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동 작가

<산란(山蘭)>은 김성동 작가의 작품답지 않게 작가의 개인사가 용해되어 있지 않다.

김성동 작가의 작품은 불교문학과 개인의 가족사를 다룬 자전소설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후자는 출가 이전의 삶을 다룬 <길>과 출가 이후의 삶을 다룬 <집>이 대표적이고, 전자는 말할 것도 없이 <만다라>가 대표적이다. 따라서 <만다라>는 <길>과 <집>의 가운데 놓인 작품이다. 작품집 《피안의 새》 말미에 있는 김성동 작가가 쓴 개인이력인 <간추려본 발자취>에는 출가 동기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1965년 3학년 1학기를 다니다가 산으로 갔던 것은 찔레꽃머리였음. 그 때에 이 중생은 자하문고개 너머에 있는 왕고모할머니댁에 있었는데, 자유당 시절 삼선 국회의원을 하였고 조계종 전국신도회장을 지낸 왕고모부 별장이었던 그곳에서 노사(老師)를 만나게 되었음. 평북 정주 출신으로 오산학교를 나오고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던 노사께서는 50년대 초 대처승 정화운동 당시 할복하였던 자리가 덧나서 치료와 요양 차 잠시 산을 내려오신 길이었음. <내가 학교를 그만두는 까닭>이라는 장문의 자퇴서를 내고 노사를 따라 도봉산 천축사로 갔음. 공무원이 될 수 없고, 군대를 가더라도 장교가 될 수 없으며, 세상에서 말하는 최고 출세수단이라는 ‘고등고시 패스’를 해도 임관이 안 되는 ‘삼불(三不)의 덫’에 치인 출신 성분으로 해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니, ‘위장입산’이었음. 노사는 다시 무문관(無門關)으로 들어가시고 이 중생은 시자실(侍者室) 천장 구멍으로 공양을 넣어드리는 것으로 행자(行者) 생활을 비롯하였음. 여섯 달만에 수계(受戒)를 하고 정각(正覺)이라는 법명을 받았음.”

김성동 작가 스스로 출가 동기를 ‘위장입산’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작가가 ‘위장입산’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붉은 씨앗’으로 태어나 ‘삼불(三不)의 덫’인 연좌제를 온몸으로 안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자전소설인 <피안의 새>에서는 화자의 출가 동기가 “성불을 해서, 내 마음속에 있다는 부처를 내 것으로 해서, 우선 어머니를 제도(濟度)하고 누나를 제도하고, 그리고 구만리장천을 중음신(中陰身)으로 떠돌고 계실 아버지의 외로운 영혼을 천도하고 나아가 무명예토(無明穢土)를 헤매고 있는 일체중생을 제도하고 천도하겠다는 명분”인 것으로 적혀 있다.

<피안의 새>는 작가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옮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인 만큼 성불을 해서 무명예토(無明穢土)를 헤매고 있는 일체중생을 제도하겠다는 것 역시 김성동 작가의 출가 동기 중 하나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 까닭에 김성동 작가에게 있어 <만다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성불을 하기 위해 입산한 작가가 승려로서 피부로 느낀 불교계의 현실과 문제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기실 <만다라>가 신인작가의 첫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베스트셀러로 대중에게 사랑받은 이유 역시 불교계에 대한 비판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희구하는 젊은 화자의 눈에는 중생을 제도하기는커녕 세속화가 만연해 있는 종단이 미덥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다라>와 마찬가지로 불교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는, <만다라>의 전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목탁조〉의 발표로 인해 김성동 작가는 정각(正覺)이라는 법명을 쓸 수 없게 된다.

이후 김성동 작가가 쓴 불교를 제재로 한 장편소설은 <꿈>이다. <꿈>은 불교신문에 연재한 것을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한 것인데, 조신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만다라>와 <꿈> 사이에 발표한 작품으로는 중편 <피안의 새>와 단편 〈먼 산〉, 〈등〉, 그리고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자 하는 〈산란〉이 대표적이다.

<피안의 새>는 〈목탁조〉 발표 이후 반승반속으로 살면서 방황하다가 환속하는 작가의 개인사가 담긴 작품이다. 그런 까닭에 〈목탁조〉, <만다라>와 마찬가지로 신랄한 불교계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두 작품 다 말미에 “그때만 해도 나는 아직 어렸던 터라”라고 쓰고 있는 것에 알 수 있듯 〈먼 산〉과 〈등〉은 연작(連作) 소설이다. 두 작품은 화자의 정신적인 방황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성불 혹은 깨달음이라는 이상과 부박한 현실의 괴리 속에서 화자는 “더러운 땅을 여의고는 어디서도 깨끗한 땅을 찾을 길이 없다.”라는 교훈을 얻는 것이다. 이상〔淨土〕과는 너무나 먼 현실〔穢土〕 속의 괴리감을 그리다 보니 〈먼 산〉과 〈등〉에서도 불교계의 비리가 여실히 드러난다.

모든 면에서 〈산란〉은 작가의 다른 불교소설과는 이질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다른 작품들과 달리 〈산란〉의 주인공은 어린 동승(童僧)이다. 그러다보니 불교계 현실에 대한 비판이랄 것도 눈에 띄지 않는다.

어린 화자의 눈에 비친 산사의 풍경은 수채화를 그린 것 같아서,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차라리 슬픈 아름다운’ 지경이다.

이보영 평론가는 〈구도적인 고백문학 - 김성동의 문학세계〉라는 글에서 〈산란〉에 대해 이렇게 평하고 있다.

〈산란〉의 인상은 한마디로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섬세한 감각과 미묘한 비유의 아름다움이다. 〈산란〉의 구성 원리는 대조적인 인물과 사건에 얽힌 아이러니이다. 곧, 노승(老僧)과 능선(能善)이라는 사미승의 사제관계에 있어서의 유머러스한 아이러니와, 자기에게 친절했던 여인(보살님)의 정사(情事)를 보고 능선이 느낀 갑작스러운 환멸의 아이러니이다.

얼굴이 험상궂고 눈빛이 늙은이답지 않게 정한(精悍)한 노승은 교훈조로 불교의 진리를 능선에게 말해주고, 정각의 노력을 하도록 강요하지만, 그 아이는 그것보다도 젖먹이처럼 떨어져 나온 어머니만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노승과 아이의 사제 관계는 번번이 겉돌지만, 그 공전(公轉)은 불교에서의 진정한 사제 관계와 정각의 어려움을 암시하는 미묘한 비유가 된다. 예컨대 노승이 시키는 대로 풀베기를 한 뒤에 능선이 “손가락이 아파요. 풀들은…… 얼마나 아프겠어요.”라고 하자 노승이 “호오, 선근(善根)이로다.” 하면서 기뻐한 것은 능선의 착한 마음씨에서 불도(佛道)에 투신할 수 있는 소질을 아전인수로 발견한 결과이다. 이런 사제 관계는 능선이 풀베기를 안 해도 되느냐고 묻자 노승이 “법기(法器)로다. 노랍이 드디어 사자새끼를 얻었구나.”라고 하여 더욱더 겉돌게 된다.

두 사람의 겉도는 관계로 인하여 노승의 말은 거의 독백이나 다름 없는데, 실지로 그는 불교적인 진리를 독백하곤 한다. “……아, 참으로 헛되고 헛된 것은 언어(言語)와 문자(文字)일 것이니, 일찍이 석로(釋老)가 마업(魔業)이라 일렀음이어.”라고 한 것도 한 예이다.

그 겉도는 사제 관계는 좌선명상의 수련을 시켜서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능선이 철없는 행동을 하는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에서 절정에 달한다. 어느 날 해질녘에 목탁 소리를 들은 능선이 그 목탁 소리를 잡아달라고 노승에게 조른다.

아이는 여전히 칭얼댄다.
“이잉, 자바조, 모따소이 자바조.”
눈언저리를 덮고 있는 노승의 희고 긴 눈썹이 철사처럼 빳빳해지면서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졌다.
“무엇을 일러 무라 했는고!”
갑자기 엄해진 노승 얼굴이 무서워 아이는 입술을 비쭉인다. 노승이 다시 소리쳤다.
“무가 무인 도리를 아는고!”
아이는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노승 가사섶을 쥐어뜯는다. 노승 입이 활짝 찢어지면서 시뻘건 목젖이 크게 꿈틀거렸다.
“으핫핫핫……. 무로서 무를 찾으니 무 찾는 이 물건 또한 무로구나!”

-〈산란〉 98쪽

애초에 말상대가 안 되는 아이에게 어려운 질문을, 그것도 무서운 표정으로 던지는 노승은 늙은 아이나 다름없지만, 동시에 그런 대화 관계는 뭔가 허무하다. 그 점은 자신을 어리석은 ‘물건’에 비유하는 노승의 얼굴에 서글픈 그림자가 서린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능선의 철없는 언행이 백발이 되도록 중노릇을 해온 노승의 그 자탄(自嘆)의 비애를 오히려 강조해준다.

한편 이 유머러스하면서 비감한 사제 관계와 병행되는 것이 이 절에 수도를 핑계 삼아 온 여인이 정부(情夫)와 성교를 하는 사건이다. 아이는 너무도 엉뚱한 그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고 기겁을 한다. 이때 멀리 염화실 쪽에서는 노승의 “무라!” 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그 선남선녀의 정사는 노승의 그 허탈한 심경을 비웃듯이 감행된 것인데, 그런 대조적 사건에 의하여 결코 헛되지만은 않은 노승의 공은 많이 들였으되 보람은 적었던 수도생활이 암시된다.

〈산란〉의 작중사건은 그 짜임새가 얼핏 보아 흐트러져 있는 듯하면서도 은연 중 통일되어 있는데, 그 통일감은 이 작품의 사건이 시간적으로 해질녘에서 시작하여 먹장 같은 어둠으로 종결됨으로써 더 보장되어 있다.

구성주의 비평에 입각한 이보영 평론가의 글은 〈산란〉의 구성 원리를 대조적인 인물과 사건에 얽힌 아이러니로 파악한 것이나, 〈산란〉의 작중사건이 얼핏 보아 흐트러져 있는 듯하면서도 은연 중 통일되어 있다고 파악한 것은 혜안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반면, 주제의식에 대한 해석에서는 다소 빈약한 감이 없지 않은데, 그 결정적인 이유는 선적(禪的)인 메타포로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가령, “자신을 어리석은 ‘물건’에 비유하는 노승의 얼굴에 서글픈 그림자가 서린 것으로 알 수 있다” 같은 대목은 오독(誤讀)에 가깝게 여겨진다.

노사가 말하는 ‘물건’은 사물 혹은 대상으로서의 물건의 의미가 아니라 선적인 화두 혹은 공안(公案)이다.

한국 선불교에서는 ‘이 뭣고’라는 화두를 즐겨 쓴다. ‘이 뭣고’는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의문형 문장의 사투리일 것이다. ‘이 뭣고’라는 화두의 근원은 ‘시심마(是甚麽)’에서 비롯된다.

‘시심마’라는 화두는 육조 혜능 대사의 어록인 《육조단경》에 처음 등장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악 회양(南岳 懷讓, 677~744) 스님이 찾아왔을 때 육조 혜능 스님이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대체 어디서 왔는가?”

“숭산(오조 홍인 대사가 중생을 제도하던 곳)에서 왔습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什麽物恁麽來〕?”

남악 회양 선사는 그 질문에 뭐라고 답변해야 할지 막막하였다. 남악 회양 스님이 그 후 8년 만에야 그 뜻을 깨치고 나서 이렇게 사자후를 토했다.

“설령 한 물건〔有一物〕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

남악 회양 스님은 자신의 본성을 보는 견성(見性) 체험을 통해 육조 혜능 스님의 인가를 받게 되었다.

기실, 본래면목(本來面目)이니, 불성(佛性)이니, 주인공이니, 무일물(無一物)이니, 본지풍광(本地風光)이니, 본분전지(本分田地)니, 무위진인(無位眞人)이니 하는 표현은 결국 마음이라는 말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육조 혜능 스님은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서문에서 아래와 같이 설한 바 있다.

“나한테 한 물건이 있으되 하늘을 바치고 땅을 괴고, 밝기는 해와 달보다 밝고 검기는 칠보다 검고, 이 물건은 나와 더불어 있지만 미처 거두어 얻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무엇인가〔有一物 無頭無尾 無名無字 上柱天下柱地 明如日黑似漆 常在動用中 動用中 收不得者 是甚麽〕?”

노승은 능선에게 무자(無子) 화두를 내리면서 그 교육방법으로 마음속으로 심우도(尋牛圖)를 그리고 지시한다.

능선에게 가장 그리운 대상은 어머니이다. 노승은 창호지에 뚫어 놓은 바늘구멍을 뚫어져라 쳐다보면 소를 타고 오는 어머니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잠시 <심우도>의 본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斫來無影樹 燋盡水中漚
可笑騎牛者 騎牛更覓牛

그림자 없는 나무를 쪼개다
물속의 물거품을 태우니
어허! 우습도다. 소를 탄 사람이
소를 타고서 다시 소를 찾다니!

<심우도>를 제재로 한 혜감(慧鑑) 국사의 선시이다. <심우도>는 다른 말로는 <십우도>라고도 한다. 다소 이견이 있으나 <십우도>는 확암(廓庵) 지원(志遠)이 지은 것으로 전하고 있다. 확암은 소를 찾는 과정을 열 단계로 나눴다. <십우도>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십우도>는 ‘심우(尋牛)’로 시작한다. 동자가 망과 고삐를 들고 소를 찾기 위해 산속을 헤매는 내용이다. 이는 발심한 수행자가 본래면목을 찾으려고 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다음 단계는 ‘견적(見跡)’으로 동자가 소발자국을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고양이가 쥐를 잡듯 열의를 갖고 용맹정진하다 보면 본성을 어렴풋이나마 보게 된다는 뜻이다.

세 번째 단계는 ‘견우(見牛)’로 동자가 멀리서 소를 발견하는 내용이다. 본성을 찾는 것이 눈앞에 다다랐음을 뜻한다.

네 번째 단계는 ‘득우(得牛)’로 동자가 소를 붙잡아서 막 고삐를 끼는 내용이다. 흔히 선종에서는 말하는 견성(見性)의 상태를 일컫는다.

다섯 번째 단계는 ‘목우(牧牛)’로 거친 소를 길들이는 내용이다. 삼독심을 없애는 보임(保任)의 단계이다.

여섯 번째는 ‘기우귀가(騎牛歸家)’로 동자가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면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내용이다. 이제 소는 특별한 지시를 하지 않아도 동자의 뜻대로 나아가게 된다.

일곱 번째 단계는 ‘망우존인(忘牛存人)’으로 집에 돌아와 보니 애써 찾은 소는 온데 간 데 없고 동자만 남아있다는 내용이다. 이는 소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므로 목적지인 고향집〔本鄕〕에 돌아왔으면 소를 잊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덟 번째 단계는 ‘인우구망(人牛俱忘)’으로 동자가 자신마저도 잊어버리는 내용이다. 소를 잊었듯 동자도 자신을 잊어야 비로소 완전한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아홉 번째 단계는 ‘반본환원(返本還源)’으로 일원상의 자연에 동자가 하나가 된다는 내용이다. 온전한 깨달음을 이루고 나면 자연과 합일돼 어떤 행동을 해도 자연에 거슬리지 않게 된다는 의미이다.

마지막 단계는 ‘입전수수(入廛垂手)’로 동자가 큰 포대를 메고 저자거리로 가는 내용이다. 여기서 큰 포대는 중생에게 베풀어줄 복덕을 담은 포대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중생제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란〉에서 능선이 바늘구멍으로 바깥을 바라보는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밤이 가고 아침이 오고 또 밤이 가고 아침이 왔다. …… 마침내 아이 눈에 외계(外界)의 사상(事象)이 조금씩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이 보이고 안개가 보이고 구름이 보이고 놀이 보이고 햇빛이 보였다. 햇빛을 베이며 지나가는 바람이 보였다. 바늘구멍에 눈을 붙인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아이 몸뚱이는 엷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밥을 넣어주려고 협문을 열던 노승이 심우삼매(尋牛三昧)에 빠져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얼른 문을 닫았다. …… 마침내 아이 눈에 사물의 구체적인 모습이 조금씩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넓은 절 마당이 한눈에 들어왔다. <중략> 콩알은 조금씩 조금씩 커지기 시작해서 이윽고 목어만 해졌는데, 새였다. 참나무 장작불처럼 빨갛게 타오르는 놀이 소낙비처럼 퍼부어 내리고 있었다. 그 새는 타는 놀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나래를 풍선처럼 부풀어 올리더니 힘차게 깃을 치며 허공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능선이 바늘구멍을 통해서 본 것은 일종의 환영(幻影)이다. 환영은 환영이되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 진공묘유(眞空妙有)의 환영이다. 그런 점에서 <만다라>의 ‘병 속의 새’라는 화두를 푸는 열반식 장면과 매우 유사하며, <피안의 새>에서 상징되는 ‘새’의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능선이 보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환영을 통해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작란(作亂)에 지나지 않음을 넌지시 말하고 있다.

노승이 붙들고 있는 화두도, 노승이 능선에게 내린 화두도 무(無)자 화두이다. 그리고 무자 화두의 해답은 무아(無我)에 있다. 나 혹은, 내 것이라는 소아(小我)적 사고를 버리면 자연스럽게 타자의 연민이 싹 트게 되고, 그리하여 자비심이라는 대아(大我)적 인식에 눈 뜰 수 있기 때문이다. 〈산란〉에서 동승의 법명이 능선(能善)인 것도 연장선상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선한 마음에 능동적으로 임하라는 뜻이 된다. 능선은 노승의 상좌이니 능선의 법명 또한 노승이 지어주었을 게 자명하다. 노승은 왜 이런 이름을 지어준 것일까? 선(善)한 마음에 임하는 것이 바로 선(禪)의 경계에 드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보영 평론가는 “김성동의 불교소설의 검토에서 앞서 언급해둘 것은 그 제목의 의미이다. 〈산란〉은 작중 사건 자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이 작품의 분위기는 능선이라는 동승의 인상과 작은 새의 동작이나 울음소리 등으로 인하여 여리고 청초한 산란을 연상시킨다. 〈산란〉이라는 제목은 화두나 선문답의 비약적인 암시법을 빌려 쓴 예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연장선상에 작가는 왜 작품의 제목을 <산란>으로 했는지, 그리고 ‘산란’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견이지만 모정의 그리움에 못견뎌하는, 그런 까닭에 어머니와 관세음보살과 보살을 동일시하는 능선의 마음, 그 영원한 노스탤지어가 산란이요, 노승과 능선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선적인 가르침이 산란이요, 속세에 두고 온 육신의 정을 잊지 못해 산사에서 정부(情夫)와 성교를 보살의 행위도 산란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노승과 능선의 관계, 능선과 보살의 관계, 그리고 보살과 정부의 관계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노승이 추구하는 선적 깨달음과 능선이 그리워하는 모정은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노승과 능선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성(聖)의 영역과 보살과 정부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속(俗)의 영역의 경계는 어디인가?

물론,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도 무(無)자 화두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유응오 | 소설가. 전 주간불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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