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에는 유독 관심을 갖는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국가로부터 부여 받은 권리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평소 종단정치에 관심이 없는 스님들도 종단의 최고수장을 선출하는 일은 관심사 일 수밖에 없다.

불교는 그 어는 종교집단도 흉내 낼 수없는 평등과 화합의 철학을 구현하며, 승가는 출가대중 개개인이 중심이 되는 집단이다. 소임은 권력이 아닌 여타 대중보다 수승한 보살행을 하기위한 행위에 불과하다. 기실 현대 사회의 정치권력이 불교의 소임철학에서 배울 점이 많으며, 이를 통해 권력으로부터 발생하는 온갖 부작용의 해결이 가능하다. 불교가 사회지도층을 상대로 하는 포교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필자는 94년 종단개혁 이후 기고, 서신, 토론회 참여, 기자회견 등을 통해 종책선거와 직선제를 꾸준하게 주장해 왔다. 특히 종책의 제시와 실천은 대중과의 약속으로 청정선거의 기본이 되는 요소가 된다.

근래 100인대중공사가 총무원장 선거제도에 대한 토론을 종결 하더니, 중앙종회가 본격적인 개정작업에 들어갔다. 필자역시 총무원장 선거제도의 개정은 향후 종단운영의 방향과 발전, 대중화합, 불교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개정안에 대한 보도문을 참고로 해서 연구를 해 보았다.

그리고 6월 임시종회에 상정 예정인 일명 염화미소법에 대한 의견을 어제(6월 7일) 중앙종회의장 스님 등 종단의 고위급과 교구본사 주지스님들께 제시했다. 종헌과 선거관련 법안을 개정 할 시는 신중하게 처리해야하기에 종도로써 한 의견을 보태고자 한 취지다.

우선 조계종단의 수장을 선출하는 제도를 개정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기존의 방식보다 더 발전되고 보다 더 불교적이어야 할 것이다. 승가 고유의 전통과 종단의 지향점이 반영되어야 하며, 행정수반으로서의 소양과 자질은 물론이고 한국불교를 힘 있게 다시 일으켜 세울 능력을 갖춘 이가 과연 누구인지 온전히 가려낼 수 있는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종법에 명문화 될 절차에도 이러한 기능들이 잘 녹아 있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부처님 재세 시부터의 제도인 갈마제도는 불교적 의사결정의 모범이 되는 대중공의제로서 여러 순기능과 더불어 화합의 의미가 잘 내재된, 시대를 초월하는 의사결정법이라 하겠다. 당시의 승가갈마의 의결 방식은 가히 획기적인 것으로 현대 민주주의의 직접선거 제도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고도의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종단이 전통 산중공의제의 현대적 모형이랄 수도 있는 직접선거제를 실시하지 못하고 그 부작용을 두려워한다면 정체성을 부정함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물론 직접선거가 만능이 아니며 문제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선제가 불교의 가치가 녹아 있는 산중공의, 원융살림, 사찰공동체를 복원하는 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정히 직선제를 실현하기가 어렵다면 교구종회를 확대 및 활성화 하고 그 기능을 강화하되, 이렇게 강화된 기능의 토대 위에서 총무원장을 선출하는 방식을 취한다면 직접선거에 버금가는 기능을 구현할 수 있으며 지방자치에 대중 참여 확대라는 이삼중의 효과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첨단을 달리는 시대, 종교문화의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종단의 과제와 비전을 제시 가능한 인물이 지도자가 되는 제도여야 한다.

현재 중앙종회에 상정 예정인 개정안은 선거인단을 706명으로 확대하고 몇 단계를 거치는 방식인데, 제도 자체의 생소함은 그렇다하더라도 행정에 대한 이해나 선거의 개념과는 거리가 먼 발상이 아닌가 한다. 후보자들을 선(先)선거 한 후에 추첨을 하는 제도는 결국 대중을 총무원장이 아닌 그 후보자들을 추첨하는 그룹으로 전락시킨다. 엄밀히 말해 ‘갈마위원회’라는 새로운 중앙종무기구의 선택폭을 강화한 제도에 다름 아니다.

본 건을 발의한 의원들은 종단의 수장을 모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 것으로, 본 안(염화미소법|제비뽑기식)의 무엇이 종단발전과 불교중흥을 위한 것이며, 진정으로 종도 대중의 의사를 반영하는 제도이고 화합을 구현할 수 있는 제도인지, 한국불교를 반석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그야말로 질적 양적 발전을 도모할 지도자를 공정하게 선택할 수 있는 기능성을 담보하고 있는지 등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선거제도는 단순해야 함을 강조한다. 혹자는 총무원장 직선제는 다수가 참여하기에 번거로움 등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나 현대문명의 편의와 제도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투표자 수와 거리에 구애 받지 않고 일사분란하게 수행할 수 있다.

총무원장 선거법 개정은 직선제가 아니더라도 미래지향적 가치를 추구하고 대중의 신심을 고양하며, 종단의 사회적 위상 확립 및 혁신의 의미에서도 그에 버금가는 제도가 실현 돼야 한다.

총무원장 선거법 개정 시 착안 사항

 총무원장 선거제도를 개정하려면 직선제가 아니라 해도 위 10개항을 착안해야 하며, 그 동안 드러난 금권, 파벌주의를 타파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더 큰 문제, 또 다른 문제점은 없는지 신중하게 살펴야한다.

현대사회의 민주주의도 정당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짓거나 대표자를 선출할 경우 전체대의원 회의에서 결정한다. 그 이유는 발생 가능한 문제점들을 직접선거 그 행위 자체로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6월 임시 중앙종회에 상정예정인 개정안 도표

▲ ‘총무원장 추천인단이 3인의 후보자를 선출하면 후보자 검증을 위한 갈마위원회를 거친 후 원로회의의 인준 후 종정스님이 추첨하게 된다.’는 보도다. 대중이 선출한 후보자들을 갈마위원회가 검증한다는 것은 선거인단의 선택을 갈마위원회가 기속한다는 의미다. 선거인단에 의한 후보자 3인의 선출을 원천에서 무의미하게 하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갈마위원회 심사와 선거인단에 의한 후보자3인의 추천순서를 바꿔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한다. 새로운 제도를 만들 시는 파생가능 한 다양한 문제점들을 착안해서 최소화해야 한다.

위 도표들을 바탕으로, 상정예정인 안의 문제점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불교의 가치와 철학이 내재돼 있지 않다.
중앙종회가 중요한 제도를 입안할 때는 불교의 가치와 철학, 전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총무원장 선거제도는 산중공의, 원융살림, 사찰공동체를 복원하는 가치가 녹아 있거나 복원하는 안이어야 한다. 그런데 706명이라는 전체 종도의 20분의 1정도의 대중이 후보3인을 선출하고, 이 3인의 신분과 자질을 검증 후 추첨하는 제도에서는 공의⋅원융⋅공동체 그리고 평등과 참여의 가치를 찾기가 어렵다. 원로회의가 3인의 후보자를 인준하고 종정예하가 3인의 후보자 중 한사람을 추첨하는 절차는 종단의 최고어른에게 의미 없는 행위를 시키는 것으로서, 불교의 전통적 가치나 철학과 무관하다.

둘째, 선거인단의 후보자 3인 선출과 단계별 모순이 있다.
앞서 도표에서 설명한대로다. 선거인단의 후보자 3인 선출의 한계성과 더불어서 갈마위원회의 파행운영이 현저하게 우려된다. 선거인단이 후보자 3인을 선출하고 갈마위원회가 심사한다면 갈마위원회가 선거인단 706명의 후보선출행위를 일거에 무효화하는 행위와 다름 아니다. 대중이 투표로 선출한 자를 이후에 특별기구가 심사하는 방식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후보자 선출과 갈마위원회의 검증 이라는 초기 절차부터 하자가 발생한다면 이후 절차는 무의미하다.

순서를 바꾸어서 갈마위원회가 후보자를 선 심사하고 선거인단이 후보자 3인을 선출하는 경우에도 갈마위원회가 후보자를 3인이나 그 이하로 결정할 경우에 선거인단의 후보자 선출은 무의미한 절차가 된다. 염화미소법이 그나마 명분을 얻으려면 후보자수를 무한 허용해야 한다. 그래서 최소한의 자격이 허용되는 이름 없는 승려라도 당선이 가능토록 해야 한다. 재가 갈마위원이 총무원장후보자의 신상을 검증하고 자료를 요청하며, 때로는 출석시켜서 직접 질문을 하는 경우도 발생할 것이다.

셋째, 갈마위원회의 절대적 역량이 보장된 제도다.
반복되는 설명으로, 보도된 개정안의 핵심은 갈마위원회의 절대적 역량이 보장된 제도로써 단 한두 명의 후보자만 검증을 통과시키는 일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선거인단을 706으로 늘린 그 취지와 이후의 모든 절차를 무의미하게 한다. 총무원장 선거법 개정에 대한 여론이 강하게 대두된 요인 중 하나가 기득 세력의 개입의 반대인데 오히려 이를 더 강화한 형국이 될 수 있다.

넷째, 100인 대중공사를 통한 여론을 수렴하고 무책임하다.
현 34대 집행부의 성과 중 하나가 100인 대중 공사다. 그 내용적 성과를 떠나서 상징적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종단이 대중공사를 통해 대중의 의견을 확인해 놓고서도 정작 대중이 원하는 직접선거제를 배척하고, 불분명한 명분을 내세워서 제시된 안으로써 이름이 무엇이든 사실상 염화미소법이기에 대중의 반목이 우려된다.

▲ 지난 5회의 총무원장 선거에서의 출마자 현황으로 4인인 경우가 2회, 3인인 경우가 2회, 2인인 경우가 1회다.

다섯째. 처음부터 후보자가 3인 미만인 경우는 개정안이 허사가 된다.
앞 도표와 같이 31대에서 34대까지 도합 5회의 총무원장 선거에서 후보는 3인 내외였다. 후보가 3인 미만 시 선거인단의 후보 선거는 무의미한 절차임을 알 수 있다. 이래저래 선거인단의 후보자 선출은 허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설사 후보자가 3인을 넘는다 해도 그동안 행태로 보아 3인 이하로 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현행 제도보다도 오히려 대중성이 약화된 안이다.

여섯째, 교구본사 집행부의 개입이 가능하다.
교구본사의 선거인단을 늘렸으나 결국 교구본사 집행부의 선별이 가능하다. 이 폐단을 삼제(芟除)하기 위해서라도 직선제 내지 대폭 확장된 교구종회의 운영체계가 필요하다.

일곱째, 상식을 벗어난 제도다.
조계종은 사회적 책임이 있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종단의 모든 행위와 제도는 사회적 공감과 감동이 있어야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제도의 발상은 한국불교 대표 종단에 대한 사회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위이고, 전통종교 종단으로서의 모범을 망각하는 처사다.

여덟째, 원로회의 인준이 무의미 하다.
원로회의 인준도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갈마위원회가 검증한 후보자 3인을 원로회의가 인준하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부여된 권위이고 절차다. 원로 등 고위급에게 부여 되는 절차는 신성한 권위와 긴장감이 내재돼 있어야 한다.

아홉째. 종정예하의 최종 추첨의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가?
종정예하가 총무원장을 지명도 아닌, 제비뽑기 식으로 추첨하는 것은 이 자체가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며, 종정예하의 신성성과 여법성의 유지와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종정예하가 총무원장을 지명해서 임명하는 제도라면 종정예하의 권위가 세워질 수 있으나, 3명 중에서 임의로 한명을 추첨하는 것은 전적으로 요행과 운에 의지하여 선출하는 것이어서 권위는 고사하고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이상 살펴 본 바, 한마디로 이러한 제도는 불교의 전통과 철학을 내팽개치는 것은 물론 사회의 보편적인 선거제도에도 따라가지 못하며, 행정에 대한 한계성의 소산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총무원장 선거제도가 이상한 방향으로 개정된다면 종단 발전은 고사하고 대중의 분노만 살 것이다. 제아무리 종교집단의 제도라 해도 사회가 공감하는 제도가 돼야 한다.

이 법이 통과될 시 중앙종회는 종단사에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좀 더 심층적이고 폭 넓은 연구와 의견을 수렴해야한다.

추첨(抽籤)이 주는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범속한 의미도 고려사항이다. 추첨의 의미는 풀이 그대로 제비뽑기다(抽:뽑을 추, 籤:제비 첨). ‘추첨’에 대해 포털사이트를 검색하면 경품, 상품, 복권 등에 주로 사용되고 있으며, 사람인 경우 프로선수 지명이나 학생들의 학교배정에 사용되는 단어다. 1천7백년 한국불교사에 총무원장을 제비뽑기로 해서야 되겠는가?

필자는 그다지 멀지 않은 장래에 가톨릭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선거회인 ‘콘클라베’가 폐지되고 대다수의 신부들이 참여하는 직선제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들은 시대상과 멀어지면 위기가 도래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불교는 사회가 공감하는 제도를 외면하려 하고 있다.

일정 상 문제가 있다면 차라리 35대 선거는 현행대로 치루고 적당한 시기(중앙종회 이원 선거 시 등)에 총무원장 선거제도에 대해 전 종도를 상대로 투표로서 결정하기를 제안한다.

法應 | 불교사회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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