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각 스님.

1. 정법을 베푸는 법보시

법보시란 법(法) 곧 진리를 베푸는 일입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 바르고 착한 마음이 되게 하며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깨우쳐주는 것이 법보시 입니다. 세상에 가르침(진리)도 많지만 우리는 반드시 정법(正法)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행복과 대해탈의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정신적인 괴로움과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갖고 살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왜 힘들고 괴로운 것일까? 그 주요 원인은 불안의 원인이 무엇이며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이를 극복하고 이겨내는 길을 몰라서 그러합니다. 이것을 깨우쳐 주는 것이 부처님의 법을 일러주는 법보시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물질(재물)로 남을 도와주는 것보다는 진리(가르침)를 베풀어야 행복하고 해탈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금강경》에 보면 “선남자 선여인이 칠보로서 저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차도록 많은 보물로서 보시(베푸는)하는 것보다 이경 가운데에 사구게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다른 사람을 위해 베풀어(설법)준다면 이 복덕이 앞서 큰 보물로서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준 복덕보다 아주 수승하다”고 하셨습니다.

물질적인 보시는 한없이 많은 세계 모든 중생에게 평생동안 베풀어도 금강경의 게송 하나를 알아듣게 설게 주는 것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수행인에게 있어 ‘유위복(有爲福)은 삼생에 원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유위복은 물질적 보시이며 한계가 있는 보시입니다. 사람의 몸을 무병장수하고 부귀영화 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몸을 도와주는 것은 이 목숨이 다하면 그만입니다. 세세생생 해탈의 길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복 짓느라 한생을 보내고 또 그 복을 받아쓰느라 또 한 생을 보내고 그 복이 다하면 다시 박복생활을 하여야 하니 수행에 전념해야 할 삼생(三生)을 헛되게 보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위복을 짓는 것은 해탈의 길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인생의 진리를 일깨워주는 정법의 보시는 영원한 생명력을 길러주고 무한한 행복과 영광을 안겨줍니다. 그래서 해탈과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 법보시의 복은 다함이 없습니다. 무위복입니다.

2. 보시를 잘 하는 법

그럼으로 우리는 정법을 베풀어야 합니다. 최고 무한한 가치를 지닌 정법을 베풀어야 합니다. 법보시를 잘 하면 한량없는 공덕을 쌓을 수 있습니다.

세상만사가 다 하나의 꿈입니다. '허공에 핀 환각의 꽃을 무어라 애써 붙들려 하는가' 라고 하셨습니다. 들어오고 나가고 옳고 그른 것을 한꺼번에 놓아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몸이나 세상만사가 다 무상합니다. 전부 변하고 없어집니다. 실체가 없습니다. 단지 사람의 감각작용(눈·귀·코·혀·몸)에 의하여 있는 듯이 보일 뿐입니다.

진실로 복 짓는 일 중에서 진정한 행복과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는 법보시의 복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함이 없는 무위의 큰 복을 짓고자 한다면 중생들에게 부처님 말씀(경전)을 알기 쉽게 풀어 설해주고 불경을 비롯한 좋은 불교 진리 책을 베풀어 스스로 큰 공덕에 머물도록 해야 합니다.그래서 정법을 익혀서 참되게 잘 살 수 있는 길을 바르게 제시해주는 책, 마음의 눈을 뜰 수 있도록 하는 법문을 두루두루 보시한다면 그 공덕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진리의 가르침을 설해주는 보시를 행하고 보면 설법하는 자신도 스스로 정법을 깨우칠 수 있게 됩니다. 이 글을 읽는 불자 여러분, 정법을 잘 익혀서 아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주십시오. 그러면 누구보다도 먼저 베풀어주는 자신이 큰 공덕을 일구게 됩니다.

3. 정법을 믿으면 복덕이 무량하다.

《금강경》에서는 경전의 내용을 믿고 정법을 믿는 공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하셨습니다.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아침에 항하의 모래알 수만큼의 몸(육체)을 보시하고 낮과 저녁때에도 또 그와 같이 목숨보시를 하여 하루 세 체례씩 백천만겁동안 보시를 하였다면 그 복덕이 어떻겠느냐. 그야말로 무량하기 그지없느니라. 하지만 이보다 정법의 경전인 위없는 법문 즉 금강경 같은 대승경전 설함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며 거역하지 않는 사람은 저보다 아주 큰 복덕을 얻게 되느니라.”

그러니까 부처님의 진리를 알기 쉽게 잘 설해주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확실하게 믿게 하는 것은 한량없는 공덕이 되고 결국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진리의 말씀을 듣고 보고 참으로 그렇구나 하는 확신이 생겨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무량한 복덕이 있다고 하니까 읽고 사경하고 익히는 것은 큰 복덕을 이룰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복덕이 탐나서 읽는 것. 복덕 얻고자 하는 조건으로 하는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행복과는 관계없이 일체 중생을 위하여 수행해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나의 욕심을 버리고 대승의 마음을 내며 정법과 함께 한다면 크게 깨달아 확고한 믿음을 낼 수 있게 되며 중생제도에 나설 수 있게 됩니다. 꼭 명심하십시오. 법보시는 부처님의 은혜를 아주 잘 갚는 방법이며 부처님의 정법을 잘 받들어 모시는 방법입니다.

인생살이가 모두 실체가 없고 가짜인데 무어라 매달려 살 것입니까. 정법을 보고 듣고 아하, 그렇구나 하고 확신이 서야 합니다. 그리고 아는 대로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어 자타일시성불도하기를 축원하시기 바랍니다. 

-(재)선학원 금산 광법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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