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에 이 글을 쓰고, 이제 찬바람 맞으며 뒷이야기를 쓴다. 타고난 게으름을 자책하면서......

처음 『동주집(東州集)』을 번역할 때는 비록 관심은 있어도 자세히 찾아볼 시간이 없었다. 『동주집』 번역을 마치고, 나름 동주시 선집을 내볼 요량으로 다시 뒤적이다가 「언기 선사가 안부를 물은 절구에 답하다[酬彥機師寄問絶句]」란 시를 주목하게 되었다.

한 해 내내 바리때는 구름산에 머물고 經年缾鉢住雲山
긴 여름 선방엔 일마다 한가롭네 長夏禪扉事事閒
돌길은 다만 흐르는 물 따라 돌아가고 巖逕只隨流水轉
사미는 바로 저녁 해 두르며 돌아가네 沙彌正帶夕陽還

구절 하나하나가 모두 의문이고 고민이었다. ‘주운산(住雲山)’을 ‘구름산에 머문다’고 풀긴 했지만, ‘구름이 머무는 산’이라고 해야 하는 건 아닌지, 혹은 고유명사로 주운산이라는 산이 실재하는 것은 아닌지..... 이러지러 찾아보고 뒤적이며 시간을 보냈다. 특히 두 번째 구절의 ‘사사한(事事閒)’은 여러모로 시간과 힘을 들이게 하였다. 뜻은 ‘일마다 한가롭다’로 매우 단순해 보였지만, 나의 지나친 호기심 때문일까.... 이 구절은 꼭 화엄법계(華嚴法界)의 사사무애(事事無碍)를 칠언시에 맞춰 풀이한 것 같았다. 언기 선사의 한가로운 산중모습을 사사무애의 경계와 겹쳐 그린 것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동주옹이 워낙 중의적 표현에 능숙한 터라 내 호기심은 마치 사실처럼 여기게 만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동주옹이 평소에 화엄사상에 조예가 깊어서 이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거나, 아니면 두 분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던 중에 사사무애라는 말이 나왔고 이 말이 동주옹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더구나 동주옹은 편양당과의 인연을 매우 큰 것이었다고 술회하고 있지 않았던가. 동주옹은 「편양자 언기 선사의 시문집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거사(동주옹)는 편양자와 큰 인연이 있었으니, 불교의 계를 맺은 게 지극히 깊고 두터웠다.[居士與鞭羊子有大因緣, 結空門契至深厚也.]”

‘결공문계(結空門契)’는 불교의 계에 들어가거나, 불교계 인사와 결사(結社)를 맺었다는 말이다. 이런 계나 결사는 유래가 깊다. 적어도 동진(東晉)의 혜원(慧遠, 332~414)이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서 백련결사(白蓮結社)를 맺은 이래 많은 결사가 있었고, 그런 결사에는 불자들만이 아니라 유학자나 도사들도 많이 참여하였다. 혜원 법사가 도연명(陶淵明), 육수정(陸修靜)과 우정을 나눈 호계삼소(虎溪三笑)의 고사는 유ㆍ불ㆍ도 삼교의 교류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어 끊임없이 회자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조선이었다. 불교에 대한 터무니없는 박해와 차별이 유학자와 승려의 교류를 이상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런 시대에 전주 이씨 조선 왕가의 후손이며, 삼대가 동시에 청요직(淸要職)에 있던 명문가문에서, 그것도 차기 대제학은 따 놓은 당상으로 여겨지던 동주옹이 불교계의 결사에 참여한다?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아니다.
물론 이 경우 계(契)를 단순한 모임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문장 전체의 의미가 매우 분명하다. 분명 동주옹은 불교, 특히 편양당이 주도하는 어떤 계나 결사에 참여하였다고 보아야만 한다. 단순히 몇 번 만났거나, 그저 알고지내는 정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아! 내가 영변에 유배되어 있을 때, 편양자와 더불어 섣달그믐의 일에 대해 논하며 자못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편양자는 이미 알게 되었는데, 돌아보니 알지 못했던 자는 여전히 옛날과 다름이 없다.[嗟乎! 居士在西土, 與鞭羊子論臘月晦日事, 葛藤頗煩. 今鞭羊子已知之矣, 顧不及知者依舊.]”

섣달그믐의 일이 무엇이길래 그토록 많은 대화가 오고갔을까? 더구나 죽은 자는 알고 산 자는 모른다는데.....도대체 무슨 말인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뒤적일 곳을 뒤적여본다만 알 수 없기는 나도 산 자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내게서 이 문제는 확실히 죽고 살고의 문제는 아니다. 번역자의 입장에서 내 문제는 얼마만큼이나 사실에 다가갈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두 분이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마치 왕창 찢겨나간 한 모퉁이 종이 조각을 들고 두루마리 전체를 그리려는 사람처럼, 시 한 구절을 들고 두 분이 나누었을 이야기를 찾아보고 추론해 보는 것이다. 사실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오늘도 인터넷을 뒤지고 도서관을 드나드는 것이다.

이참에 소망해 본다. 제대로 된 한국불교인명사전이 나오기를. 그간 고전문집을 번역하면서 불교쪽 자료 중에 가장 목말랐던 게 한국불교인명사전이다. 개인 차원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학계나 교계 차원에서 제대로 만든 사전 말이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승려들의 이름을 접했다. 대개 한 글자만 쓰여 있다. 성사(性師)나 흥장로(興長老)처럼.... 성사는 각성(覺性) 대사(大師)나 다른 누구, 흥장로는 법흥(法興) 법사(法師)나 다른 어떤 사람일 것이다. 또한 각성이나 법흥이란 법명을 가진 승려도 많을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누구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번역자는 찾고 또 찾는다. 이럴 때 불교인명사전이 있으면......

한 가지 제안을 해 본다. 역경원이나 기타 해당 기관에 불교인명사전편찬 전문팀을 만들어 각 대학과 연구소, 개인 연구자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연구나 독서 중에, 불교 인명을 접하면 그 구절을 보내줄 것을 부탁하고, 모인 자료를 분류하고 분석해서 먼저 자료집을 내는 것이다. 그 자료집에 대해 여러 연구자들의 첨삭과 교정이 가해지다 보면 얼마간의 사전과 흡사한 윤곽이 잡힐 것이다. 내가 알기로 영국의 롱맨 사전은 이렇게 지원자들이 자발적으로 보낸 단어나 구절의 용례나 표현을 바탕으로 사전을 만들고 수정해 간다. 불교도 이런 편찬기구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작업을 해 나간다면 학자나 번역가는 물론, 많은 문화 예술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의 학문을 넓히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야말로 한국불교를 크게 진흥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한다.

-철학박사 ·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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