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디즘(Buddhism)이라는 용어는 유럽이 인도를 점령해가면서 저들이 만들어낸 19세기의 신조어이다. 영국이 이 용어를 만들었을 때는 인도의 특히 실론섬 지역에 팔리(pāli)어로 전승된 소위 남전(南傳) 아함부 경
전을 염두에 두었다. 그러니 엄밀하게 말하면 팔리어로 기록된 니까야(Nikāya)의 전승만이 부디즘(Buddhism)이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는 ‘불교’라는 이름 아래에 서로 모순될 정도로도 보이는 다양한 교리들이 공존한다. ‘불교들’이라는 복수 용어를 굳이 쓰지는 않았어도, 이런 양상을 인도와 중국과 티베트와 월남과 신라와 일본의 학승들은 일찍이 감지했다. 그리하여 저들은 교상(敎相)을 판석(判釋)했다. 즉, 다양한 부처(佛)의 교설(敎)의 양상(相)들을 분류하고 해석했던 것이다. 또 경전을 주석하고 강의하는 과정에서 ‘교체심천(敎體深淺)’이니 ‘능전교체(能詮敎體)’이니 하는 대목을 만들어 이 문제를 이론적으로 섬세하게 논의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안목도 교정되어가면서, 요즈음은 영어로 쓰인 책에 ‘부디즘스(Buddhisms)’의 복수 표기도 더러 보인다.

2.
‘불교(佛敎)’라는 한자어가 널리 유통되게 된 것은 일본의 영향이다. 저들은 명치유신을 계기로 유럽과 교통하면서 ‘부디즘(Buddhism)’과 짝 지워 ‘붓교(佛敎)’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중국의 한자에 영향을 받았던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석교(釋敎)’라고 써왔다. 풀어 말하면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다.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이니 ‘정원석교록(貞元釋敎錄)’이니 하는 대장경 목록 명칭에 들어있는 ‘석교’가 그것이다. 조선 유생들이 불교 행사 폐지를 반대하면서 임금에게 올렸던 상소문 ‘간폐석교소(諫廢釋敎訴)’의 ‘석교’도 그렇다. 물론 불교(佛敎)이니, 도교(道敎)이니, 불도(佛道)니 하는 용어들이 석교(釋敎)와 함께 혼용되었다.

이런 ‘석교’를 대상으로 학파에 따른 다양한 해석이 생기게 되었고, 그 결과 많은 문서들이 생산된다. 이렇게 된 원인은 ‘석교’ 자체에 내재된 다양성 내지는 다의성 때문인데, 이런 복잡한 문서들을 모아 분류하기 위해 고려의 의천 스님은 제종(諸宗)의 교장(敎藏)의 총목록을 새롭게 만들었다. 신편제종교장총록이 그것이다.

실로 불교는 다양하다. 대승과 소승이 다르고, 소승 중에서도 유부와 경량부 등이 다르고, 대승 중에서도 공종, 상종, 성종이 다르고, 교종과 선종이 다르고, 현교와 밀교가 다르다. 그런데 세월 속에서 우리나라는 성종과 선종 계통이 대세를 이루어갔다. 조선시대 불교의 탄압으로 이런 대세도 맥이 약해져갔지만, 임진왜란 이후에 선종의 후예들이 근근이 이어져온 전통을 부흥시켰다. ‘태고법통설을 만들어’ 승려들의 족보를 정비하여 남종선의 전통을 세워갔고, 여기에 현수법장-청량징관-규봉종밀-장수자선-진수정원으로 이어지는 성종 교리를 받아들였다. 승단의 계보로는 선종을 계승하면서, 그런 간화선 수행 위에 화엄 교학을 수용하고, 나아가 작법의례를 정비했다. 교육 커리큘럼인 강원 ‘이력과정’은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3.
300년 넘게 이런 전통이 이어져왔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33본사-말사 제도, 정토계열 및 법화 계열 교단 설립 등 일본적 요소가 혼입되기는 했지만, 기본 주류는 ‘하나의 선종 교단’이었다. 이런 단일 교단에 ‘분열’이 일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이다. 현재 있는 종단 중에서 ‘진각종’과 ‘진언종’, 법화계열종단(천태종, 대한법화종, 한국법화종, 영산법화종, 불입종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위에서 말한 ‘하나의 선종 교단’에서 갈라졌다. 조계와 태고가 갈라져 큰 분열이 일어났고, 그 둘에서 갈라지고 또 갈라져 수많은 종단이 생겼다. 승려의 족보를 대는 것으로 보나, 작법의례의 내용으로 보나, 일심(一心)을 교리의 정점으로 하는 것으로 보나, 각 종단 사이에 어떤 차이도 없다. 차이가 있다면 사는 모습 정도이다.

이상의 현실을 감안할 때에, 진각종과 법화계열은 독자적으로 발전해 가고, 여타의 종단들은 ‘일종정(一宗正) 다총무원장(多總務院長)’ 체제로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종단의 이름을 달리해 운영할 교판(敎判)도, 법통(法統)도, 종지(宗旨)도, 의례(儀禮)도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이다. 다만 그 동안 살아온 역사도 있고 그에 따르는 삶의 습과도 다르니, 재산권과 인사권 등 행정은 총무원장 또는 재단법인 대표를 두어 독립 운영하고, 불교의 교리와 이념만은 단일 종정 체제에서 순도를 높여가자는 것이다.

-연세대 철학과 교수 · 한국선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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