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世界)는 원래 인간들이 사는 세상[世間]과 인간 이외의 존재자들이 사는 세상[器世間]을 통칭하는 불교 용어지만, 이제는 특히 세계화라는 개념으로 확장되어 폭넓게 사용되는 일상어가 되었다. 각 국가들 사
이의 거리가 좁혀지고 많은 것들을 서로 의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을 처음에는 지구화(globalization)라고 부르다가, 국제교역 등으로 세계의 경제권이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는 현상을 강조하는 것을 계기로 세계화라는 말이 더 널리 사용되고 있다.

세계화는 물론 경제현상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시장의 확대와 함께 인터넷 기반 소통구조가 정착하면서 즉각적인 정보 전달과 사회연결망서비스(SNS)를 통한 상호소통구조의 정착으로 지식과 가치의 교환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더 나아가 중국의 오염된 공기가 우리 미세먼지 농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의 세계화 또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세계윤리는 이러한 세계화의 과정 속에서 지켜져야 하는 보편적인 도덕규범과 관련 논의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윤리는 곧 보편윤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지만, 전자는 세계화라는 현상을 전제로 성립된다는 점에서 일정한 차별성을 지닌다. 이 세계윤리는 인권, 정의, 평화 등으로 구체화된다. 최근에 나타난 난민 사태는 인권 문제임과 동시에 세계적인 차원의 정의 문제이고, 자칫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사태도 바뀔 수도 있을 만큼 세계윤리의 주제는 복합적인 특성을 지닌다.

달라이 라마는 존경받는 세계적인 종교지도자이지만, 동시에 세계윤리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윤리에 관한 관심을 촉발시키고 자신이 앞장서서 실천하기도 한다. 점점 더 더워지는 지구를 위한 기후변화 협약 체결을 촉구하기도 하고, 난민에 대한 경제선진국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하기도 한다. 자신을 억압하고 있는 중국을 향해서도 지속적인 대화를 제안하면서 평화의 사도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이러한 세계윤리의 정신을 전파하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은 물론 고통이 있는 곳이면 기꺼이 찾아가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에 관한 세계인들의 관심을 촉구함으로써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세계를 움직이는 정신적인 지도자로 존경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은 그 달라이 라마가 오지 못하는 희귀한 장소 중 하나다. 이미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예수의 사람을 몸소 보여준 점을 떠올리면 안타까움을 넘어 황망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불교는 그리스도교와 함께 대표적인 종교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그것도 전통에 뿌리를 둔 전통종교로서의 확고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그런 위상을 지닌 불교가 요즘 비상식적인 언론탄압이나 급속한 자본주의화의 물결 속에서 정치 전략과 전술이 난무하는 장기적인 종권 쟁취 시도 등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쉽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맑은 샘물을 목마른 사슴처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디에서도 그런 눈 밝은 선지식을 찾기 어렵다. 과문한 탓도 있을 테지만, 그보다는 정말 그런 분들이 계시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올해는 달라이 라마의 방한이 꼭 이루어지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 현실 속에서 중국과의 관계가 지니는 무게를 모르지 않지만, 그것 또한 상호적인 것이어서 우리가 하기 나름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불교계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인식시키면서 중국을 설득해나갈 수 있고, 그것이 중국과 티벳의 관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필자는 수십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한·중 윤리학회 공동세미나를 통해 중국 또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정신적인 공백 또는 지체 현상으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달라이 라마 방한이라는 계기를 통해 한국과 중국 모두가 그 정신적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차가운 샘물을 선물 받을 수 있기를 마음 간절하다.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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