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에서 우리 선학원 분원을 다니며 분탕질을 치고 있는 사람 가운데 단연 손꼽히는 인물은 법등 스님이다. 그가 서울에 출동했다는 소식이 들리는가 싶으면 어느새 대구에 있고, 경상돈가 싶으면 충청도에 턱하니 나타난다. 동분서주(東奔西走), 신출귀몰(神出鬼沒), 어떤 글로도 그를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다. 고희(古稀)에 가까운 그의 연령(年齡)에 그 열정이 놀랍다.



우리 선학원 분원은 대부분 도심에 위치하고 있다. 그 중 비구니 스님들 도량은, 민폐를 끼치는 화상들이 많아 문을 닫고 사는 경우가 많은데 법등 스님은 기어이 그 문을 열게 만든다. 분원장 스님들이 공양주나 노스님에게 “누가 찾아오든 남자에게는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도 법등 스님은 기어코 문을 열게 하고 도량 안으로 들어온다. 그가 어떤 감언이설(甘言利說)로 회유를 하는지 몰라도 그의 친화력이 놀랍다.

법등 스님은 늘 정성껏 손질한 풀옷을 입고 다닌다. 요즘은 하늘거리는 모시 두루마기를 입는 계절이다. 법등 스님은 잠자리 속날개 같은 옷을 입고 비구니 노장님들에게 나붓나붓 삼배를 한다. 총무원장을 넘보는 스님이 세 번이나 절을 하다니, 꿈도 아닌 생시에 이런 황감(惶感)한 일을 당한 노장님들은 당혹감을 금할 수 없다. “법등 스님이 얼마나 정성껏 절을 하는지 그 지극함에 넘어가지 않을 노스님은 없을 것”이라고 어떤 분원장 스님은 단언(斷言)한다. 그러고 나서 ‘동의서’를 꺼내 도장을 찍도록 한다.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쁘게 말하면,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지만 좋게 말하면, 어느 비구가 이처럼 집요하게 노력하겠는가! 그의 집요함이 놀랍다.

법등 스님은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우리 재단 이사들이 탈종하려 한다거나, 선학원 이사들이 재단을 사유화하려 한다거나, 동의서에 서명만 하면 분원의 재산을 지켜준다고 거짓말을 한다. 원로의원과 종회의원을 주겠다거나 선학원의 재산권, 운영관리권 등 법인 고유권한을 침해하지 않겠다고 거짓말을 한다. 심지어 자신의 권한 밖인 멸빈자 사면까지, 터무니없는 말을 그럴듯하게 늘어놓는다.

그가 말하면 허위사실(虛僞事實)과 유언비어(流言蜚語)일지라도 진짜인 것처럼 들린다고 한다. “법등 스님의 말을 들으면 도장을 찍어주지 않을 수가 없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혹해서 넘어간다. 선학원에서 공문이 오지 않았다면 나도 도장을 찍었을지 모른다.” 어느 분원장 스님의 고백이다.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조작하는 그의 탁월한 언변(言辯)이 놀랍다.

그는 끈질기다. 한 번 찾아와서 안 되면 두 번 찾아오고 그래도 안 되면 계속 찾아다닌다. 그리고는 몇 시간씩 눌러 앉아 쉬지 않고 말한다. 우리 스님들이 면전(面前)에서 불평을 해도 웃음으로 넘겨버린다. 천도재를 지내는 동안 법당에서 버티고 앉아 있었던 경우도 있었다. 질리도록 만들어서 끝내 도장을 받아낸다. 그에게 있어서 동의서는 일종의 항복문서와 같다.

우리 분원의 비구니 스님들은 법등 스님이 전화를 하거나 찾아올까봐 걱정한다. 비구니 자매 사건이 알려진 이후로는 거의 공포 분위기다. 그러나 법등 스님에게 있어서 우리 분원장 스님들의 두려움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뜻을 끈질기게 관철시키는 능력, 그의 끈기가 놀랍다.

법등 스님은 세납으로 보나 법랍으로 보나 종단에서의 경력을 보나 존경받을 만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요즘은 누군가의 이력만으로 존경하던 시대는 지났다. 존경받을 만한 수행과 행위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법등 스님을 보면 참, 안타깝다! 그가 지금 분원을 찾아다니는 열정으로 화두(話頭)를 들었다면 명안종사(明眼宗師)가 부럽지 않았을 것이고, 그가 경전을 팠더라면 탄허 스님조차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법등 스님이 호계원장 시절에 지금처럼 열심히 전국을 다니며 종단의 기강을 세웠더라면 종단의 대외적 위상이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법등 스님이 종회의장 시절에 전국의 종회의원 스님들을 지금처럼 열심히 찾아다니며 뛰어난 언변으로 설득하여 종헌종법을 제대로 만들었더라면 종단이 오늘처럼 국민의 근심꺼리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범계자와 범법자가 종단을 쥐락펴락하는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법등 스님이 ‘염화미소법’이라고 하는 황당한 법안을 만들어 저들에게 장난감으로 건네주기 이전에 ‘총무원장 직선제 실현을 위한 사부대중연대회의’를 제대로 이끌었더라면, 그래서 1994년 개혁 당시 직선제 지지율이었던 87% 종도들의 의사를 존중하여 제대로 반영했더라면, 조계종이 지금과 같은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법등 스님의 탁월한 능력을 불교와 종단의 발전을 위해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진실로 법등 스님에게 바란다. 이젠 정말 자신을 되돌아보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허물이 얼마나 큰지 살펴보고 자숙하기 바란다.

-본지 편집인 · (재)선학원 교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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