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경》을 닦아 아홉째 공덕을 성취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마음을 내어야 한다. 곧 믿음이 있어야 하고, 곧은 마음[直心]을 내야 하며, 계행을 갖추어야 하고, 선지식을 친근해야 하며, 많이 아는 것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믿음을 내야 한다. 믿음이란 삼보를 믿고, 보시에는 과보가 있음을 믿어야 하며, 이제(二諦)의 진실한 이치를 믿어야 하며, 일승의 도에 다른 길이 없음을 믿고, 제일의제를 믿고, 좋은 방편을 믿음이다. 보살이 보살도를 닦아서 대열반에 나아가는 데에는 많은 장애가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불법(佛法)에 대해 시비를 하고, 수행해 나아갈 때에 천인·마군·범천 등이 때때로 방해가 되며, 중생들과 인연지어 살다보면 중생의 오욕락에 젖어서 방해되므로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삼보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삼보에 대한 믿음은 모든 불도를 닦아가는 데 그 첫 걸음이 된다.

다음으로는 사회의 보편적인 도리로 인과에 대한 믿음이다. 중생이나 천인의 세계에서는 인과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그 사회가 유지되고 서로 도와서 미침내 선공덕을 쌓게 된다. 또한 이제·삼제·제일의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진리에 나아갈 수 있다. 부처님은 중생을 제도하는 데 있어서 세간의 진리인 세속제를 써서 알기쉽게 중생을 제도 하셨고, 진리의 세계인 진제에서의 도리를 펴서 법에 집착하지 않고 절대 진리를 체득하도록 하였다. 곧 세간에서는 선인선과 악인악과나 무상·무아·일체고라고 아는 것을 진리로 알지만, 진제에서는 불생불멸인 도리를 진리로 여기게 된다.

이와 같이 방편이 아닌 진실한 부처님의 깊은 진리, 실상 대열반의 진리를 제일의제라고 한다. 원래 부처님은 일승의 불도에 깨달아 들어가게 하는 도 외에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미혹한 중생들이 빨리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해서 분별하여 이승 삼승을 나누어 설한 것이다. 보살은 수행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이와 같이 이제 삼제 제일의제에 대한 깊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일의제에서 중생의 성품과 근기에 맞추어 베풀어진 선방편에 대해서도 믿음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곧은 마음이다. 여기서 곧은 마음은 아첨하지 않는 마음이요, 잘못에 대해서는 이를 참회하는 마음이다. 중생들은 인연을 만나면 아첨하고 굽은 마음을 내게 된다. 보살은 이런 일들이 모두 인연으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아첨하거나 굽은 마음을 내지 않는다. 보살은 중생들의 선한 일을 보면 이를 칭찬하고 나쁜 허물을 보면 이를 말하지 않는다. 중생들의 허물을 자꾸 들추면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가 생길까 두려워하기 때문이요, 만일 번뇌가 생기면 악도에 덜어지기 때문이다. 중생들이 선한 일을 하면 이를 칭찬함으로써 불성이 나와서 아뇩보리의 마음을 내게 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열반경》을 설할 때에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고 한다. 어떤 병자가 용한 의원과 간병할 사람을 만나면 병이 쉽게 나을 것이요, 만나지 못하면 나을 수 없으며,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상관없이 병이 나을 수 없고,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나을 수 있다고 한다. 중생들도 이와 같아서 선지식이나 부처님이나 보살을 만나서 묘한 법문을 들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게 될 것이니, 이들은 들어보면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 등의 수행자이다.

다음으로는 아무리 선지식·부처님·보살을 만나서 법문을 들어도 보리심을 내지 못하고, 만나지도 못하여 아뇩보리의 마음을 내지 못하는 경우는 일천제들이다. 이들은 삼보를 불신하고 법을 비방하며 마음이 곧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모두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는 경우는 보살이다.

그런데 여기서 《열반경》의 보살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천제들이 선지식·부처님·보살을 만나서 가르침을 듣거나 듣지 못하거나 모두 아뇩보리를 내지 못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천제들은 단선근자(斷善根者)라고 하지만 불성을 끊지는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부처님은 선을 닦은 결정선근자는 만나거나 만나지 않거나 수명이 결정되어 있어서 병이 낫는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좋은 선근 가르침 등으로 이미 선근을 닦아 놓아서 이미 불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중생이 선지식이나 부처님이나 보살을 만나면 병이 낫고 만나지 못하면 낫지 않는 경우는 선근이 박약하여 결정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이들은 이와 같이 좋은 인연을 만나야 병이 낫는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설사 허물이 있더라도 즉시 참회하고 스승과 동료들에게 숨기지 않으며 부끄러워 스스로 책망하고 다시는 범하지 않으며, 가벼운 허물이라도 중한 죄를 지은 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곧은 마음을 얻는 참회란 만약 다른 사람들이 그 죄를 물으면 참으로 그 죄는 내가 범하였다고 대답하고, 죄가 좋으냐고 물으면 좋지 않으며, 잘못된 것이요, 선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죄업은 번뇌로 모아진 것이지만, 이를 참회하는 곧은 마음이 있어서 불성이 있음을 믿게 되고, 불성을 믿으므로 이런 사람은 일천제가 아닌 참된 불자라고 한다.

셋째, 계행을 닦아야 한다. 보살은 계율을 받아 지니는 것이 천상에 나기 위해서가 아니고, 공포를 파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파계를 짓지 않고 내지 성문의 계를 짓지 않는다. 보살마하살은 지계바라밀을 닦아서 구족계를 얻고서도 교만을 내지 않고 불도에 나아가니 이를 계를 갖추는 것이라 한다.

넷째, 선지식을 친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지식은 항상 선한 도를 말하고 나쁜 도를 말하지 않으며, 나쁜 도를 선한 과보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 자라고 한다. 보살은 그 중생의 성품과 근기를 살펴서 그에 알맞은 선한 법을 설해 주어 선한 과보가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참된 선지식이라 한다. 예를 들면 부처님은 중대한 번뇌에 속박되어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방편으로써 이를 끊게 하였다. 동생 난타를 만났을 때 큰 탐욕이 있음을 보고 가지가지 방편으로 이를 끊어 주었고, 앙굴마라가 지독하게 성내는 일이 있었는데 만나서 끊어 주었고, 아사세왕이 어리석었는데 부처님을 본 인연으로 우치의 생각이 없어졌다고 한다.

다섯째, 많이 아는 것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살마하살은 훌륭한 가르침을 많이 듣고 읽고 쓰고 해설해야 아는 것을 많이 갖추었다고 한다. 곧 보살은 대반열반을 위하여 십이부경을 읽고 쓰고 외우고 분별하여 해설하면 이를 아는 것을 많이 구족하였다고 하고, 십이부경을 그만두고 비불략(광대한 진리를 담은 경전)만을 외우고 분별하면 많이 구족하였다고 하고, 내지 사구게 한 게송만을 배워 가져도 보살이 많이 앎을 구족하였다고 한다.

보살들이 대열반을 위하여 이상 다섯 가지를 갖추면 짓기 어려운 일을 지을 것이요, 참기 어려운 일을 참을 것이며, 보시하기 어려운 일을 보시함으로써 장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된다고 한다.

이기운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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