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만나기 어렵다지만
욕락 버리고 지혜롭게 거듭나
승속 떠난 진 불자 되어야

우리는 자유와 평등의 민주주의 국가 속에 살고 있다. 남의 인격을 존중하고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함께 일구어 나간다. 어떤 힘 있는 세력가의 의지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웃으면서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세상은 알게 모르게 차별적인 의식 가운데 서로 울고 웃고 하지만 부처님 세계는 너도 부처요 나도 부처인 동수정업(同修正業)의 한 마음이다. 우리의 천진면목은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이 없으나 우리가 지은 무명의 업식(業識) 때문에 잘못된 생각에 허덕이며 고(苦)를 받을 따름이다. 세간의 편견과 선입견으로 마음속에 각인(刻印)되어 얼마나 오랜 세월을 괴로워했던가. 이 사바세계의 갖가지 마음고생이 아미타불을 친견(親見)해야사 비로소 끝날 것 오늘도 부지런히 정진의 길이다.

부처님 자안(慈眼)으로 보건대 우리 모두는 완성된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유아독존(唯我獨尊)의 그릇이겠지만 중생인 우리들은 어찌하여 그리도 채워지지 않은 허기진 구석들을 지니며 살고 있는가. 학력과 재산, 용모, 출신 등 모든 면에서 남보다 나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인연에 의해 부여받은 허망한 일시적인 삶의 조건은 끝없이 우리의 의식에 주인노릇을 하면서 자신을 작게 만든다.

불법 만나기가 어렵다 하는데 이 법은 이 모두 일체가 연기(緣起)이며 공(空)이며 자성이 없는 것임을 일깨우고 있다. 옛 분이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을 바로 보고 가야할 길만을 가라’ 했는데 과연 귀의자로서의 우리들이라면 이 꿈 속의 분별에서 참된 자아를 찾고 허허 웃으면서 다소 지혜로운 이들로 거듭나야 옳지 않겠는가. 어쨌든 부처님 법이 세간의 욕락을 버리고 출가하여 참된 깨달음을 얻고자 함이 크다면 우리가 불자로서 아닌 것은 과감하게 졸업할 수 있는 큰 마음의 장부가 되어야 어울리겠다.

이(理)와 사(事)의 양면에서 바보같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거듭되는 윤회의 수레바퀴 같은 사고(思考)를 여의고 더 큰 세상으로 뛰어보자 한다. 여러 가지 모순이 있지만 다 차지하고 오로지 불철주야 일념(一念)으로 도(道)에 매진하는 선객(禪客)처럼 우리 불제자들은 세상에서 나서 무언가 한 소식을 얻고 마음의 빛을 얻어야 진정 보배로운 자신감 속에 스스로를 초출(超出)하여 대아(大我)로 성숙될 수가 있겠다.

우리 주위에 과연 누가 공부를 이루어 마치 조개 속 진주처럼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는가? 이는 승속(僧俗)이 따로 없는 것이다. 외국의 큰 재벌이 소리 내지 않고 허름한 옷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살 듯, 허나 이 분의 마음은 그 얼마나 크고 넓겠는가. 우리들도 참 공부에 힘써 득력(得力)을 해야 이처럼 세상 멋지고 한가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요즈음의 말법(末法)에 상(相)없이 샘이 없는 무루복(無漏福)을 지향하기도 어렵다. 눈과 귀에 떨어져 더욱 일차원적이 되는 오늘날 그 어찌 진(眞) 불자가 귀하지 않으리오. 그러나 신심(信心)을 잃지 않고 조용히 인생의 바른 길을 기약하는 우리들이 되어보자 한다. 출세간의 외길이 크지 않을진대 어떻게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고 절에서 평생을 보내겠는가. 한 생(生)을 바쳐 여러 생을 이익 보는 자아를 기약하고자 한다. 개천에서 용 난다고 나의 마음이 열려 세상의 등대가 되어야만 구족(九族)이 승천(昇天)하는 참 인간의 보배가 될 수 있을진대 공연히 시줏밥이나 축내고 소가 되는 어리석음은 자업자득(自業自得), 그 누구를 탓하리오.

하늘의 별이라도 딸 듯 대장부 살림살이 온 누리의 빛나는 성불(成佛)의 고귀한 내일을 바라며 자성불(自性佛) 깨끗하게 자족(自足)하는 마음이다.

-(재)선학원 공주 심우정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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