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종단 50년의 성찰과 모색’을 주제로 열린 종단화합과개혁을위한사부대중위원회 열린 세미나. <사진=불교플러스>

만해는 저서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대처육식을 주장했다. 대표적인 항일독립운동가인 만해가 일본불교를 상징하는 ‘대처’를 주장한 것이다. 만해는 한 때 친일을 한 것인가? 아니면 학계의 일반적 평가처럼 “일본불교의 침략적 정체를 몰랐다가 나중에 그 사실을 깨닫고 항일독립의 길로 나아간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불교를 근대화하기 위한 소신이었을까?

조성택 고려대 교수의 ‘근대 한국불교사 기술의 문제 - 민족주의적 역사 기술에 관한 비판’은 한국 근현대불교사를 전통불교수호와 항일 민족주의 관점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학계의 시각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조 교수는 이 논문을 ‘종단 화합과 개혁을 위한 사부대중위원회’가 ‘조계종단 50년의 성찰과 모색’을 주제로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2시 전법회관 지하교육관에서 개최한 ‘열린 세미나’에서 발표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한국학계의 일반적 근현대불교사 기술은 민족주의적 관점에 근거하고 있으며, ‘일본의 한반도 진출에 맞서기 위해 항일민족주의 불교가 등장했으며, 해방 후 식민지불교의 잔재인 대처승을 교단에서 몰아내는 정화운동을 통해 1962년 민족불교의 정통성을 잇는 조계종이 재탄생했다’는 한국불교사 서술은 이러한 관점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 교수는 마이카 아워백(Micha Auerback)의 실증적 연구 결과를 근거로 “근대한국불교를 친일과 항일이라는 현재 관점에서 벗어나 당시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대처 논쟁은 친일과 항일의 문제가 아니라 계율과 불교의 사회적 기능을 둘러 싼 전통주의자와 개혁주의자들의 논쟁이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근대불교연구자들은 대처 문제를 ‘일본에 대한 협력’, ‘불교전통에 어긋나는 파계 행위’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봤기 때문에 이 문제를 근대적 유용성을 확보하려는 ‘불가피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조계종단의 성립을 근대한국불교의 완성으로 기술함으로써 식민시기 동안 한국불교의 다양한 근대화 노력들에 대한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도외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그 근거로 근대 한국불교계가 가지고 있던 딜레마에 주목했다.

조 교수는 당시 사회의 주류 담론이 문명개화를 통한 근대사회로의 진입이었듯이, 근대한국불교의 선행관제는 근대라고 하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전통종교인 불교가 근대적 유용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었다고 보았다. 과학과 합리성이라는 근대적 가치를 증명하기 우해 불교를 ‘철학’으로 규정하거나, 기독교의 사회복지 활동에 자극받아 병원 설립, 교도소 교화 등 복지사업을 시행했던 것 등이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과감한 개혁적 제안들이 등장하는데, 이를테면 만해의 대처육식, 염불당 폐지, 근대적 승려 교육 등이 그것이다. 조 교수에 따르면 만해는 대처를 불교 근대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변화일 뿐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해치는 일로 보지는 않았다. 만해는 일본불교의 문제는 국가주의적 성격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조선불교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총독부의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만해가 끊임없이 정교분리를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근대한국불교는 급변하는 사회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고자 했으며, 근대화 후발주자인 불교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와 일본불교는 종교의 사회적 유용성이란 측면에서 볼 때 선진적 모델이었다”는 것이 조 교수의 지적이다.

반면 조 교수는 “일본불교와 구별되는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 또한 한국불교계에 주어진 과제였다.”고 지적했다. 1919년 3·1운동을 통해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갈등을 경험하면서 한국불교계는 일본불교를 근대불교의 선진적 모델로서만 인식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근대적 유용성과 정체성이라는 두 과제는 상호배타적 관계로 인식되고 두 과제에 대한 절충과 조화의 시도가 지속적인 운동으로 이어지기 어려웠다.”는 것이 조 교수의 평가다.

조 교수는 이어 “식민지 상황 아래에서 ‘근대화’와 ‘한국적 정체성’의 문제가 ‘왜색불교’와 ‘민족불교’로 단순화되는 과정은 조계종단의 성격과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른바 비구-대처 갈등을 대처제도를 현실로 인정함으로써 포교(대처)와 수행(비구)의 제도화를 통해 ‘근대적 유용성’과 ‘한국적 정체성’을 이루고자 하는 다수파와 ‘대처는 일본불교이며, 비불법이며, 불법을 훼손하 불교’라는 신념을 지년 소수파 비구의 갈등으로 보았다.

조 교수는 “‘한국적 정체성’과 ‘근대적 유용성’의 두 과제가 ‘민족불교’ 대 ‘왜색불교’의 구도로 왜곡 ·변질되는 과정에서 조계종이 전통복고의 길을 택함으로써 ‘전통 불법의 수호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근대적 유용성을 모색하던 한국근대불교의 다양한 시도와 노력들이 친일과 민족, 혹은 파계 대처와 청정 비구의 대립적 구도 아래에서 역사의 전면에서 일단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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