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쉼라 전경. 건물들이 산에 매달린 듯 서있다.

버스 갈아타기의 연속

리쉬케시에서 쉼라(Shimla)는 한 번에 못 간다. 성수기에는 하리드와르에서 직행 버스가 종종 운행된다지만 가끔 있는 일이다. 쉼라로 가려면 데라 둔(Dhera Dun, 데헤라 둔)이나 짠디가르(Chandigarh, 찬디가르=뻔잡주 주도이자 하리야나주의 주도)로 가서 갈아타야 한다. 현지인들이 데라 둔을 경유할 지, 짠디가르를 거쳐야 할지 잘 안다.

리쉬케시 락쉬만 줄라에서 출발한 길은 버스 갈아타기의 연속이다. 우선 하리드와르 버스스탠드에서 짠디가르행 버스를 타고 6시간을 간 후, 다시 짠디가르에서 쉼라까지 4시간 30분을 더 달려야 한다. 모두 12시간의 긴 여정이다. 그나마 연계 버스시간이 맞지 않으면 시간은 더 걸린다.

인도 버스는 고철덩어리다. 출고된 지 30년은 됨직한 차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실었는지 모른다. 차 내부는 모두 쇳덩어리다. 손잡이도 쇠고, 의자도 얄팍한 깔판과 등판 빼고는 모두 쇳덩이다. 창문이 없는 경우도 있다. 남인도(까르나따까 또는 께랄라 주)의 로컬버스는 플라스틱 주름창이거나 천으로 된 창이다.

호루라기 소리와 일단 기어는 동시작용

하리드와르를 떠난 버스는 시내를 빠져나오자 제법 곧은 도로를 달린다. 오토바이를 제치고 승용차도 제친다. 인도 버스 기사들의 운전 솜씨는 아찔하다. 차선이 불분명한 도로에서 버스는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 반대편 차선을 넘나든다. 반대편 차량 상향등의 깜빡거림이 눈앞까지 당도해야 제 차선으로 돌아온다. 추월을 못해도 차는 제 차선을 달리지 않고 호시탐탐 추월기회만 노린다.

차장은 연신 손님을 태운다. 승객들의 내릴 곳은 여행자는 몰라도 차장과 손님들은 잘 안다. 정류장 표지판이 없어도 차장의 호루라기가 한 번 울리면 버스는 멈춰 선다. 뒷문으로 손님이 올라타면 차장은 호루라기를 두 번 분다. 호루라기 소리와 버스의 일단기어는 동시작용이다. 수동식 기어를 조작하는 운전사는 잠도 없다. 장거리 버스의 휴게소는 운전사만 안다. 짜이를 마시거나 밥을 먹을 때만 엔진을 멈춘다. 손님들의 급한 용변은 도로변에 잠깐 세우고 길가에 해결하면 된다. 남자는 버스와 가까운 곳에서, 여성은 좀 먼 곳으로 가서 해결한다.

짠디가르 행 버스의 의자는 앞 뒤 간격이 좁아 무릎이 닿는다. 노면이 좋지 않으면 엉덩이는 의자에 붙어있지 않는다. 엉덩이가 들썩이면 무릎은 의자 등받이 뒤판과 부딪친다. 등받이 뒤판에는 여러 종류의 나사가 튀어나와 있어 조심해야 한다.

2시간 정도 달리던 버스가 멈췄다. 휴게소다. 버스 운전사와 차장은 밥을 먹는다. 일부 손님도 이른 점심을 먹는다. 짜빠띠(Chapathi) 두어 장과 알루 고비 맛살라(감자와 브로콜리를 맛살라 향신료에 버무린 것) 뿐이지만 제법 맛있다. 인도인들은 주로 오른손으로만 짜빠띠를 찢는다. 똥 닦는 왼손은 잘 쓰지 않는다. 짜빠띠를 커리에 충분히 비벼 적신 후 손가락까지 빨면서 먹는 모습이 제법 진지하다. 우리 입맛에는 짜다. 인도의 대부분 음식에는 고소(Coriander, 데리얀 : 지역 마다 부르는 이름이 차이 난다. 보통 데리얀 또는 달리얀이라 부른다)가 들어간다. 인도는 물론 중국,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먹는 고소는 익힐수록 향이 진해져 다른 재료의 맛을 잊게 할 정도로 강하다.

▲ 쉼라의 중심 '더 몰'.

짠 먹을거리, 단 마실거리

고소는 피를 맑게 하는 등 건강에 좋아 즐겨 먹는 채소지만 우리는 친해지기 어렵다. 우리나라 절에서 스님들이 주로 먹는 고소는 간장과 식초 등을 섞은 양념장에 버무려 먹으면 제 맛이다. 고소를 좋아하던 나도 인도에서 먹는 고소는 가끔 적응하기 힘들만큼 향이 강하다. 우리나라 고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향이 나는 탓이다. 제법 규모가 있는 관광지의 식당에서는 데리얀을 빼달라고 하면 우리 입맛에 맞는다. 소금도 조금만 넣어달라고 하면 좋다. 덥고 습한 나라인 탓에 먹을거리의 대부분이 짜고, 마실 것은 달다.

30분 정도 쉰 버스는 갈 길을 재촉한다. 승객 대부분은 종착지인 짠디가르로 향하는 탓에 버스가 멈추는 일이 없다. 인도인들은 잘 잔다. 어떤 곳에서도 잘 잔다. 도저히 잘 수 없을 만큼 흔들리는 버스에서도 잘 잔다. 차장도 잔다. 운전사만 졸지 않고 가속 페달에 올린 발을 떼지 않는다.

운전사의 오른손은 언제나 경음기 버튼 위에 있다. 상대 차선의 차가 넘어 오면 즉시 경음기를 울린다. 자신이 차선을 넘을 때도 경음기를 울린다. 앞에 오토바이나 수레, 오토릭샤가 보여도 경음기를 울린다. 인도인들은 잘 피하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는 일도 드물다. 아예 사이드 미러가 없는 차가 대부분이다. 경음기는 없어선 안 된다. 경음기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경음기는 경고이자 안전의 척도다.

한 인도 버스기사에게 물었었다. “왜 그렇게 경음기를 울리나?” “울릴 수밖에 없다. 인도인들은 주변을 잘 살피지 않는다. 비키지도 않는다. 경음기로 경고를 줘야 피한다. 죽기는 싫을 테니까.”

짠디가르에 도착한 시간이 4시 20분이다. 쉼라로 가는 버스는 4시 30분이다. 화장실 갈 틈도 없지만, 볼일은 다 본다. 화장실로 뛰고, 빵을 사러 뛰고, 버스 티켓을 사러 뛴다. 화장실에 다녀오다 버스 출발시간이 지연되어 차장에게 ‘에끄 미닛(one minute, 에끄는 숫자 1이다)’을 외쳤다. 돌아오는 답은 언제나 ‘No Problem’이다. 하지만 4시 28분부터 버스는 움직인다. 문제없다는 말은 언제나 문제투성이고, 걱정 말라는 말은 언제나 걱정거리다.

외국인 기획한 도시 현지인은 지리도 몰라

짠디가르는 계획도시다. 1950년대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면서 짠디가르는 뻔잡과 하리야나 주의 주도가 되었다. 이전의 주도인 라호르는 파키스탄 땅이 됐고, 파키스탄과 너무 가까운 암리차르 대신 주도로 선택된 곳이 짠디가르다. 2개 주의 주도이면서 연방정부의 직할 관리 지역인 독특한 도시를 알버트 메이어(미국 도시설계가)와 매튜 노위키(폴란드 건축가)에게 도시계획을 맡겼다. 나뭇잎의 유기적 모양을 도시계획의 기본으로 삼았지만 노위키가 비행기 사고로 죽자, 도시계획은 르 꼬르뷔지에라는 유럽건축가의 손에 맡겨졌고, 도시는 직선과 곡선의 엄격한 기하학적 토대 위에 세워졌다. 61개의 섹터(sector)로 나누어진 도시는 논리적이지만 현지인도 지리를 잘 모른다. 릭샤꾼들 조차 엉뚱한 곳에 내려주기 일쑤이다.

짠디가르의 호텔은 사치세 10%를 부과한다. 보통 북인도 주요 지역으로 가는 연계노선이 많아 관문으로 이용되지만 보통의 배낭여행자들은 대도시를 출발기점으로 삼아 사설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용도가 높은 도시는 아니다. 호텔과 먹을 곳, 버스스탠드가 섹터 17과 22에 주로 모여 있어 머물러야 할 경우 이곳으로 가는 게 편하다. 보통 쉼라로 가는 방법은 뉴델리에서 기차를 이용해 깔까(Kalka)로 가서 협궤열차(토이 트레인)로 쉼라까지 가는 방법을 이용하면 좋지만 깔까-쉼라 노선은 오전 4시와 6시 30분, 12시 30분 세 편뿐이어서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 델리에서 곧장 쉼라로 온다면 깔까에서 12시 30분 쉼라행 토이트레인을 이용하면 오후 7시쯤 도착한다. 토이 트레인은 영국 식민지 시절 건설돼 지금도 이용하지만 버스보다 느려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한다. 토이트레인은 이곳 외에도 홍차로 유명한 웨스트 뱅갈의 다즐링에도 있다. 뉴 잘빠구리와 다즐링을 오가는 토이트레인 역시 고통스러울 만큼 느리다.

환경보호 위해 오토릭샤 운행 금지

▲ 쉼라의 줄심 스캔들포인트의 크라이스트처치.

4시간 40분 걸려 도착한 쉼라 버스스탠드는 캄캄하다. 산악지대인 탓에 건물들은 산등성이를 타고 앉았고, 빛이 골과 골을 넘지 못한 탓에 어둡다. 쉼라의 중심인 스캔들 포인트(Scandal Point)까지는 걸어야 한다. 산악인 탓에 릭샤가 없다. 환경보호 차원에서 릭샤 운행을 금지시켰지만, 이곳 지형을 봐서는 릭샤는 평지에서만 다녀야 할 듯하다. 택시조차 스캔들 포인트로 가지 않는다. 중심지역(‘더 몰’)까지 걷는 수밖에 없다. 이곳 법이 그렇다.

스캔들 포인트까지는 끝없는 골목과 계단으로 이어진다. 계단이 보이면 계속 오르면 된다. 어디로 가든지 스캔들 포인트가 있는 ‘더 몰’(The Mall)로 이어진다. 일행의 발걸음이 느리다. 여행 초반에 배낭 짐이 줄지 않은 탓이다. 힘든 발걸음을 내딛는 동안 일행은 말문을 닫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서야 멈췄다. 어두운 골목길로 한 인도 여성이 걸어온다. 제대로 가는지 묻자 따라오란다. 배낭을 다시 멘 일행이 좇아가기엔 인도여성의 발걸음은 가볍다. ‘더 몰’로 통하는 계단 입구에서 여인을 놓쳤다. 주변을 둘러보니 계단 꼭대기에서 어서 오란다.

▲ 쉼라의 중심 '더 몰'로 오르는 길은 매우 힘들다. 현지인도 그렇다.

골목과 계단을 걸어 올라야 한다

계단의 각도는 60도는 됨직하다. 배낭 맨 다리는 천근만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 ISBT 근처 카트 로드(Cart RD)의 꼼베르메레 호텔(Hotel Combermere) 입구 리프트(엘리베이터)를 타면 ‘더 몰’ 근처까지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지만, 운행시간이 끝난 후 도착해 이용할 수 없다. 기차를 이용해 쉼라로 오는 이들에게는 역부터 리프트까지 택시로 이동하길 권한다. 버스스탠드에서는 걸어서 리프트까지 가면 된다. 돈을 좀 더 쓰면 편하지만 이것도 저녁 8시 이전에만 가능한 일이다.(성수기는 10시 30분까지 운행한다) 버스스탠드 근처에는 짐꾼들이 상시 대기한다. 여행자들의 짐을 대신 들어주는 이들이다. 힘들게 걷기 싫다면 이들을 이용해도 좋다. 대부분 호텔을 소개하는 호객꾼을 겸하지만 ‘더 몰’까지만 이들을 이용하면 나쁘지 않다. 배낭 한 개에 보통 50루피쯤 받는다.

▲ '더 몰' 근처까지 올라가는 ISBT 근처 카트 로드(Cart RD)의 꼼베르메레 호텔(Hotel Combermere) 입구 리프트(엘리베이터). 리프트는 두 번 탄다.

‘더 몰’의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 오른쪽의 리츠 시네마(Ritz Cinema) 왼쪽 골목 안에 위치한 YMCA가 목적지다. ‘더 몰’까지 올라왔지만 300미터는 더 걸어야 한다. 밤 10시가 됐지만 리츠 시네마는 불빛이 환하다. 리츠 시네마 주변은 결혼식 피로연이 열린 탓에 주변은 온통 꽃과 형형색색의 전구로 치장됐고, 노래 소리와 왁자지껄한 고성으로 소란스럽다. 피로연 탓에 YMCA의 입구를 놓쳤다. 50미터쯤 걷다 보니 지나친 듯해 오던 길을 돌아가 보니 YMCA 입구는 피로연 장이 막아 가려져 있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모았다.

쉼라의 중심 ‘더 몰’

YMCA는 쉼라에서 저렴한 숙소로 통한다. 관리를 한 탓에 그런 대로 깨끗한 방이 있고, 아침도 준다.(물론 숙박비에 아침 값이 포함돼 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방에 없고 공동욕실을 이용해야 한다.(욕실 딸린 방은 비싸다) 리쉬케시부터 12시간을 이동한 탓에 체크 인(Check-in)조차 귀찮다. 여권을 던지고 숙박비를 선불로 냈다. 목조계단을 올라 2층에 내 방이 정해졌다. 지쳐 씻는 것도 귀찮지만 흘린 땀은 씻어야 했다.

쉼라는 옛 네팔의 샤말라(Shyamala, 깔리 여신의 다른 이름)였다. 영국이 이곳을 개발해 여름 수도로 삼았다. 델리의 무서운 더위를 피해 온 피난처였다. 1903년 영국이 깔까-쉼라 철로를 놓자 대규모 저택들이 들어섰고 사람들은 더욱 ‘더 몰’로 몰렸다. 지금도 인도의 인기 신혼여행지 중 한 곳이다. 쉼라는 간디의 방문지 중 한 곳이다. 간디는 영국 식민지의 관료들이 델리의 무서운 더위를 피하는 동안 걸어서 이곳으로 와 그들을 만나 독립을 요구하고, 인도인들의 삶을 지켰다. (계속)

▲ 쉼라의 중심 스캔들포인트의 광장 주변.


서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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