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개인과 일가족의 생계와 생활을 돕는 거라면
직무는 운명의 지렛대가 되고 날개를 만드는 일이지.
직업을 커리어career라 부르는 이유가 경유했던 직무경력을 고스란히 담아 서듯이,
직업의 또 다른 표현인 calling소명에는,
사회공동체의 공진화를 함께 이뤄야한다는 책임이 새겨져 있어.

행운의 지렛대가 빼곡히 기록된 이력서로 출세가도를 달리던 사회지도자들이,
인사청문회 앵글에만 잡히면 예외 없이 날갯죽지가 꺾이듯 초라하게 낙마하는 건.
직위를 이용해서 신분상승을 꿈꾸다 그만 사회적 신뢰를 저버렸기 때문이야.
가난한 어린 시절에 직업의 소명을 배우지 못해 국민정서를 불신과 분열로 치닫게 해서지.

20세기를 살았던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들 등줄기에다 깊게 심어둔 욕망을 되돌아 봐야 해.
더 나은 자신을 만들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동그란 일이 업의 참 모습인데도,
남을 이기려면 더 빨리 달리고 손에 움켜쥔 건 절대 놓치면 안 된다고 다짐시키니까,
직업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고 치부의 매개물쯤으로 생각하게 된 거잖아.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꼭 맞는 말은 아니야.
종목을 말하는 직職은 그렇지만 업業에는 분명히 귀하고 천함이 있지.
서민의 상향의지를 꺾는 천민자본주의는 국가 운명을 파장罷場으로 내몰으니 악업이지만,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선업의 파장波長은 사회를 따뜻하게 덥히거든.
SNS와 CCTV 망으로 뒤덮인 지식정보시대가 찾아온 건,
미몽에서 깨어나 윤리의식으로 품위를 지키는 직업인이 되어보라는 기회인 거야.

엄도경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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