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진장 대종사 열반 2주기를 추모하는 세미나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11일 오후 2시 개최됐다.

“무진장 대종사는 한국 근·현대사의 부루나 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생들이 신음하는 전국 방방곡곡을 누리며 감로법문을 펼쳐, 많은 이가 불법에 귀의할 수 있도록 인도했다.”

차차석 동방대학원대학교 교수는 11일 오후 2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무진장 대종사 열반 2주기 추모 세미나’에서 ‘혜명 무진장 대종사의 생애와 원력’을 주제로 발제했다.

차차석 교수는 “무진장 대종사가 ‘7무(七無)스님’으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철저히 무소유, 청빈, 지족(知足)의 가르침을 철저히 실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면서 “7무 스님으로 살아온 무진장 대종사의 행장은 후학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칠무’란 모자 · 목도리 · 내복 · 절(토굴) · 돈 · 장갑 · 솜옷이다.

차 교수는 무진장 대종사를 가죽신을 벗어던진 맨발의 수행자로 회고했다. 무진장 대종사가 6년간 맨발로 전국 사찰을 돌며 만행을 다님으로써 무소유 정신을 실천하고 자비행을 역설한 것은 인위적인 삶이 아니라 무위적인 삶을 추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 차차석 교수가 '무진장 대종사의 생애와 원력'에 대해 발제하고 있다. 옆에는 사회자 황정일 박사.

차 교수는 무진장 대종사가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장을 2대와 4대에 걸쳐 두 차례 역임한 것에 주목하면서 청중의 눈높이에 맞춰 대기설법을 한 사실을 높게 평가했다. 차 교수는 무진장 대종사의 법문 특징에 대해 선진규 봉화산 정토원장의 정의를 빌려 소개했다. 첫째, 내용이 충실하며 흠 잡을 데가 없다는 것. 둘째, 법사의 품위가 청중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 셋째, 성량이 풍부해 청중을 포용하는 특이한 음색을 갖고 있다는 것. 넷째, 순간순간 청중심리를 파악해 청중과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다섯째, 자기가 한 말에 자신감을 갖고 책임을 지겠다는 확신을 청중에 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무진장 대종사가 경전에 나오는 부루나 존자와 가장 유사한 점은 상대를 감동시킨다는 점에 주목했다.

차 교수는 부루나 존자가 수로나국에 가서 전법하다가 순교했던 일화를 소개하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퇴전의 자세, 어떠한 고통도 참아내는 인욕의 자세를 지녔다는 점에서 무진장 대종사는 이 시대에 다시 화현한 부루나 존자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차 교수는 마지막으로 “출가자가 급감하고 재가불교단체의 활동도 정체되어 있는 작금의 조계종의 현실을 고려할 때 제2, 제3의 무진장 대종사의 출현이 기다려질 따름이다”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조계사가 주최하고 무진장불교문화연구원이 주관한 이날 세미나는 1부에서 법산 스님(동국대 명예교수, 무진장불교문화연구원 이사장)이 ‘금강경과 무진장 스님의 불교사상’을, 차차석 교수가 앞의 논문을 황정일 박사의 사회로 발제했다. 제2부에서는 구미래 박사의 사회로 김경집 위덕대 겸임교수가 ‘조계사의 지킴이 무진장 스님’을, 홍윤식 동국대 명예교수가 ‘현대한국불교의 전개와 무진장 스님’을 각각 발제했다.

한편 열반 2주기를 맞아 무진장 대종사 유품전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1층 나무갤러리에서 11일부터 17일까지 열린다. 유품전에는 대종사가 보관하고 있었던 경허 스님의 납의를 비롯해 붓과 벼루, 안경, 도장과 육필원고 등이 전시되고 있다.

▲ 무진장 대종사가 보관하고 있던 경허 스님의 납의.
▲ 무진장 대종사의 육필원고.
▲ 생전 쓰고 다녔던 안경과 도장.


-김종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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