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책하기 좋은 쉼라의 길.

쉼라는 산등성이에 세워진 도시인 탓에 건물들은 언덕에 매달려 있는 모양새다. 서늘한 소나무 숲이 주변을 둘러싸 타 지역에 비해 시원하다. 쉼라는 산등성이 아래의 버스스탠드 주변을 제외하곤 대부분 건물이 영국풍이다. 중심지인 스탠들 포인트로 이어지는 ‘더 몰’ 주변의 건물은 대부분 영국 풍으로 인도답지 않다. 동서로 뻗은 ‘더 몰’은 보행자 전용 통로여서 산책하기 그만이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스캔들 포인트까지의 광장과 길은 관광객들로 넘친다.

론리 플래닛 한국어판 개정 안돼 아쉬워

최우선 과제는 쉼라의 지도와 다음 행선지 교통편, 히마찰 쁘라데시 주가 운영하는 버스투어 등을 알아보는 일이다. 보통 배낭여행자들은 가이드 북 한 권은 꼭 지참한다.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은 나 같은 배낭 여행자에게 바이블과 같다. 우리나라 에서는 《100배 즐기기》가 많이 팔리는 듯 하지만 도시 간 교통과 연결노선, 숙박, 먹을거리, 지도, 문화, 역사 등 다양한 정보는 《론리 플래닛》이 우위에 있다. 다만 《론리 플래닛》 한국어판(안그라픽스)은 최신버전이 아니어서 비용 정보는 정확치 않다.(최신 정보는 영어판에 있다. 한국어판의 개정이 속히 이루어지길 바란다)

두 명 이상이 함께 여행한다면 나는 《론리 플래닛》과 《100배 즐기기》를 한 권씩 지니기를 권한다. 《100배 즐기기》는 도시 내의 여행 일정을 짜는 데 유용하고, 《론리 플래닛》 보다는 가격 정보가 최신에 가깝다. 하지만 도시 간 이동과 다양한 정보는 《론리 플래닛》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다. 영어에 자신이 있다면 《론리 플래닛》 영어판이면 족하다. 인도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100즐기기》는 ‘100배 헤매기’로 통한다. 하지만 정보는 제법 충실하다. 여행자들이 가이드북의 유용한 정보를 충실히 보지 않는 탓이 크다. 《100배 즐기기》는 초보여행자들이 보기에 사진 등 비주얼이 좋지만 많은 정보를 싣고 있지는 않다. 《론리 플래닛》 한국어판이 개정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판매 부수와 관련 있을 듯하다. 《론리 플래닛》은 사진보다는 텍스트 위주의 정보 제공으로 한국의 배낭여행자들에게는 인기가 높지 않은 탓이다. 사진 많고 글씨 큰 책만 찾는 여행자들 대부분이 현지에서 가이드북이 잘못됐다고 투정이지만 책은 최소한의 가이드만 제시할 뿐이다.

주정부 여행안내소 통해 최신정보 얻어

여행지의 사정은 가이드북의 개정보다 빠르고 변화무쌍하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지역의 여행정보센터를 찾는 일이다. 인도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여행정보센터와 주가 운영하는 여행정보센터가 있다. 여행정보센터에서는 도시 사이 이동과 도시 내 숙박시설, 관광지 등을 알려주는 상세 지도를 무료로 나눠준다.(일부는 저렴한 가격에 팔기도 한다) 쉼라의 정보는 히마짤 쁘라데시 관광개발 공사(HPTDC)가 운영하는 여행 안내소에서 얻으면 된다. 대부분의 가이드북은 여행안내소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준다. 가이드북의 가이드라인과 현지 상황을 꼼꼼히 확인해야 여행경비를 절약하고 때때로 바뀌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쉼라의 여행 안내소는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더 몰’을 따라 100미터쯤 걷다보면 우측에 있다. 이곳에서는 일일관광코스를 운영하고, 각종 여행 정보를 제공한다. 직원은 매우 친절하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타 지역(마날리 등)으로 이동하는 디럭스 버스의 예약을 받는다. 주정부가 제공하는 탓에 사기나 바가지는 없다.

▲ 쉼라의 주정부 박물관.

작은 영국 쉼라 영국풍 건물 가득

쉼라의 볼거리는 별로 많지 않다. ‘더 몰’을 중심으로 바자르(시장)를 둘러보는 시내 구경과 넬데라(세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한 골프장)를 포함한 쉼라 주변을 둘러보는 게 전부다. ‘더 몰’ 주변은 인도답지 않은 영국풍 건물들로 색다르다. 쉼라는 인도 안의 작은 영국이다. 현지인과 관광객들 역시 이곳을 ‘작은 영국(Little UK)’으로 부른다.

HPTDC 일일관광투어는 리볼리 버스스탠드(Rivoli Bus Stand)를 오전 10시 30분쯤 떠나 꾸프리(Kufri)-챌(Chail)-넬데라(Naldehra)-머쇼브라(Mashobra)를 돈다. 다른 코스도 있다. 도착은 ISBT(Inter State Bus Terminal) 근처의 카트 로드(Cart RD.) 리프트 앞이다. 이곳에서 리프트를 타고 ‘더 몰’까지 오면 당일 여행이 끝난다. 꾸프리는 별로 볼거리 없는 경유지에 불과하고, 챌은 야생동물보호구역이 있다. 넬데라는 해발 2,050미터에 위치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골프장이다. 골프 코스는 언덕과 언덕 사이에 위치하고, 주변을 도는 승마 코스도 있다. 늘 그렇듯 관광객을 노리는 승마투어가 기다린다. 대부분 정부관광청의 일일투어가 그렇듯 이동시간이 더 많다. 짧은 일정의 여행자에게 추천할 만하다.

▲ 어퍼 바자르에서 본 미들 바자르 골목. 전기줄 만큼 얽힌 시장.

시장구조는 카스트 제도의 구체적 모습 같아

쉼라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더 몰’이지만 산악지형 탓에 어쩔 수 없이 형성된 시장의 구조가 눈에 띤다. 쉼라는 영국 총독부가 개발했지만, 시장은 인도인들이 만들었다. 심라는 작은 영국을 꿈꿨지만, 실상은 카스트로 버무렸다.

쉼라의 가장 상층부인 ‘더 몰’이 어퍼 바자르(Upper Bazzar)이다. 이곳에는 식민지 시절 세워진 고풍스런 건물이 즐비하고, 정부 기관(시청 등)과 고급 상점이 튜더 풍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대부분 관광객은 이곳을 둘러보고 이곳에서 밥을 먹고 잔다. 쉼라 개발 초기 영국 관리들은 사실상 근접이 불가한 상층 카스트를 자처했다.
어퍼 바자르인 ‘더 몰’은 경제적 부유층이 사실상 상층 카스트로 행세하는 곳이다. 한국에도 없는 아이 팟(ipod)의 신형 충전기를 파는 전자제품 판매점이 있고, 인도의 고급 커피숍인 바리스타(Varista)가 들어섰다. 바리스타의 커피 값은 한국 별다방(Starbucks)의 가격에 근접한다. 인도물가로는 무척 비싸다.

▲ 쉼라 중년들의 쉼터, 인디언 커피하우스

중년들의 휴식처 인디안 커피하우스

쉼라 사람들은 바리스타보다는 더 몰의 맨 끝 쪽에 있는 인디안 커피하우스를 애용한다. 간단한 식사와 맛있는 커피를 파는 이곳은 늘 중년의 인도 남성들이 점거하고 있다. 흰 라자스탄 전통의상과 터번을 쓴 웨이터들의 모습은 이색적이다. 짜이에 익숙할 것 같지만 쓴 커피를 홀짝이는 인도 남성들의 모습은 매우 소중한 기억이 된다. 인도는 커피 생산국중 하나인 탓에 커피마시는 것이 색다르진 않지만, 짜이에 길들여진 탓에 커피는 인스턴트커피만 먹는 걸로 오해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고급 상점 입구는 경비원이 지키며, 손님을 골라 입장시킨다. 돈 꽤나 있어 보여야 들여보내 준다. 행색이 남루한 보통 인도인들은 아예 근처에도 보이지 않는다. 바리스타 건너편의 벤치에는 늘 말쑥한 차림새의 사람들이 앉아 신문을 보고 담소를 나눈다. 이곳(더 몰)은 담배도 필 수 없는 청정지역이다. 멋진 전통의상을 착용한 경찰이 교통을 차단하고 순찰을 돈다. 멋진 경찰 모습을 찍으려 셔터를 마구 누르니 경찰이 다가온다. 조용히 귀에 대고 한 마디 한다. “온리 원 포토(only one Photo)”

▲ 쉼라의 경찰. 식민지 시대의 복장을 닮았다.

어퍼-미들-로우 바자르로 이어져

바리스타를 바라보고 오른쪽 계단으로 내려가면 미들 바자르(Middle Bazaar)가 나타난다. 이곳은 만물상이다. 없는 게 없다. 이곳은 상인 카스트들이 점거했다. 더 몰에서는 숨어서 피던 담배를 이곳에선 피워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가끔 경찰이 한 소리하기도 하지만 외국인이라 그냥 넘어간다. 뉴델리 빠하르간즈처럼 복잡하고 시끄럽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 다닥다닥 붙은 상점에선 손님을 끌어 모으는 상인들의 목소리로 누가 누구를 부르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 미들 바자르의 이불 만드는 상인.

옛 샤말라 사람들 하층민 전락

미들 바자르에서 야채가게들이 있는 골목을 지나면 로우 바자르(Low Bazaar)가 지척이다. 이곳엔 베지테리언(Vegetarian)들이 경멸할 만한 논 베지테리언(Non-Vegetarian)을 위한 것들이 즐비하다. 계란을 팔고, 껍질 벗긴 닭을 끈으로 매달아 진열한 상점도 많다. 염소(Mutton, 인도에서 머튼을 시키면 대부분 염소고기가 나온다)를 잡는 모습도 눈에 띤다. 비린내가 진동하는 이곳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가장 하층 카스트들이 있는 곳이다. 인도에서 고기를 만지는 직업은 어디서나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맡는다.
도살장이나 양계장은 찾기 어렵다. 먹는 사람은 있어도 잡는 사람은 눈에 띠지 않는다. 쉼라의 로우 바자르에는 네팔 사람들이 눈에 띤다. 쉼라가 예전에 네팔의 일부분(샤말라)이었던 탓이다. 이들이 지금은 인도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직업에 종사하며 산다.

좁은 골목의 바자르는 갈 지(之)자 형태로 형성됐다. 더 몰을 출발하면 갈지자로 이어진 길이 ISBT까지 이어진다. 골목골목에는 사람들이 살며, 살기 위한 것들을 사고판다. 맨 위 바자르인 ‘더 몰’(스캔들 포인트 주변)은 여유 있지만, 거들먹거리는 ‘있는 분’들과 신혼여행객들이 섞여 있고, 미들 바자르에는 어퍼 바자르의 이분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 등등을 팔고 사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리고 로우 바자르에는 누구도 손대지 않는 도살업과 육류업에 종사하는 ‘천민 아닌 천민’들이 산다.

▲ 쉼라의 힌두 사원.

주정부 박물관 등 산책코스 좋아 

쉼라의 일정은 3∼5일이면 충분하다. 휴식이 필요하다면 더 머물러도 좋지만 관광이 목적이라면 그리 오래 머무를 곳은 아니다. 이곳에서 하루는 관광사무소가 운영하는 일일투어로 쉼라 주변을 돌고, 하루는 시장 구경, 또 하루는 총독 관저(Viceregal Lodge)와 자쿠 템플(Jakhu Temple), 크라이스트처치(Christ Church), 히마짤 주립 박물관(Himachal State Museum) 등을 산책하면 좋다. 박물관은 스캔들 포인트에서 멀지만, 의외로 전시물이 좋아 후회하지 않는다.(관심 없다면 아닐 수도 있다) 자쿠 템플까지는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걸으면 좋을 만하다. 택시로 안내하겠다는 사설 관광업자들에게 속지 말자. 대부분 관광 포인트는 인근까지만 차로 가고 결국엔 걸어가야 한다. 쉼라 시내 대부분의 관광지는 차로 갈 수 없다. 자쿠 템플에서는 원숭이를 조심하자. 안경까지 빼앗아 갈 정도로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 로우 바자르에서 본 미들바자르 가는 길.

나는 쉼라에서 밤 버스로 마날리(Manali)로 갔다. YMCA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디노(Dino)가 길잡이를 자처했다. ISBT까지 지름길로 가는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뒤를 좇는 나는 업덩어리(배낭)에 짓눌려 대화조차 힘들었다. 디노는 델리 대학교에서 컴퓨터를 전공하는 학생이다. 학비와 체류비가 없어 고향인 쉼라로 돌아와 일하고 있었다. 한 달 일해 고작 500루피를 받는 그는 YMCA에 머문 손님들이 방에 놓고 간 10루피의 팁을 챙겨 학비를 모은다고 했다. 쉼라에서 델리까지 디럭스 버스비가 350루피를 상회하니 그의 한 달 월급으로는 델리를 다녀오기도 힘들다. 디노는 삼성전자를 알았고, 엘지(LG)전자도 알았다. 꼭 학교를 졸업해 삼성전자 인도법인에 취직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되고 싶다는 컴퓨터 엔지니어의 꿈은 델리에서 쉼라만큼 떨어져 있었다. 그가 만들어 갈 미래는 가까워 보이지 않지만 디노의 미소에는 미래가 가까워 보였다.
복잡한 ISBT에서 마날리행 버스 플랫폼까지 안내한 디노의 손을 꼭 잡고 작별했다. 뒤돌아 선 그는 손에 쥔 20루피에 감사해했고, 나는 꼭 꿈을 이루라며 웃었다.
YMCA를 찾는 여행자들이여 꼭 떠날 때 10루피의 팁을 침대에 놔두자. 그 돈으로 디노가 대학과정를 마치도록.

▲ 미들 바자르에서 로우 바자르로 내려오는 길의 과일가게.

서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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