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승병을 조직해 참전했던 서산 대사는 살생으로 인한 과보를 받았을까?” 김성철 동국대 교수의 답은 “그렇다”이다. “불자가 아닌 사람이 불교의 계율을 얻어도 그에 대한 과보를 받을까?”라는 질문의 답도 “그렇다”이다. “초기 선승들은 좌선을 하지 않았다는 데 사실일까?”란 질문과 “부처님은 윤회를 가르치지 않았다는 데 사실일까?”라는 질문에는 “아니라”고 답한다.

불교에 대한 의문은 참 풀기 어렵다. 특히 이런 곤란한 질문에는 답하기가 어렵다. 답을 한다 해도 그 근거를 대기 어려울 때가 있다. 김성철 교수는 불교를 공부하면서 한 번쯤 들었을만한 질문들에 답한다. 답의 근거는 철저하게 경전을 바탕으로 제시한다.

불교 초심자부터, 전공자, 물리학 교수, 스님 등 3년 동안 김성철 교수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질문들은 다양하고 기발하다. 김성철 교수의 답은 뜬 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다. 경전을 근거로 한 논리정연한 답변이 명쾌하다.

“서산 대사도 과보를 받았을까?”라는 의문에 김 교수는 “인과의 법칙은 한 치의 오차도 없고, 단 하나의 예외도 없다”고 불교 인과론을 설명한다. 결국 살생에 참여한 서산 대사는 그에 따른 과보를 받았고 김 교수는 경전 근거로 설명한다. 하지만 김 교수의 답은 단순한 경전 구절에 얽매인 해석은 아니다. ‘불교학’적 관점이 아니라 ‘불학의 눈’으로 해석을 덧붙인다. “삼독심에 의한 살생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살생’은 구분해야 하고, 서산 대사의 살생을 ‘미래나 내생에 고통의 과보를 받을 각오하고서, 보다 큰 선을 위해서 살인을 하고 살생을 하는 것이 보살도’라고 규정한다.

김성철 교수는 “초기 선승들은 좌선을 하지 않았다는 데 사실일까?”란 질문과 “부처님은 윤회를 가르치지 않았다는 데 사실일까?”라는 주장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이런 주장은 경전이나 선어록, 불교사를 꼼꼼히 살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정말’일까 하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주장이지만, 김 교수는 이 모든 것의 기저에는 현대 불교학 탄생의 비밀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초기 서구의 불교학자들은 기독교 신앙을 갖고 불교를 비판하기 위해 불교를 연구했기에 기독교적 세계관에 맞지 않는 불교의 신비한 교리들은 모두 잘라버린 후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교리만을 추출하여 불교라고 규정해 왔다”고 보았다.

불교초보탈출 《100문 100답》은 김성철 교수가 정립하고 있는 ‘체계불학’의 관심에서 해석된다. 《100문 100답》의 부제가 〈김성철 교수의 체계불학〉이다. 김 교수의 체계불학은 기독교의 신학에 대응하는 불학이다. 김 교수는 “대부분의 신학이 ‘계시의 학문’ 또는 ‘접신의 학문’이라면, 불교학을 포괄하는 ‘불학’은 ‘깨달음의 학문’, 즉 ‘각학(覺學)’”이라고 보았다. 불교학의 견지에서 불학의 하위분과에 ‘접신의 학문’으로서의 ‘신학’을 위치시키는 것이 옳다고 김 교수는 보았다. 하지만 신학의 사고방식이 인문학 전방에 깊이 뿌리내린 지금의 학문 풍토로는 신학을 하위분과로 두는 불학성립은 요원하다고 보았다.

“근대 이후 서구를 중심으로 불전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 인문학적 연구가 시작되었다.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 경영을 위한 학문적 보조수단인 지역학, 언어학, 종교학 분야에서 불교가 연구되었는데, 서구 인문주의 전통의 객관성과 과학성, 합리성을 방법론으로 삼았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이러한 인문주의 불교연구는 불교에 대한 인습적 오해를 시정한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갖기만, 마치 실험동물을 다루듯이 불교를 해부하다 보니 불교의 종교성이 망실되기 쉽다. 갖가지 이설이 난무한다.” 김성철 교수가 체계불학을 정립해 가는 이유이다.

김성철 교수는 ‘지범개차(持犯開遮)’에 대한 상황론적 해석을 단호히 거부한다. 이유는 ‘개차’는 불교윤리의 자의성(恣意性)이 아니라 ‘허용’과 ‘금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해석이다.

‘지범개차’는 고려시대 보조 스님의 《계초심학인문》에 나오는 구절로 일반적으로 ‘개차’를 “상황에 따라 내가 마음대로 계율을 열고 닫는 것“으로 해석하는 데 이는 잘못된 해석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대장경에서 ‘지범’은 ‘지키는 것과 어기는 것’을 의미하고 ‘rock’를 소위 ‘개차법’으로 이해하는 ‘자의적 계율관’은 불교를 훼손할 뿐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선지지범개차(善知持犯開遮)’는 “무엇을 지키는 것이고 무엇이 어기는 것이며, 무엇이 허용되고[開] 무엇이 금지되는지[遮] 잘 알아야 한다.”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불전에는 계를 제정하고 파기하는 것은 부처님과 같이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 분만 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고 설명한다. 혹 깨달음 분이 안계시는 경우에는 승가의 대중 전체가 화합하여 결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김 교수는 현대사회에 계율이 시대와 풍토에 어울리지 않다면 〈백장청규〉와 같이 대중의 화합을 통해 새롭게 ‘율’을 제정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김성철 교수는 학문과 신앙이 하나가 된 시스템을 연구 중이다. 《100문 100답》은 김 교수가 지은 첫 대중서이다. 그동안 학술 논문만 써왔던 김 교수는 앞으로 체계불학을 통해 대중들의 질문에 답하려 하고 있다.

서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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