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도 보았듯이 원효는 학승(學僧)으로서 높이 평가되지만, 당시 왕실 중심의 귀족화된 불교를 민중불교로 바꾸는데 ‘민중교화승’으로서도 크게 공헌하였다. 또, 종파주의적인 방향으로 달리던 불교이론을 고차원적인 입장에서 회통(會通)시키려 하였는데 그것을 우리는 오늘날 특화(特化)시켜 ‘원효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이라 부른다. 화쟁사상은 그의 일심사상(一心思想)·무애사상(無礙思想)과 함께 원효사상을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사상은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하여 헤아리기 어렵지만, 항상 ‘하나’라는 구심점을 향하였고, 화쟁을 제창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원효의 시대에 한반도에는 층을 달리하는 다양한 불교이론들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대승불교 이론의 두 축인 중관(中觀)과 유식(唯識)을 비롯하여, 반야·열반·법화·화엄 등의 고급스러운 불교 이론도 소개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모든 불교 전적의 이론들을 ‘붓다의 육성’으로 간주했던 당대인들은 그 다양성과 이질성에 곤혹스러워 했다. 다시 말해서 저마다 자기 이해가 옳다고 다투며, 자기가 선호하는 불교이론이 최고라고 쟁론하는 사람들로 인해, 사상계는 분열과 혼란을 겪고 있었고, 이 중에서도 중관과 유식 학파 사이의 교리적 대립이 쟁론의 주역이었다. 이 점 동시대 중국 대륙에서의 불교 이론과 수준에 시차(時差)없이 부응한 신라의 사상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관학파(中觀學派)는 모든 집착을 깨뜨리고 깨뜨려, 깨뜨리는 주체와 깨뜨려지는 대상을 모두 부정하는 논리를 전개한다. 그 결과 논리 자체까지도 부정하는 공(空)의 방향을 추구하게 된다. 이것에 대해서 유식학파(唯識學派)는 주관적 인식대상은 비록 공(空)하지만 인식 자체는 없다고 할 수 없으므로, 모든 법은 유(有)와 무(無)에 통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깨뜨리는〔否定〕 데에 기울어진 것이 중관학파라면, 반면에 세워 놓는〔肯定〕 데에 기울어진 것이 유식학파이다.

대승불교 교학의 양대 기둥인 중관과 유식은 모두 공(空)에 도달함을 궁극적인 목표로 한다.1) 중관은 연기(緣起)=>무자성(無自性)=>공(空)의 도리에 입각하여 세속 내에서 세속의 공성(空性)을 획득하고자 한다. 그 결과 부정이 주요한 논리로 등장한다. 유식은 세속을 미망(迷妄)의 자기(自己), 즉 중생들이 만들어내는 인식의 결과〔遍計所執性〕로 본다. 그 결과 존재는 다른 존재들에 의존해 연기적(緣起的)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함으로써 원성실성(圓成實性), 즉 완전하게 성취된 자성(自性)인 공성(空性)을 성취한다.

다시 말해 양 학파는 모두 진실한 공(空)을 추구하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서 중관은 공과 연기의 교설에 의거하여, 논리적으로 작동되는 우리의 사유 그 자체를 모두 비판하는 철저한 절대부정의 방법을 택한다. 반면에 유식은 전식득지(轉識得智), 즉 번뇌로 인하여 오염된 망집을 수행의 힘으로 정화하고 전환하여 지혜를 증득하는데 ‘인식(認識)의 전환(轉換)’에 힘을 기울인다.

원효는 중관과 유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가장 합리적인 도리를 인도인 마명(馬鳴)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독특한 견해를 개진한다. 원효는 《대승기신론별기(大乘起信論別記)》에서 중관과 유식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관론 등은 깨뜨리고 깨뜨려 세울 길이 없으니, 이것은 가고는 두루 하지 못하는 논이요, 유식론 등은 세우고 세워서 깨뜨릴 길이 없으니, 이것은 주고는 빼앗을 줄 모르는 논리이다.”

또 원효의 견해에 의하면, 중관과 유식은 종파적 집착에서 오는 문제뿐만 아니라, 보다 깊은 곳에서 이론적 문제를 안고 있다. 중관은 모든 분별을 파할 수 있지만 발생의 능력이 없고, 유식은 모든 법을 발생할 수 있지만 파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다 같이 인간의 현실세계를 벗어나는 출세간적 방향일 뿐, 궁극적으로는 다시 중생세계로 전환할 이론에 결함을 갖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원효는 《대승기신론》이야말로 이러한 두 가지 결점을 모두 지양한 논리로서, “세우지 않음이 없으면서 스스로 빼앗아 버리고, 깨뜨리지 않음이 없으면서 여전히 허용한다. 궁극적으로는 주면서 빼앗는다. 이것은 모든 논의 조종(祖宗)이요, 모든 쟁론의 평정시키는 주인”이다 하였다.

원효에 의하면 《대승기신론》의 내용은 크게 한 마음에 두 가지 문이 있다는 일심이문(一心二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진여문(眞如門)은 마음의 참된 그대로의 모습을 강조하는 문으로서 중관사상과 연결되고, 생멸문(生滅門)은 마음의 변화하고 움직이는 면을 강조하는 문으로서 유식사상과 연결된다. 이렇게 본다면 이제까지 대립해 오던 중관과 유식이 《대승기신론》에 이르러 비로소 하나의 마음으로 종합될 수가 있다. 다시 말해서 중관·유식이 한 마음이요, 한 마음이 곧 중관·유식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상체계는 한 마음의 양면을 나타낸 것일 뿐이다.

《대승기신론》이 중관·유식 두 사상의 조화라고 보는 원효의 관점과 재해석은 아뢰야식의 이의성(二義性)에 의해 업상(業相)·전상(轉相)·현상(現相)의 미세한 마음〔三細〕이 아뢰야식의 자리에 있다는 그의 천명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대승기신론》에 대한 원효의 독특한 주장은 자신의 깨달음이 이루어진 뒤 열반에 홀로 안주할 것이 아니라 중생의 깨달음을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부주열반(不住涅槃)’의 사상으로 완성된다. 또한 이 ‘부주열반설’은 깨달음을 이룬 불·보살이나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 할 것 없이 그 본래의 마음은 청정하다는 ‘하나의 마음’ 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원효의 입장은 신라의 삼국통일기 전후에 흐트러진 신라 사람들의 마음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한국불교는 그 시원(始原)과 본태(本態)를 말할 때, 원효의 일심사상(一心思想)과 화쟁사상(和諍思想)을 든다. 주지하듯이 고려 보조 지눌의 정혜쌍수(定慧雙修), 조선 청허 서산의 선교일치(禪敎一致) 사상 등은 원효의 일심과 화쟁을 시대적 특성과 맞추어 계승(繼承)하되 변주(變奏)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화쟁과 일심은 물질과 정신, 보편과 특수, 유물과 유심,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등 지구상에 존재하였고 앞으로 존재할 모든 것〔相〕에 대한 원효의 처방이자 불교적 진단이다. 그것은 다원(多元)과 공존(共存), 원융(圓融)과 화해(和解)의 메시지이기도 하며, 일원(一元)과 편견(偏見), 고집(固執)과 독단(獨斷)에 대한 경고이이기도 한다. 구체적으로는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고집하는 인류에 대한 묵시론적(黙示論的)인 경고이다.

《금강경》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환영이다”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일체의 모든 유위법이 꿈·환영·거품·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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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의할 것은 공(空), 혹은 공성(空性)은 실체(實體)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공(성)이라 함은 어떤 존재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의 독립적이고 불변적인 속성으로서의 자성(自性)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성)은 내외의 모든 존재에서 자유롭다. 상(相)은 이 자유를 방해하는 모든 것이다.

이덕진 | 창원 문성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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