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매우 추워 난로를 찾으니 보이지 않고, 땔감을 찾던 중 법당 안에 모셔진 목불상을 발견했다. 그래서 목불을 안고 나와 모탕 위에 놓고 쪼개 군불을 지피고 있는데 마침 혜림사의 원주가 보고는 깜짝 놀라 단하를 비난했다. 단하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사리가 혹 나오나 해서…” 원주가 말하길 “나무에 무슨 사리가 있겠소.?” 단하가 대답했다. “사리가 나오지 않으면 부처가 아닐 것이요, 그렇다면 나를 책망할 게 없지 않소.” 원주는 할 말을 잃었다.

《전등록》 제14에 소개되는 공안이다.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선사는 당(唐)나라 때 사람으로 석두희천선사에게 머리를 깎았으며 마조도일의 법제자다.

어느 추운 겨울 날 혜림사라는 절에 들렀다가 이 같은 일화를 남기게 된다. 날씨는 추운데 방에 불을 지펴주지 않자 단하선사는 법당에서 목불(木佛)을 들고 나와 불쏘시개로 썼던 것이다. 원주란 절의 살림살이를 맡고 있는 소임을 말한다. 단하는 싸울 듯 달려드는 원주의 분노를 사리(舍利) 문답을 통해 시원하게 해소하고 있다.

단하는 이 일화를 통해 허상(虛像)과 우상(偶像)의 그릇됨을 일깨워주고 있다. 특히 법을 닦고 실천하는 일보다 우상에 길들여지고 있는 사찰의 예배의식에 경종(警鐘)을 울렸다. 물론 우상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불교가 우상을 통해 사법(邪法)으로 빠진다면 우상은 타파해야 할 대상이다. 불상은 단지 예배의 대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영이(靈異)와 신비(神祕)한 힘을 주는 대상으로 착각한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애초 불상은 그리움이 너무 사무쳐 예배 대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함경》 등 불전에 의하면 불상은 처음 코삼비국의 우다야나 왕이 향나무로 부처님을 조각해 조상(造像)됐다. 입적하신 부처님이 너무 보고 싶었고, 그 분에 대한 존경심을 아침저녁으로 예로서 표현하고 싶은 욕구에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불상은 단순한 예배대상이 아니라 복과 가피(加被)를 안겨주는 우상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한국불교라고 예외가 아니다. 무엇보다 사찰이 자본주의에 예속되고 출가승려들의 경제적 욕구가 강해지면서 불상은 돈을 끌어 모으는 주효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다시 말해 예배를 넘어서 기복(祈福)의 우상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불상은 시대의 정서와 문화를 표현해내지 못한 채 옛 것의 모양에 머무르고 있다. 중생이 무엇에 목말라하는지 왜 아파하는지 알 바 아닌 채 오로지 잔잔한 미소만을 머금고 있을 뿐이다. 금(金)으로 덮인 외양(外樣)은 이 시대 중생의 삶과 거리가 멀다. 이는 중생이 그리움에 사무쳐 만든 불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복과 가피를 빌며 돈으로 빚어낸 불상이기 때문이다.

한국불교의 지도자 반열에 있는 권승(權僧)들과 범계승(犯戒僧)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불상이 영험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이런 저런 불보살조성불사를 전개해 신도들로부터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 갈 금품을 마련한다. 정재(淨財)를 더럽히고 있지만 자신들이 만든 불보살상 앞에 참회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영험이 전무한 불상이란 걸 진즉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직 승려 출신 소설가 김성동씨는 그의 문단 등단작품이기도 한 장편소설 《만다라》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 묘사를 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지산 스님은 표정이 일그러진 목불만을 조각하는 도반에게 “왜 온화한 미소의 상이 아니냐?”고 묻는다. 도반이 답한다.
“중생들이 아파하는데 부처님이 어찌 마냥 웃고만 있을까?”

우리 주위에 있는 가짜 부처의 형상은 제거해 내는 것이 옳다. 불교의 미래를 진정 위한다면 단하선사가 불쏘시개로 사용했듯 가짜 불보살 형상은 불태워 버리는 게 맞다. 하물며 무늬만 승려인 범계승과 권력승이야 말해 뭣하리.

-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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