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형상이 □와 △, ○인 까닭은
삶의 터전인 땅과 어느 날 되돌아가야 할 하늘 사이에서,
아홉 개의 구멍 때문에 벌어지는 생존과 존재의 외줄타기에서 △▼의 흔들림을 뒤로 하고,
결연코 동그라미를 향해 △꼴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메타포이지.

‘텅 빈 육체’의 결핍된 욕구가 경제성장을 이루었는데 점점 사회갈등이 깊어만 가는 것은,
‘근대적 욕구’와 ‘현대적 요구’사이에서,
21세기에 어울리는 현대인이 되라고 촉구하는 거야.
억압과 배고픔의 설움을 극복한 근대화는,
남에게 부끄럽지 않고 또 남부럽지 않는 부유함을 상징하였기에 빈 □에 더하고 곱한 것인데,
이제 1차 목표를 이룩하였으니 물질에서 초월하라고 요구하는 거야.

‘욕구’와 ‘요’구는 사실 문 하나 열고 닫는 차이이지.
몸에 있는 구멍이 벽壁이라기보다 안팎을 연결해서 흐르게 하는 ‘문’이라 볼 때,
세상을 향해 문을 열어 따뜻한 관계를 생성하는 ‘여백’의 기회거든.
유한한 자신小我이 성취할 수 없는 꿈을 무한한 대아大我, 직장과 사회가 도울 것이기에,
주인의식을 갖고
묻고問 경청하며聞 아름다운 결합의 무늬紋의 조직문화를 짜라는 얘기지.
현대인에게 부족하다는 ‘다양성과 공존하는 삶의 기술’을 펼치면서 하늘로 오르라는 거야.

엄도경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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