶습니다.

- 불자 자대행(慈大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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