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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어른들
2016년 12월 07일 (수) 08:06:55 박병기 buddhismjournal@daum.net
지난 주말에도 여전히 광화문 광장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에 헌법질서의 위기를 초래한 대통령 퇴진을 열망하는 분노의 마음들이 모여들었다. 벌써 여러 번에 걸쳐 마음을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생각되는 데도, 여
   
전히 ‘나는 전혀 죄가 없고 굳이 죄가 있다면 주변 사람 관리를 잘못한 것 정도’라고 되뇌는 대통령의 표정 없는 얼굴이 빚어내는 분노가 그 함성의 원천이다.

그런데 그런 분노에 기름을 붓는, 이른바 우리 사회 지도층이나 어른들의 발언들이 연일 끊일 줄 모르고 등장하고 있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거나, 4%의 지지율에도 100만이 모였다 해도 나머지 4900만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느냐고 외계인 같은 말을 하거나, 더 나아가 최근에는 광화문에서 북한의 아리랑 축제 같은 광기를 느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하나같이 이 사회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인사들이 한 말이라는데, 정말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어 찾아보기까지 하다가 이내 부질없는 짓 같아 포기하기도 했다.

민주주의, 특히 우리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사태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현상이기도 하다.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시각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각각의 시각이 광장에 모여 표출되고 충돌하면서 보다 나은 관점을 향해 진전하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의견들이 모아지는 과정은 몇 가지 전제를 지녀야만 한다.

우선 각자의 의견이 편견이나 비논리성을 극복하고 마련된 최소한의 객관성을 갖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모든 의견에 평등한 지위를 보장하면서도 그것이 모아지는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마지막은 항상 잠정적인 결론만이 가능할 뿐이라는 겸허한 자세를 견지하면서 보다 나은 결론, 또는 진리를 지향하는 열망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잘 표현해낼 수 있는 개념이 바로 화쟁(和諍), 즉 쟁(諍)의 과정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하는 잠정적인 화(和)의 추구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직접 민주주의가 아닌 대의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국민의 뜻을 대신 전하는 국회의원의 역할과 함께 각 분야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사회의 흐름을 읽고 방향을 제시하는 여론선도자(opinion leader)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 후자 속에는 우리 전통 속에서 형성되어 전해지고 있는 ‘어른’이 포함된다. 사회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워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지혜와 경륜, 도덕성을 갖춘 어른의 한 말씀은 가뭄의 단비처럼 다가올 수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물론 그 분들의 말씀이라고 해도 논리학에서 말하는 ‘권위 의존에의 오류’, 즉 권위 있는 사람들의 말이라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성철이나 법정, 김수환 같은 종교지도자들이 보여주었던 사례에서처럼, 이런 오류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한 줄기 샘물 같은 일갈(一喝)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어떤가? 젊음의 한때 국가의 명령으로 베트남에 참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웠다거나, 각자의 생존 영역 속에서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그 분들의 삶을 현재 기준만으로 평가하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그 분들 또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시민이라는 점에서 왜 이렇게 대다수의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촛불을 켜고자 하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문열 같은 문단의 원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젊은 날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을 조금이나마 간직하고 있다면, 나처럼 한때 그의 《젊은 날의 초상》에 흠뻑 빠져들었던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보여주는, 진짜 어른으로 한 말씀 한 말씀 조심스러웠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는 늦가을이다. 이 늦가을이 다 저물기 전에 광장에 끊이지 않고 불타오르는 촛불과 함성이 우리의 미래와 희망을 열어가는 디딤돌로 자리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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