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등 스님이 이른 바 ‘선학원 정상화 추진위원장’ 자리에서 사퇴했다. 지난 7월 1일 정상화추진위 회의에서 건강을 이유로 사퇴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보도된 그가 <불교닷컴>과의 통화에서는 “원력이 부족해서 손을 놓기로 했다. 앞으로 쉬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건강 문제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불교닷컴>은 사퇴 이유를 두 가지로 추측한다. 하나는 ‘선학원 2013. 4. 11 이사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지만 서울중앙지법이 이 가처분에 대해 각하 및 기각을 판결하면서 선학원정상화추진위 활동에 제약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염화미소법을 기반으로 한 총무원장 선출제도 개선안이 성안돼 중앙종회에 제출된 상황에서 이를 제대로 다뤄보지도 않고 이월시킨 데 큰 실망을 느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중앙종회를 장악한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염화미소법’을 정치적으로 이용만 하고 실제 이를 제도화하지 않음으로써 서로간의 신뢰가 깨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른 바 ‘선학원정상화추진위’는 아예 탄생해서는 안 될 조직이었다. 재단과 분원을 이간질시켜 선학원 이사회를 장악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우리는 그간 추진위가 조계종-선학원간의 갈등을 증폭시킬 뿐 문제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해체를 강력히 요구했었다. 뿐만 아니라 실권(實權)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허울뿐이어서 우리는 대화의 상대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2014년 7월 17일 선학원 이사장 법진 스님이 그 이틀 전 당시 상임집행위원장이었던 정만 스님의 공개토론회 제안에 대해 “총무원장 스님이 직접 나오라”고 역(逆) 제안을 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 우리가 추진위와 뭔가를 합의한다고 하더라도 뒤에 종회와 총무원장이 버티고 있어서 결과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두 번이나 경험했던 학습효과다.

그런데도 법등 스님은 우리 분원장들에 대한 충동질을 멈추지 않았다. 재단과 분원장 쌍방에 상처만 남길 뿐 결국 되지도 않을 일을 하느라고 헛수고만 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재단에 크나큰 해악(害惡)을 끼친 그가 추진위원장을 이제라도 그만두어서 여간 다행이 아니다. 비록 한참 늦었지만 자신을 위해서나 불교계를 위해서나 이제야 제대로 된 판단을 했다고 본다.

애당초부터 ‘선학원 정상화를 위한 추진위원회’라는 명칭을 써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비정상’이 ‘정상’을 정상화시키겠다는 간판을 내걸다니! 어디가 ‘정상’인지, 어디가 ‘비정상’인지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그런 결과를 초래한 것 아닌가. 예견된 일이었다. 처음부터 ‘조계종-선학원 관계 정상화’를 위한 자리였어야 했다. 그랬으면 내용이 달라졌을 거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는 법이니까.

어쨌거나 법등 스님은 갔다. 종회의장과 호계원장을 역임한 거물급 인물임에도 분란만 일으키고 아무런 성과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거물급도 실패한 일을 애송이에게 맡길 수는 없을 것이니까 이제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총무원장 스님뿐이다. 내가 무턱대고 언급한 게 아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나서라는 뜻이다.

조계종-선학원 갈등의 원인을 되짚어보면 그 원인 제공자는 바로 자승 스님이다. <법인관리법>의 전신인 <법인법> 제정에 있어서 자승 스님의 의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자승 스님은 제33대 총무원장 당선 직후인 2009년 10월 22일 13대 종책을 발표하였는데 ‘불교 관련법과 제도정비’ 분야에 이 ‘법인법 제정’을 넣었다. 바로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조계종에서 법인을 관리해야 한다는 움직임은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 법률적 부당성과 실효성 탓에 선배 스님들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승 스님이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다. 당연히 법인법 제정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종책 발표 후 1년 5개월이나 지난 2011년 3월에 열린 제186회 조계종 중앙종회 임시회에 가서야 종법 제개정 안건 가운데 하나로 상정되었지만 차기로 이월되었고, 그해 9월에 개회된 제187회 임시회에서도 이월되었다. 이월에 이월을 거듭하던 법인법 제정안은 2013년 3월 20일 열린 제193회 임시회에서 통과되었다. 자승 스님이 <법인법> 통과를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다. 당시 <불교저널> 김종만 편집장이 칼럼을 통해 지적한 대로 “상임분과위원장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협조를 당부했고 종회 인사말을 통해서도 법인법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꼭 통과해줄 것을 부탁”하는 노력 끝에 성사된 것이었다. 그가 법인법 제정을 들고 나온 지 3년 5개월만이었다.

우리는 그간 조계종의 법인법 제정 움직임과 관련하여 “선학원과 대각회 관련 예외조항 없이 법인법이 통과 된다면 1930년대 이래 여러 선각자 스님들에 의해 설립 유지되어 왔던 재단법인 선학원의 전통과 독자성은 유명무실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1921년에 출범하였고 1934년에 재단법인이 된 선학원을 1962년에 탄생한 조계종이 관장하려 드는 것은 상식에도 어긋나고 소급입법을 금지한 헌법의 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이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한결같이 지니고 있었다.

또 법인법 제정이 “지난 2002년에 있었던 조계종-선학원 합의 정신에 정면 배치되는 사안”으로서 “이는 종단과 재단간의 신뢰성에 관한 문제이고, 지금에 와서 이를 위배하는 것이 자칫 심각한 갈등으로 비화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종회는 ‘(재)선학원 종단환수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만들기도 하고 나중에 ‘선학원 정상화를 위한 특별법’으로 이름이 바뀐 선학원 주권환수를 위한 특별법을 만들기도 했다. 이 특별법에 따라 ‘선학원 주권환수 추진위원회’를 150인 이상 200인 이하 규모로 구성한다고 요란을 떨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결국엔 ‘선학원 정상화를 위한 추진위원회’라는 황당한 이름의 기구를 만들었다. 그마저도 실패하자 이번에는 소위 ‘선미모’라는, 조계종에서 행세하고 싶어 하는 재단 내부의 몇몇 불만세력과 전국비구니회를 이용하여 분란을 또 일으키고 있다.

그런 조직이나 기구의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바로 총무원장 스님이라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자승 스님은 처음에 중앙종회 뒤에 숨었다가 그 뒤에는 법등 스님 뒤에 숨어 있었다. 또 선미모의 막후에도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일이 잘 풀리면 자신의 공로고, 일이 뜻대로 안 되면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릴 수 있으니까 자승 스님으로서는 꽃놀이패를 쥐고 있는 셈이다.

자승 스님이 조계종-선학원 갈등의 씨앗을 뿌린지 만 7년이 다 돼 간다. 야당 당수에서 추진위원장으로, ‘염화미소법’ 제안자로 변신했던 법등 스님도 이젠 무대 뒤로 사라졌다. 비구니회가 왜 저러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방패막이 역할을 할 수도 없을 것이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자승 스님은 조계종-선학원 갈등의 기획자이자 동시에 실행자이다. 그러니 대화든 싸움이든 직접 전면에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 자신이 뿌린 씨앗, 자신이 거두어야 한다. 비겁한 모습을 더 이상 보이지 말기 바란다.

 -본지 편집인 · 재단법인 선학원 교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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