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지금 우리 사회를 휩쓰는 거대한 토네이도와 같다. 거리의 빌딩마다에는 독일 월드컵에 출전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팀의 승리를 바라는 구호가 선명하다. 거리는 붉은 물결이 흐르고 있다. 방송과 몇 신문들이 이 흐름을 부추기고 있다.
우리나라 축구대표팀과 토고팀의 경기가 있던 날, 공중파 방송 3사는 월드컵 관련 프로그램을 20시간이나 내보냈다. 뉴스 프로그램도 매일 10꼭지 이상씩을 월드컵 관련 기사로 방영하고 있다. 유력 신문도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대표팀이 토고를 2:1로 이긴 다음 날의 한 조간신문은 골을 넣고 기뻐하는 선수들의 사진으로 1면을 가득 채웠다.
이래도 괜찮은 건가? 아니나 다를까, 광고수익에 눈먼 방송사의 횡포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16강 진출을 전제로 한 TV 광고수익이 600억원 규모에 이른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니 방송사들이 월드컵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방송사 관계자의 귀뜸이다.
우리사회의 주요 현안이 월드컵 때문에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도 들린다.
“월드컵 열기는 역사 속 기념일 외에도 한미FTA 협상과 평택 미군기지 이전, 부동산 가격 거품 문제 등 현재 진행되고 있는 주요 현안들도 관심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박석운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국민들이 월드컵을 즐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와 더불어 한미FTA문제나 6.15 문제 등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제는 월드컵을 축제로 즐기면서도 각종 주요 현안들에 대해도 관심을 기울이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노컷뉴스, 6. 13>

이런 가운데 TV와 신문엔 승복 대신 붉은 티셔츠를 입고 손을 치켜든 스님들의 모습을 내보낸다. 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스님들의 모습이 ‘딱’이라는 편집자의 계산이 작용한 것이다. 그런데 동남아 불교국가의 월드컵 관전 방법을 전하는 기사도 있어 흥미롭다.
연합뉴스는 14일 태국의 언론보도를 인용해 “태국 종무당국은 불교 승려들에게 독일 월드컵 경기 시청을 허용하되 계율에 어긋나는 행위는 엄격히 규제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종무 당국은 승려들이 사찰 내 거처에서만 차분하게 월드컵 경기를 시청토록 하고 환호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행위는 엄금키로 했으며, 전국 76개 주의 수석 승려들에게 관내 사찰 소속 승려들의 행태를 철저히 감시토록 했다. 당국은 월드컵 경기 시청 과정에서 관내 사찰 승려들이 내기 등 부적절한 행위를 한 사실이 적발될 경우 해당 사찰의 주지는 물론 관할 지역 수석 승려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기로 했다.”
이에 앞서 캄보디아의 최고 스님도 “월드컵을 보며 흥분하면 파계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불교국가인 캄보디아의 최고승려가 ‘월드컵 경기를 조용히 명상하듯이 볼 것’을 촉구했다고 12일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최고승려인 텝 봉 스님은 ‘축구는 아름다운 경기이고 하나의 문화이기 때문에 이를 보고 즐기는 것은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좋은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경기를 관람하거나 시청할 때 흥분하거나 도박을 하지 말고 조용히 명상하는 기분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승려들이 경기를 보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하면 이는 불교의 계율을 깨뜨리는 것으로 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 뒤 ‘흥분하거나 도박하는 승려는 승려가 아니다’고 강조했다.”<연합뉴스, 6. 12>

월드컵은 아름답다. 승리를 위해서 최선을 다 하는 선수들, 그 선수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는 모습은 가슴 뭉클하다. 그러나 일상의 삶이 월드컵에 밀려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월드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소홀히 다뤄질 때 토네이도가 훑고 지나간 것처럼 우리의 삶은 황량해진다.

 

정성운 | 前 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 woon1654@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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