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오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아킬레우스의 분노〉 (왼쪽)와 같은 화가의 〈아킬레우스의 정부 브뤼세이스를 아가멤논에게 인도하는 에우리바테스와 탈티비오스〉

1.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동이마다 술을 가득 담아 와서는 먼저 술잔에 조금 부어 헌주하게 한 다음 빙 돌아가며 각자에게 제 몫을 따라주었다. …… 신도 듣고 마음속으로 기뻐했다.”1)

트로이 전쟁은 처음의 의욕과는 달리 지루한 지구전이 되어가고 있었다. 전쟁이 발발한지 10년째. 위기는 엉뚱한 곳에서 찾아왔다.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 동맹국들과의 전투에서 얻은 전리품을 나눌 때, 아폴론 신전의 신관 크뤼세스의 딸 크뤼세이스가 아가멤논의 몫으로 주어졌다. 크뤼세스는 딸의 몸값으로 많은 보물을 들고 아가멤논을 찾아와 정중하게 크뤼세이스를 돌려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아가멤논은 한 마디로 거절하며 모욕까지 주었다. 크뤼세스는 수치와 분노에 떨며 집으로 돌아가 아폴론에게 빌었다. 크뤼세스의 기도에 응답하여 아폴론은 그리스군에 화살을 쏘았다. 9일 동안 화살은 쏟아졌고, 그리스군 진영엔 역병이 창궐했다. 수많은 병사들과 군마와 가축들의 시체가 쌓여갔다. 10일 째 되는 날, 회의석상에서 재앙이 아가멤논이 크뤼세스에게 모욕을 주고 그의 딸을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예언자 칼카스로부터 나온다. 이에 아가멤논은 화를 내며 크뤼세이스를 보내주는 대가로 브뤼세이스를 갖겠다고 한다. 브뤼세이스는 아킬레우스의 몫으로 분배된 여자였다. 이 글을 읽는 여성독자들은 화내지 마시라. 당시에 여자는 재산이며 중요한 전리품이었다. 영화 《트로이》에서는 아킬레우스와 브뤼세이스 사이에 애틋한 사랑이 있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이 둘 사이의 애정 여부는 사실과 아무 관계가 없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한 여인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지도자가 저지르는 어처구니없는 행태 때문이었다. 크뤼세이스를 내놓는 것을 아까워하는 아가멤논을 향해 아킬레우스는 말한다.

“함락한 도시들에서 노획한 전리품들은 이미 분배가 끝났고
백성들에게서 그것을 도로 거두어들인다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오.”2)

자기 몫을 내놓아야 하는 게 억울하다고 해서 남의 몫을 빼앗는 행위는 옳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총사령관이 되어서 사적인 욕망으로 분배정의를 깨는 행위는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이런 아가멤논을 향하여 아킬레우스는 질타한다. “오오, 그대 파렴치한 자여, 그대 교활한 자여!”3)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 주어라! 이 금언(金言)은 비단 《일리아스》만이 아니라, 플라톤에도, 아리스토텔레스에도, 수시로 튀어나온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이런 관념은 하나의 상식이었고 당연한 관습이었다. 그들이 그토록 노래한 운명도 각자의 삶에 주어진 각자의 몫이었다. 오이디푸스가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 ―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는 삶 ― 을 그토록 회피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운명의 지침대로 살게 되는 것도 주어진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가 명예를 얻는 대신 짧은 생을 대가로 치러야 하는 것도 그의 몫이고 운명이다.

2. 국가의 기원

각자의 몫이라는 개념은 매우 강한 개인주의를 띠고 있다. 서양사상 안에서 보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동양의 거울에 비춰 보면 그 개성이 너무도 뚜렷하다. 공자(孔子)나 맹자(孟子), 하다못해 노자(老子)나 장자(莊子), 어디에도 이런 개인주의는 없다. 동양에서 개인이란 공동체의 구성원에 불과하다. 언제나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나’를 따진다. 그러니 서양의 ‘독립적인 개인’과는 많이 다르다. 이런 동양에서 하나의 공동체가 국가로 진행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 과정은 쉽고도 자연스럽다. 그런 이유로 동양에는 국가 기원설이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다. 진작부터 왕이 있었고 신하가 있었고 백성이 있었다. 왕은 천명을 받았기 때문에 왕이 되었고, 그 사람이 백성들의 존경을 받을 만큼 도덕적이었기 때문에 천명이 내린 것이다. 왜 왕이 필요한지는 처음부터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서양은 다르다.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처럼 뚜렷한 개성을 지닌 개인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이 사회가 점점 커지며 국가가 된다. 따라서 개인과 국가의 관계가 먼저 분명히 정립되어야만 하였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나라가 생기는 것은 우리 각자가 자족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것이 필요하게 되기 때문일세. …… 이런 경위로 해서, 즉 한 사람이 한 가지 필요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맞아들이고, 또 다른 필요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을 맞아들이는 식으로 하는데, 사람들에겐 많은 것이 필요하니까, 많은 사람이 동반자 및 협력자들로서 한 거주지에 모이게 되었고, 이 생활공동체에다 우리가 나라(도시 국가 : polis)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네.”4)

국가는 본래부터 존재했던 게 아니다. 개인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구성원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이게 정의(正義)이다.

“우리가 이 나라를 수립함에 있어서 유념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어느 한 집단이 특히 행복하게 되도록 하는 게 아니라, 시민 전체가 최대한으로 행복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가 그런 나라에서 올바름(정의, dikaiosynē)을 가장 잘 찾아 볼 수 있기 …… 때문입니다.”5)

그리스어 올바름, 즉 정의는 디케(dike)에서 나온 말이다. 디케는 정의의 여신 이름이다. 이 여신이 로마로 건너가 유스티티아(Justitia)가 되는데, 정의를 뜻하는 저스티스(justice)가 여기에서 유래한다. 미술 작품에서 디케는 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유스티티아에 오게 되면 저울이 더해지고 두 눈을 가린 모습으로 흔히 조형된다. 외모나 신분, 재산이나 배경 등을 보지 않고 오직 그 사람이 지은 죄의 경중만을 재서 엄정하게 법을 집행한다는 의미이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따르면, 디케는 제우스와 율법의 여신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에우노미아(질서), 에이레네(평화)와 자매로, 이들을 호라이의 세 자매라고 한다. 호라이는 계절의 여신이기도 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다 한 다음, 때가 되면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질서이며 정의이고 평화임을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것이 정의이며, 남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은 불의이다. 정의의 여신에 의해 각자의 몫이 보호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국가는 정의의 여신을 현실 속에 구현한 것이다.

3. 국가는 어떻게 정의를 실현하는가

이데아론을 상기해 보자. 모든 존재는 이데아가 있다. 이 존재의 이데아가 플라톤에게서는 실체(實體)이며 본질(ousia)이다. 인간과 사물이 그의 본질을 가장 잘 발휘한 상태를 플라톤은 덕〔德, 아레테(arete)〕이라고 불렀다. 아레테는 탁월함(excellence), 혹은 좋음(goodness)을 의미하는 말이다. 예컨대 칼의 아레테는 잘 드는 것이고, 토지의 아레테는 비옥한 것이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군인의 아레테는 용기이고 통치자의 아레테는 지혜이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우리가 이 나라를 수립하기 시작할 당초부터 언제나 준수해야만 된다고 주장했던 바로 그게, 또는 그것의 일종이 정의일세. 자네도 기억하겠네만, 분명히 우리가 주장했고 또 여러 차례에 걸쳐 언급했던 것은, 각자는 자기 나라와 관련된 일들 중에서 자기의 성향이 천성으로 가장 적합한 그런 한 가지에 종사해야 된다는 것이었네.”6)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일을 가장 잘 발휘하는 것이 곧 덕이 된다. 그러므로 국가는 각자의 덕이 조화를 이룰 때 올바른 상태, 즉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일을 어떻게 판별하는가?

주지하다시피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생산자, 수호자, 통치자라는 세 계급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누구는 통치자가 되고 누구는 생산자 계급에 머물러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정의구현의 핵심이 될 것이다. 플라톤에 의한다면 이는 각자가 타고난 아레테에 의해 결정된다. 절제(節制)와 용기(勇氣)와 지혜(知慧)가 이들의 덕목으로 제시되었다.

세습적 신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자기 몫으로 타고난 천성이 그 일에 적합하기 때문에 그 일을 맡는 것이다. 그가 과연 그 역할, 예컨대 어떤 사람이 통치자가 된다고 할 때, 그가 과연 통치자의 덕을 갖추고 있느냐를 판단하는 여부는 별개의 문제이다. 적어도 이상 국가에서는 가장 지혜로운 자가 최고 통치자가 될 것이다. 플라톤은 현실의 국가가 아닌 이상 국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각자의 역할이 정해지면 그 다음은 그들이 지닌 탁월함을 드러내기 위한 교육이 뒤따라야 한다.

“어린 사람은 뭐가 숨은 뜻이고 뭐가 아닌지를 판별할 수도 없으려니와, 그런 나이일 적에 갖게 되는 생각들은 좀처럼 씻어 내거나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일세. 바로 이런 까닭으로 이들이 처음 듣게 되는 이야기들은 훌륭함(aretē)과 관련해서 가능한 한 가장 훌륭하게 지은 것들을 듣도록 하는 것을 어쩌면 아주 중요하게 여겨야만 할 걸세.”7)

그리하여 “절제(sophrosynē), 용기(andreia), 자유로움(eleutheriotēs), 고매함(megaloprepeia) 및 이와 같은 부류인 모든 것”8)을 교육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신화나 설화 작가들이 지은 이야기들은 “훌륭한 것이면 받아들이되, 그렇지 못한 것이면 거절해야 하고 …… 오늘날 그들이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는 것들 중에서 많은 것은 버려야만”9) 한다. 특히 “신(神)과 관련된 이야기를 지을 경우에는, 그가 서사시(epē)로 짓든 서정시(melē) 또는 비극시(tragōdia)로 짓든 간에, 언제나 신을 신인 그대로 묘사해야만 되고 …… 나쁜 것들의 원인들은 신 아닌 다른 것들에서 찾아야만”10) 한다. 시민들이 용감하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나가 싸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저승(하데스)을 무조건 혐오스럽고 두려운 곳으로 묘사한 설화들은 배제하고,11) 영웅들의 통곡이나 비탄을 담은 이야기도 배제한다. 거짓은 나라와 시민들의 이익을 위해서 통치자들에게만 허용한다.12)

이렇게 자유로운 개인들은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 교육되었다. 국가란 이름으로, 정의(正義)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주) -----
1)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
2) 위의 책
3) 위의 책
4) 플라톤 지음, 박종현 역주, 《국가ㆍ정체》, 369b
5) 위의 책, 420b
6) 위의 책, 433a~c
7) 위의 책, 378e
8) 위의 책, 402c
9) 위의 책, 377c
10) 위의 책, 379a~c
11) 위의 책, 386a~387c
12) 위의 책, 389b~d

김문갑 | 철학박사,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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