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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교·실참으로 질적 성장…중국불교 저력 느껴”
호북성 선종사찰 순례 ① - 홍화선사·자광선사
2016년 07월 08일 (금) 11:10:32 이창윤 기자 budjn2009@gmail.com
   
▲ 자광정사는 도심포교를 위해 홍화선사 방장 정자 스님이 새롭게 창건한 사찰이다. 중국 사찰의 가람배치를 따르지 않고 현대식으로 지었다.

우리나라는 선불교의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한 나라라고 한다. 선불교를 완성하고 우리나라에 선법을 전한 것은 중국불교였다. 하지만 청말 혼란기와 공산정권 수립 후 모택동의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중국불교는 철저히 파괴되고 면면히 이어오던 중국불교의 법맥과 수행 전통은 끊어졌다.

‘중국불교는 허리가 없다’는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중국불교를 답사하다 보면 각 사찰의 방장(우리나라로 치면 주지)이 대부분 장년의 젊은 스님들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대를 이어갈 스님들이 배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불교는 지금 화려한 비상을 꿈꾸고 있다. 국가적 지원 아래 외형적 성장뿐 아니라 교학, 실참 등 내용적인 면까지 기반을 착실히 다져가고 있다. 그 저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한중불교문화교류협회 초청으로 6월 23일부터 5박 6일간 부천 석왕사 주지 영담 스님, 고성 운흥사 주지 경담 스님, 중앙종회의원 이암 스님, 전 중앙종회 의원 종호 스님 등 스님 10명이 중국 호북성의 선종사찰을 순례했다. 호북성은 중국 선종의 4조 도신(道信, 580∼651) 스님과 5조 홍인(弘忍, 602~675) 스님이 동산법문(東山法門)을 개창하고 발전시켜 남종선을 태동시킨 터전이다.

6월 23일 오전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두 시간 반 만에 호북성의 성도 무한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도착한 곳은 호북성의 종교정책을 총괄하는 민종위 사무실. 순례단을 반갑게 맞은 유망춘(柳望春) 주임은 “호북성은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 스님이 수행한 유서 깊은 곳”이라며, “한중불교문화교류협회가 두 나라 불교문화 교류의 초석이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한·중불교문화교류회 회장 영담 스님은 “한중불교문화교류협회가 등소평의 개혁개방 조치 이후 끊어진 두 나라 불교계 교류를 복원하고 우호를 발전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며, “남종선이 태동한 역사 깊은 호북성에서 반갑게 맞아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무한에서 하룻밤을 묵은 순례단은 이튿날 오전 8시 숙소를 출발해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황석시 홍화선사(弘化禪寺)로 향했다.

황석시는 무한 동쪽에 있는 인구 200만 명의 지급시이다. 자급시는 성(省)과 현(縣)의 중간 행정단위이다. 홍화선사는 황석시 북쪽 철산구(鐵山區)에 위치한 동방산(東方山)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수백 개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순례단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뒤로 하고 지위(智偉) 스님과 꽃다발을 든 재가자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 동방산 홍화선사.

홍화선사는 당 헌종 원화 원년(806)년에 처음 세워진 유서 깊은 절이다. 마조 도일((馬祖 道一, 709~788)의 고족 제자인 덕총(德聰) 스님이 창건했다. 사찰명인 ‘홍화(弘化)’는 명 헌종 성화 2년(1466)에 황제가 내린 것이라 한다. 당에서 청대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번창한 홍화선사는 호북성 10대 사찰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사격이 대단했다고 한다. 순례단을 맞이하고 안내한 지위 스님에 따르면 한때 한국 스님이 이 절 주지로 있었다고도 한다.

구화산 지장왕보살로 추앙 받는 김교각 스님이나 중국 오백나한의 455번째 존자로 추앙받는 정중종의 개조 정중 무상(淨衆 無相, 684∼782) 선사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순례단은 대웅보전을 참배하고 오백나한상 중 스님의 상을 찾아 배알했다.

무상 스님은 4조 도신 스님이 창시하고 5조 홍인 스님이 발전시킨 동산법문을 계승한 스님이다. 중국 사천 지방에서 활동했다. 스님은 덕화가 크고 깊어 정중종(淨衆宗)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규봉 종밀(圭峯 宗密, 780~841)의 《중화전심지선문사자승습도(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에 스님의 법맥이 언급되어 있고, 송나라 때 편찬된 《송고승전(宋高僧傳)》, 명나라 때 편찬된 《신승전(神僧傳)》에 스님의 전기 실려 있었지만, 구체적인 법계와 행적은 돈황본 《역대법보기》가 발굴되면서 알려지게 됐다고 한다.

《역대법보기》와 《송고승전》 등에 따르면 스님의 속성은 김 씨이고 신라 왕족, 혹은 신라 왕자이다. 《역대법보기》에 실린 각 선사들의 사자상승(師資相承) 법계를 종합하면 스님의 법계는 사조 도신 → 오조 홍인 → 자주 지선(資州 智先) → 처적(處寂) → 정중 무상(淨衆無相)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수만 리 이국 땅 산사에서, 눈 푸른 납자로 치열하게 수행 정진했을 옛 스님의 자취가 중국불교에 면면히 남아있음을 확인하니 남다른 감회가 가슴 한 구석을 채웠다.

   
▲ 유리로 조성한 불상이 모셔진 정유리궁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 순례단.
   
▲ 불자들의 교육공간으로 쓰이는 대회의실.

홍화선사 참배를 마친 순례단은 10여 분 거리에 있는 동방산 기슭 자광선사(慈光禪寺)로 이동했다. 이곳은 홍화선사 방장이자 중국불교협회 부회장, 호북성불교협회 회장인 정자(正慈) 스님이 주석하는 사찰이다.

문화혁명으로 철저히 파괴된 후 새로 복원된 중국 절들은 대부분 비슷한 가람배치를 가지고 있다. 산문에 들어서서 사천왕전을 겸한 미륵전과 관음전 등을 거치면 대웅전에 이르게 되는데, 자광선사는 그런 중국 사찰의 가람배치를 철저히 깨뜨렸다. 중앙의 정유리궁(淨瑠璃宮)을 사이에 두고 좌우에 회의장과 접객실, 요사 등을 배치했다. 현대적 감각이 물씬 묻어나는 정유리궁 내부에는 유리와 청동으로 조성한 불상들이 봉안돼 있고, 수만 권의 불교서적을 비치한 도서관도 갖추고 있다. 유리궁 왼쪽 건물은 최신 설비를 갖춘 대회의장과 접객실 등이 마련돼 있다. 이 건물에서 중국불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힌다고 한다.

일행을 맞이한 정자 스님은 홍화선사를 중국불교의 문화유산으로 온전히 보존하고, 도심 대중 포교를 하기 위해 자광선사를 창건했다고 말했다.

“한국을 방문해 화엄사 등지에서 한국불교의 수행을 체험하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는 정자 스님은 “중국불교도 도심 포교에 나서 대중들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자 스님은 지난해 11월 세계 불교 인사들을 초청해 약사문화포럼을 개최하는 등 홍화선사와 자광선사를 약사도량중심으로 가꾸어 가고 있다. 외형적 성장에만 머물지 않고, 교육과 포교, 실참 등을 통해 질적 성장까지 추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화려하게 부활한 중국불교의 저력이 국가적 지원에만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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