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님이 있다. 대학에서 상벌징계위원 소임을 맡았던 스님은 학생들을 징계할 때 학칙에서 정한 방식보다는 불교적 방식으로 징계할 것을 요구하곤 했다. 학교기물을 파손한 학생에게 학적부에 기록이 남는 정학 처분보다 한 주 동안 108배를 시켜 자신을 돌아보게 하자고도 했다. 부처님 정재(淨財)로 설립한 대학이니만큼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이유에서다. 인권 관련 기구 위원을 지내기도 한 스님은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 인권은 곧 불성”이라며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곧 불성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당당히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한 교수가 있다. 대학 총장이 오랜 꿈이었던 교수는 총장 선출 과정에서 구설수에 휘말렸다. 대학 설립자가 법인 이사회를 움직여 교수를 총장으로 낙점했으나 설립자의 학교 운영 개입 논란과 자신의 논문 표절 문제가 불거져 어려움을 겪었다. 교수, 학생, 교직원 등 학내 구성원들은 교수에게 격하게 반발했다. 총장에 취임한 뒤 한 학생은 목숨을 건 단식을 하며 사퇴를 요구했다. 교수가 취임한 지 1년 2개월 뒤 대학 당국은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한 간부 학생을 교육적 차원에서 훈육한다”며 단식 학생을 무기정학시켰다. 징계 사유는 기물 파손. 징계안 최종 결제권자는 총장이 된 교수였다.

학생을 대하는, 극명하게 상반된 입장의 두 주인공은 사실 한 사람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지낸 동국대학교 총장 보광 스님이다. 상반된 모습이 같은 사람일까 싶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동국대학교는 지난 5일 국가인권위원회와 ‘인권교육·연구 중심대학 지정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성호 국가인권위 위원장은 “동국대는 인권 친화적 제도와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고 추켜세웠고, 총장 보광 스님은 “동국대를 인권교육과 연구의 메카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학내 구성원은 그다지 많은 거 같지 않다.

조계종 수뇌부가 총장 선거에 관여하면서부터 동국대학교는 혼란을 거듭해왔고, 학내 구성원의 인권은 짓밟혀 왔다.

김건중 전 부총학생회장은 물론 총장 퇴진을 요구한 한만수 교수협의회장과 동조 단식한 김윤길 교직원도 징계됐다. 자신을 희화화했다는 이유로 학생 대표 4인은 총장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 당했고, 타종교인인 총학생회장은 불교대학을 망하게 하려고 선거에 나왔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표절 의혹이 있는 총장 앞으로 연구윤리 준수 서약서를 의무적으로 작성해 제출해야 하는 대학원생들은 학문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 받고 있다.

“동국대학교를 인권교육과 연구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보광 스님의 말이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는 건 이처럼 학내 구성원들을 향한 억압 내지 탄압이 개선되거나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권은 인간답게 살 모든 권리이다. 국가와 강자의 폭압과 강제는 물론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나 유린이 발생했을 때 항거하고 보장을 요구할 권리이다. 학생들에게 인권은 학교 당국의 부당한 조치에 대항하고 시정을 요구할 권리이기도 하다.

인권 보호는 말로 하는 게 아니다. 생각과 실천이 일치하는 것이어야 한다. 보광 스님이 학칙에서 정한 엄격한 징계 대신 참회(108배)라는 불교적 징계를 제안하고, “인권은 곧 불성”이라며 당당히 소신을 밝히던 당시로 돌아가 진지하게 대학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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