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과 인접한 장소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병사들은 돌아갈 곳이 있다는 허약한 생각에 목숨을 걸려고 하지 않는다. 반대로 적의 심장부에 투입되거나 사지(死地)에 떨어져 물러날 곳이 없다고 상황을 받아들이면 죽을 각오로 전투에 임하게 된다.
이 같은 이유로 적진 깊숙이 들어가고자 할 경우, 강을 건넌 다음 배를 불살라 없애고 밥을 해먹은 뒤에 가마솥을 부수어 버리는 분주파부(焚舟破釜)의 전법이 지혜로운 장수들에게 애용되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죽음에서 소생하는 대책도 없이 막연하게 병사들을 곤경으로 몰아넣기만 한다면 어리석고 잔혹한 리더에 불과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행의 전장에서도 차갑게 식은 잿더미 속에서 콩을 튀게 하고 고목에서 꽃을 피우는 활기를 불어넣지 못하면서 아무렇게나 상대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기만 하는 선사는 종사로서의 자격이 없다.
옛날에 어떤 노파가 한 선사에게 20년 동안 공양을 올리면서 항상 이팔청춘 딸로 하여금 음식을 날라 시봉하도록 했다. 어느 날 그 딸에게 선사를 꼭 끌어 앉고 “이럴 때 기분이 어떠십니까?”라고 물어 보도록 시켰다. 선사가 말했다. “고목이 싸늘한 바위에 기대니, 늦겨울에는 따뜻한 기운이 전혀 없는 법이니라.” 노파가 이 말을 전해 듣고 “내가 20년 동안 속물에게 공양을 바쳤구나.”라고 한탄한 뒤 그 선사를 쫓아내고 암자를 불태워 버렸다.1)
화두 이야기의 전략에 어두운 자들은 이 공안을 보고, 활발한 작용이 없는 선정(禪定) 또는 음침한 경계에서 헤매는 선정 등으로 그 선사의 격을 깎아내린다. 그러나 이것은 공평한 안목이 아니다. 그와 같은 견해로는 노파와 선사가 같은 길을 추구하는 동지였다는 옛 사람들의 안목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
서둔정초(西遯淨超)는 이러한 편견을 집어내어 다음과 같이 비평했다. “지금껏 노파의 입장을 떠받치고 선사의 그것을 억누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노파가 ‘속물’이라 한 말이 세상 사람들을 향해 욕을 한 것이고, 선사가 쫓겨난 것은 세상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린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노파와 선승은 세상 사람들을 현혹한 공모자였던 것이다. 하늘을 찌를 만한 노파의 기개도 가상하지만 선사가 싸늘한 바위로 그 혈기를 눌러주지 않았던들 노파의 전략도 효과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노파가 결사적으로 한 국면을 선택하여 승부수를 던졌을 때 선사는 그 반대편에서 제대로 맞받아 쳤다. 노파가 굶주린 자의 밥그릇을 빼앗고 배를 불태우는 수법을 펼쳤다면, 선사는 밭가는 농부의 소를 탈취하고 가마솥을 부수어 버리는 수단을 부렸던 것이다.
노파를 장군으로 보고 선사를 사졸(士卒)로 여긴다면 이 장기의 판세를 바르게 읽을 수 없다. 이들은 서로의 수를 꿰뚫어 보는 맞수였기에 아무리 상대의 공격이 치밀해도 서로 예각을 피하며 판을 엮어갔고, 그에 따라 승부가 갈라지지 않는 팽팽한 접전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한 편은 칭찬 받을 자격이 있고 다른 한 편은 비난 받을 잘못을 저질렀다는 발상은 본질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다.
백암부(白巖符)선사도 “밝은 대낮에 아무 말도 못하게 혀를 꺾은 것은 노파의 기량이고, 어두운 밤에 입에 박힌 가시를 뽑아낸 것은 선사의 솜씨이다”라고 두 사람 모두에게 공평한 점수를 주었다. 무이원래(無異元來)의 게송이다.

온갖 꽃들로 우거진 숲에 몸 들여 놓지 마라.
인간세의 수많은 사람을 마구 빠뜨렸다네.
그 선사가 남기고 간 뜻을 알고자 하는가?
부드러운 천 속에 단단한 바늘이 숨어 있노라.

 

萬花藂裏不沾身
陷殺閻浮多少人
欲識者僧行履處
軟綿團內有剛鍼 

 

선사가 여자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청정한 수행자의 전범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할 뿐이라면 암자를 불사른 노파의 공은 헛된 결과가 될 것이며, 그 ‘바늘’의 따끔한 맛도 모르고 지나갈 것이다. 노파와 선사는 각각 송곳과 끌의 쓰임세가 다르듯이 차별된 장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0년 동안 청정하게 고행하던 지족(知足)선사를 시험에 빠뜨려 파계토록 하고 결국 토굴을 떠나게 만든 황진이를 보라. 그녀는 자신의 유혹에 동요하지 않았던 화담 서경덕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흡족한 느낌을 가졌고 지족선사 따위는 까맣게 잊어 버렸다.
그러나 황진이는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는 선비의 절조만 귀하게 여겼을 뿐 박연폭포를 거꾸로 타고 기어오른 선사의 기량에 놀아난 자신의 신세는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진이가 도덕 교과서풍의 선과 악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조금 모자라다.
자신도 모르게 진이는 지족과 화담 사이에 벌어졌던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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