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을 둘러싼 움직임이 퍽 활발발하다. 페미니즘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또는 방법론과 강도에 대한 분분한 의견들이 여러 층위에서 표출되고 있다. 페미니즘(feminism)은 여성과 남성의 권리 및 기회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운동과 이론을 뜻한다. 현재 쏟아지고 있는 ‘목소리’들이 찬·반·양비 어떤 내용을 말하든, 페미니즘이 공론의 장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유의미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차제에 ‘샤카디타코리아’가 내놓은 《불교 페미니즘과 리더십》은 시의적절하고도 의미 있는 책이다. 사실 불교계 전반에 깔려있는 남녀차별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여성은 성불할 수 없다는 ‘여인불성불(女人不成佛)’ 사상, 여성 승려에게 요구되는 ‘비구니 팔경법’ 등은 남녀차별의 딱지를 붙이기 안성맞춤인, 오랜 논란의 대상이었다.

불교 안의 불평등 문제의 핵심은 경전과 교리를 내세워 차별을 당연시하는 것, 그리고 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데 있다. 종교 밖의 페미니즘이 차별을 당연시한 수많은 ‘상식’을 깨뜨리며 발전했듯이, 종교 안에서도 먼저 여성이 불평등과 억압적 성차별을 야기하는 ‘종교적 상식’과 맞설 필요가 있다. 이 책 《불교 페미니즘과 리더십》은 차별과 권위적인 위계 속에서 여성 불교인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조명한다.

이 책은 제12차, 제13차, 제14차 샤카디타 인터내셔널 세계불교여성대회에서 발표된 논문 가운데 37편을 추린 것이다. 제1부 ‘세계의 비구니 승가’에서는 인도, 인도네시아, 네팔, 티베트, 대만, 일본 등지의 모습을 살핀다. 동아시아에서 비구니 승단이 조직된 시기가 겨우 1998년에 이르러서였다는 사실을 비롯해 비구니가 없는 아시아 불교국가들과 서구 불교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구니 승단 복원 운동을 자세히 밝힌다.

제2부 ‘붓다의 딸을 위한 여성 리더십’에서는 여성주의의 시각에서 불교를 재해석하고, 암묵적으로 용인되어 온 성차별적 담론이 경전의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몇몇 논문은 초기불교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여성 수행자의 삶을 조명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제시한다.

제3부 ‘현대사회의 문제와 자비의 고요한 실천’은 여성 불자들의 실제 활약상을 소개한다. 이 책의 부제인 ‘불교 여성, 자비와 지혜로 세계의 중심에 서다’에서 엿볼 수 있듯 여성 불교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기꺼이 드러내고 있다. 성적 소수자와 재소자, 이민여성, 장애인, 에이즈 환자, 동물 학대 등 무관심과 차별 속에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다양하고 폭 넓은 권익 활동을 만날 수 있다.

페미니즘은 비단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의 불편부당함을 고착시키고 있는 틀에 관한 문제다. 종교 또는 젠더에 관한 안일한 인식을 비틀어 보는 시도, 이 책이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우리가 불교의 미래를 상상한다면, 여성 출가자, 특히 비구니 스님들이 건재하는 미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불교의 미래는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권력, 위신, 재산 등을 축적하는 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용하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스님들에 의해 지배되어 버릴 것이다. 가부장적인 스님의 법당 안에서는 그 어떤 긍정의 힘도, 열정도, 새로움도, 가능성 있는 미래의 창조도 없다.” -본문 256쪽, 비구 수자토 ‘상상 속의 여성 출가자들’ 중.

본각 외 34인 지음 | 샤카디타코리아 옮김 | 불광출판사 | 2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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