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풍광 소식 기대된다"

한국의 불교계는 음력 7월 15일로 하안거 해제를 맞이하여 각 선원마다 방학으로 들어간다. 선원의 수용인원은 천차만별이다.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 백양사 등 소위 총림에 소속된 선원에서는 ‘방장’의 지도 아래
30명 내외의 선사들이 수행을 한다. 좀 더 많은 곳도 있다.

그런가하면 총림이 아닌 선원에서는 ‘선원장’의 지도 아래 20명 내외의 선사들이 수행을 한다. 수행 방법은 전통적으로 화두를 드는 소위 간화선이다. 그 중 약 1/3은 비구니 선원이다. 이렇게 하안거를 선원에서 보낸 수행승이 조계종에 약 2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조계종 재적 승려의 약 1/10이 선원에서 이렇게 여름을 보낸다. 그런가하면 경전을 연구하고 학습하는 ‘강원’에서, 또는 소리를 배우고 염불삼매를 실천하는 ‘염불원’에서, 또는 계율의 문헌자료를 배우고 실천하는 ‘율원’에서, 출가자들은 저마다 이 기간을 보낸다. 물론 ‘종무소’에 소속되어 사원의 살림살이와 포교에 종사하는 사판승들도 있다. 여름과 겨울, 두 차례의 결제 기간 중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사찰 내의 정해진 경계 구역을 벗어나지 않다. 그러니 결제 중에 시내에 돌아다니는 승려들은 특별한 일이 있거나, 아니면 공동체 대중(大衆)이 아닌 별중(別衆)들이다.

하루 일과를 보면, 공양, 약간의 휴식, 조석예불, 포행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선원이 8시간 넘게 좌선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꽤 전통이 있거나 권위 있는 수행처에서는 ‘방장’이 결재 기간 중에 초하루 보름 마다 정기적으로 수행 대중들에게 상당법문을 한다. 물론 결제나 해제, 또는 반살림에도 상당법어를 한다. 때로는 아침이나 저녁으로 수행인들의 방문을 받아 면담을 하기도 한다. 또는 공양을 하다가, 또는 예불을 하다가, 또는 운력을 하다가, 그야말로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수시로 시의적절한 언어나 행동으로 수행자들과 소통을 한다.

좋은 선원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높은 인격과 수행을 갖춘 지도자 즉 ‘방장’이나 ‘조실’이나 ‘선원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방장’이나 ‘선원장’은 불교의 학문에 정통해 있어야 한다. 불교의 학문이란, 전통적으로 교종 방면으로는 <화엄경수소연의초>, 선종 방면으로는 <선문염송>이 대표적이다. 선원에는 이 두 방면에 정통한 학문적 소양을 갖추고, 화두 일념으로 삼매를 체험한 지도자가 필수이다.

이렇게 지격을 갖춘 지도가 정기적으로 수도인들을 점검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서로가 철차탁마의 공을 쌓아가야 한다. 현대에 들어 모범적인 사례로는, 구산 선사가 방장으로 계시면서 수행자들을 제접하던 송광사 내의 선원을 꼽을 수 있고, 또 성철 선사가 방장으로 계시면서 수행자들을 제접하던 해인사 내의 선원을 꼽을 수 있고, 또 송담 선사가 조실로 계시면서 수행자들을 제접하던 인천 용화사 내의 선원을 꼽을 수 있다. 이 세 선사들의 상당법어는 책으로 발간되거나 방송으로 남아 나 같은 불교학자들도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과거 당나라나 송나라 시대에 선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좋은 법문집이다.

선불교의 원산지인 당나라 시대나 송나라 시대, 물론 그 후 시대에도 중국의 선사들은 경론에 해박했다. 물론 자신들의 선배인 선사들의 어록에 대해서도 그랬다. 소위 먹물들이다. 독서인들이다. 학문적 소양을 충분하게 겸비하고, 그러면서 간화 수행이라는 독특한 선 수행의 전통을 계승해왔다.

조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후기에는 백파 긍선 선사가 그랬고, 행방 직후에는 석전 영호 선사가 그랬다. <선문염송>을 자유자재로 쥐고 흔들지 못하고는 소위 ‘방장’이나 ‘조실’이나 ‘큰스님’ 대열에 들 수 없었다.

요즈음 해제 철에 즈음하여, 불교계의 각종 언론 매체를은 각 선원의 대표격되는 ‘선원장’이나 ‘조실’이나 ‘방장’ 스님들의 해제법어를 소개하고 있다. 무더웠던 여름을 보내고 남은 여름에는, 나 같은 선 문헌 독서인들에게는 그분들의 지상 법문 읽기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된다. 죽반지기(鬻飯之氣)가 아닌 본지풍광(本地風光)의 본분소식이 기대된다.

-한국선학회 회장,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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